파기(破棄)
교동 장터에는 전날부터 이상한 소문이 파도처럼 번지고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소리들이요?”
만덕이 조기 한 마리를 골라 들고 값을 치르려 하자, 생선장수가 생선을 정리하다 말고 만덕을 빤히 바라보더니 그것도 모르냐는 듯 가볍게 말했다.
“왜, 몰라? 왕이 바뀌었단다, 왕이.”
만덕은 손에 든 생선을 떨어뜨릴 뻔했다.
“… 왕이요? 누가요?”
생선장수는 허리를 굽혀 생선을 정리하며 입을 가렸다.
“그… 여기 살던 원범이. 이제 함부로 이름 부르지도 말게나. 전하께서 들으면 목 떨어질 일이야.”
생선장수는 그러고는 얼른 어깨를 움츠리더니 자리에 앉았다.
만덕은 순간 귀가 멍해졌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강화도의 나무꾼 총각이 왕이라니?
그는 허겁지겁 주막으로 달려갔다. 주막 안은 이미 떠들썩했다.
사람들은 원범이 어쩌다 왕자임이 밝혀졌고, 대왕대비가 족보를 뒤적이며 새로운 왕을 찾다가 몰락한 왕족 출신인 그를 데려왔다는 식으로 떠들어댔다.
만덕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며칠 전 관아에 끌려갈 때, 원범의 발목을 붙들던 포졸들은 정녕 왕이 될 사람을 끌고 간 것이란 말인가?
한 달 전쯤, 원범이 그렇게 관아에 끌려가던 날. 만덕은 집에 돌아와 양순이를 앞에 두고 얘기했다.
“양순아… 원범 도련님이 관아에 잡혀갔다.”
“네?”
양순의 몸이 파르르 떨리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양순아… 네가 왜 우는 것이냐? 혹시…”
양순은 말없이 어깨를 들썩이고 조용히 흐느낄 뿐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
“오라버니. 드릴 말씀이 있어요.”
양순이가 단호하지만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저… 원범 도련님을 사랑해요. 둘이 혼인하기로 약조를 했습니다.”
만덕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왕족이랑 엮이면 아니 된다라는 사실이 가슴속에 박혀왔다.
“양순아… 우리는 천한 것들 아니냐.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살아야지…”
만덕이는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도 그 집 둘째 도련님도 잡혀갔어. 그런 집안이랑 얽혀서 좋을 것이 없다고… 나는 절대로 허락할 수가 없구만!”
그리고는 만덕은 방을 나가버렸고, 남겨진 양순은 하염없이 울었다.
“아니… 그럼 원범 도련님이 왕이 되셨고, 그럼 우리 양순이는 왕비가?”
만덕은 이 상황들을 도저히 정리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 뒷산에서 원범이 자신의 손을 잡고 약속했던 말들이 떠올라 다시금 생각을 했다.
“양순이가 왕비가 되면… 나도 한자리 차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만덕은 한걸음에 집으로 달려갔다. 손에 들린 조기가 흔들려서 바닥에 다 떨어지는 것도 모른 채 뛰었다.
“양순아!”
집에 도착해 큰소리로 부르니, 양순이가 부얶에서 나왔다.
“오라버니. 조기는 사 오셨어요?”
“아… 그게 말이다.”
만덕이 손을 들자, 꼬리만 남은 조기가 끈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양순이 어쩔 줄 몰라하며 다가왔다.
“에고… 이를 어째요… 어디다 흘리신 거예요?”
“양순아.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리 와봐.”
만덕은 양순을 마루에 앉히고, 그가 장터에서 들었던 얘기를 했다.
“양순아… 원범 도련님이… 왕이 되었다 한다.”
양순은 손에 들고 있던 바늘을 떨어뜨렸다. 그 얼굴은 기쁨도 슬픔도 아니었다. 그저 두려움에 가까운 창백함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그날 관아에서 왔던 사람들이 포졸들이 아니라, 높으신 양반 같더라고.”
만덕은 신이 나서 기억을 더듬어 말을 했다.
“혹시… 원범 도련님한테 서신 한통 없더냐? 이양반이 왕이 되었으면 얼른 와서 너를 데리고 가야지…”
순간, 양순의 표정은 부모가 눈앞에서 죽은 듯 힘이 없었다.
“왜 그러냐? 너 왕비가 될 수도 있는데… 안 좋으냐?”
“오라버니… 아마 그 사람 못 돌아올 거예요…”
만덕은 기가 찼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로 원범 도련님이 왕이 되었다면… 천한 저랑 어찌 혼인을 하겠습니까?”
만덕은 뒤통수를 쿵하고 맞는 충격을 느꼈다. 맞는 말이다… 나는 왜 이리 아둔할까?
“이 어미의 말대로, 전하는 혼인을 하시기 바랍니다.”
대왕대비전에 순원왕후가 앉아있고, 그 옆으로 원범, 그리고 맞은편에 김문근이 앉아 있었다.
순원왕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음색에 깔린 강압을 원범은 느낄 수 있었다.
“… 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과 혼인하겠습니다.”
김문근이 뒤에서 냉소를 흘렸다.
“전하. 혼인이라 함은 사사로움이 아니라 나라의 대업을 잇는 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게 누구인지요?”
김문근이 매서운 눈초리로 원범에게 물었다.
“교동에 있을 때, 이미 혼인을 약조한 처자가 있소…”
순원왕후가 얼굴을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추상은 이 나라의 왕이십니다. 비록 제가 양자로 입적시켰어도 제가 추상의 어미이고, 제 아들입니다.”
“네… 어마마마. 알고 있습니다.”
순원왕후가 다시 얼굴을 펴고는 인자한 말투로 말했다.
“여기 있는 김문근 대감의 여식을 왕비로 맞이하세요. 그게 이 나라를 위하는 길입니다.”
방금 전 세도가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라는 대비의 명이 떨어졌고, 그 뒤에는 절대 거역할 수 없는 힘이 도사리고 있었다.
“끝까지… 고집을 피우신다면…”
김문근은 손끝으로 찻잔을 가볍게 두드렸다.
톡, 톡, 톡.
마치 사람의 운명을 가르는 망치 소리 같았다.
“제가 교동을 다녀와야겠군요…”
원범은 서슬 퍼런 김문근의 얼굴을 보며 사색이 되었다.
“예… 어마마마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대감… 교동은 가지 마십시오.”
김문근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대답했다.
“그럼요. 전하의 명을 받들어야지요. 걱정 마십시오. 전하의 장인이 될 몸이니까요. 전, 제 사위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길 바라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거운 한마디를 던졌다.
“그리고 제 여식의 부군이 되실 분이니, 장인으로서 한마디만 올리겠나이다. 제 여식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는 것을 저는 참지 못합니다.”
원범은 얼마 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 말투와 느낌은 전혀 달랐다. 한쪽이 행복을 바라는 것이었다면, 한쪽은 욕심을 위한 것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 말은 협박이 아니라, 이미 결정된 ‘통보’였다. 원범은 더 말할 힘도 없었다.
다만 양순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나려는 것을 겨우 참고 있었다. 앞에 장인이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편 교동에서는 만덕과 양순에게도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날 오후, 싸리문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여기가 양순이라는 처자가 사는 곳이냐?”
만덕이 나서기도 전에 대여섯 명의 장정이 들이닥쳐 집안을 죄다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장독이 깨지고, 솥이 넘어지고, 방 안에 걸려 있던 양순의 낡은 옷가지도 찢겨 나갔다. 그리고 원범이 양순에게 줬다는 머리빚도 부러져있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이어라!”
만덕이 달려들었지만 다섯 명이 동시에 그의 배를 걷어찼다. 그는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웅크렸다.
양순은 구석에서 떨며 애원했다.
“제발… 제발 그러지 마세요…”
우두머리 격인 사내가 가까이 다가왔다.
“잘 들어라. 너희는 주제를 앍고 조용히 살아라. 이건 마지막 경고다.”
사내는 돈자루 하나를 상 위에 탁 내려놓았다.
“이걸로 멀리 떠나라. 살고 싶다면 입 다물고, 흔적을 남기지 마라.”
그리고 사라졌다. 집엔 폐허만 남았다.
피범벅 된 만덕을 부축해 일으키는 양순의 눈에 희망이란 건 이미 없었다.
“… 오라버니…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만덕은 멀리 검게 변한 바다를 바라봤다.
“… 양순아. 저 바다 건너면 우리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양순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덕은 한참을 묵묵히 서 있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가자. 우린… 우리끼리 살아야지. 왕이고 나라고… 사랑이고… 목숨이 중요하지.”
붉게 물들었던 노을은 이미 사라지고 겨울 바다는 잿빛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만덕과 양순의 그림자는 그 어둠 속으로 길게, 아주 길게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