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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사쓰는 육아대디 Jul 26. 2024

딸이 컸다고 느껴지는 순간

아빠의 머리 말리기

아내가 딸을 씻기고 나면 제가 해야할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아이 얼굴과 몸에 로션을 발라주고 옷을 입히고 머리를 말리는 일이죠. 그 중에 가장 빠르고 정확해야하는 것이 바로 머리 말리기입니다.


너무 늦게 말리면 혹여나 감기에 걸릴까 걱정스럽고 그렇다고 너무 뜨거운 바람으로 말리면 아이가 힘들어할까봐 걱정이죠. 오늘도 후다닥 누구보다 빠르게 머리를 말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머리가 참 안마르는 것 같더군요. 뭐지? 드라이기 온도가 문제인가? 아무리 살펴봐도 똑같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정확한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아이의 머리가 그만큼 길어진 것이죠.


아이가 컸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갑자기 안하던 말을 하거나 걷지 못하던 아이가 어느새 걷고 또 뛰는 순간들 말이죠. 그런데 딸을 가진 아빠는 또 하나의 순간이 더 존재했던 것이죠. 아이의 머리카락이 많이 길어서 말리는데 한참이 걸리는 순간입니다.


머리카락이 약간은 풍성하게 태어났고 배냇머리가 빠지지 않은 덕에 지금까지 미용실을 간적은 딱 한 번밖에 없습니다. 미용실을 간 것도 앞머리만 예쁘게 잘라주려고 갔었던 것이고 전체적인 길이는 건들지 않았었죠.

  

오늘 머리를 말려주는데 길이를 보니 거의 허리에 닿을 정도로 길었더군요. 언제 커서 머리핀을 해주나 싶었던 순간도 있고 머리가 드디어 묶인다고 신기하다고 아내와 함께 좋아했던 기억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젠 그 머리카락이 길고 또 길어서 똥머리도 할 수 있고 포니테일 머리도 할 수 있고 돌돌 말아 삐삐처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몇 개 안됩니다만 다양한 머리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많이 길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자 아이였다면 느끼기 쉽지 않았을 순간. 딸을 가진 아빠가 경험할 수 있는 내 딸이 컸다고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아이가 더 커서 스스로 머리를 말리는 날도 오겠죠. 그런데 그때가 오면 제 앞에 앉아서 머리를 내어주는 딸 아이의 모습이 그리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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