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것을 잊지않고 챙겨주는 섬세함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왜 결혼을 하게 됐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습니다. 7년이라는 긴 연애를 했고 그 끝에 결혼을 했기 때문인지 궁금하신 지인들이 많더군요. 더 느낄 설렘이 있느냐는 질문부터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는 결혼을 앞둔 지인의 질문까지 말이죠.
오랜 기간 연애를 하면서 '이쯤되면 결혼해야지'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사실 '결혼'이란 생각을 한 적도 없었고, 그저 멀게만 느껴질 뿐이었죠. 그러던 와중 발생한 한 사건이 계기가 됐습니다.
취업을 한 지 3주 정도 흘렀을 때입니다. 당시 신입 환영식을 한다는 이유로 여러 선배들의 호출에 매일 연이은 술자리가 있었을 때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한 달에 28일 정도 술자리를 참석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매일 같이 있는 저녁 자리에 가장 큰 문제는 부족한 셔츠였습니다. 취업 준비생 대부분은 많아야 셔츠 2~3장, 정장 1벌 정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면접에서 입은 옷만 간신히 가지고 있는 경우인 거죠. 그런 상황에서 취업을 하면 가장 먼저 부족해지는 것이 바로 셔츠와 정장들입니다.
정장이야 겉옷 느낌이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버틸 수 있는지만, 맨살에 닿는 셔츠는 조금 다릅니다. 회식에서 먹었던 음식 냄새에 땀 냄새 등등 하루만 입어도 금방 지저분해집니다.
그날도 매일 이어지는 저녁 자리에 참석했을 때입니다. 잠깐 화장실에 가면서 '내일 입을 셔츠가 있나?'라는 생각이 스쳤고 반쯤 취한 상태로 지금의 아내(당시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와..생각해보니 내일 입을 셔츠가 없네.."
그리곤 어떤 답변이 왔는지는 술기운 탓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더군요. 그렇게 간신히 저녁 자리를 끝마치고 터덜터덜 자취방으로 걸어갔습니다. '하 내일 뭐 입지? 지금 빨래하고 자면 마르기는 하려나..' 이런 걱정을 하면서 힘겹게 계단을 올라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는데, 막 끝낸 빨래 냄새가 났습니다.
그리고 침대 위엔 새 셔츠 6장이 가지런히 놓여있었죠.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가 술기운에 전화를 걸어
내일 입을 옷을 걱정했던 제 말을 그냥 흘러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 전화를 받고 바로 제 자취방으로 와서
셔츠 빨래를 해주고 혹시나 마르지 않을 것을 걱정해서 새 셔츠까지 사다놓은 것이었죠.
술기운이 있었던 탓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 여자라면 같이 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탁 들어왔습니다. 그냥 흘러들어도 괜찮을, 좀 덜마른 셔츠를 입고 출근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사소한 순간이었지만 이 사소함을 채워줬던 그 모습에 '결혼'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7년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골인해 예쁜 딸 아이를 키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사소한' 것을 기억하고 챙겨주는 아내가 있어서 참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저 역시 아내의 '사소한' 것을 기억하려고 노력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