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전해보는 상대적 F의 마음
회사에서 퇴근하고 걸어오는 길에 작은 꽃집이 있습니다. 예쁘게 만들어진 꽃다발도 있고 한송이씩 판매하는 것처럼 보이는 꽃들도 참 많더군요. 그것을 지나올 때마다 ‘나중에 꽃이나 한송이 사가야겠다’는 생각을 종종하곤 했습니다.
얼마 전 심한 감기에 걸렸던 아이가 퇴원을 했고 그 아이를 보살피느라 아내의 몸도 이만저만이 아니였던 날이었습니다. 저도 아내와 함께 아이를 돌보느라 몸이 힘들었지만 뭔가 그동안 고생했다는 위로를 좀 해주고 싶더군요. 꽃가게를 지나쳐 횡단보도 앞에 섰다가 다시 뒤로 돌아서서 꽃가게로 들어갔습니다.
밖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꽃들이 있었고 이중에서 뭐를 골라서 줄까 생각하다가 분홍색 장미꽃 두 송이를 골랐습니다.
“아내랑 딸에게 주고 싶은데요. 따로따로 포장이 될까요?”
꽃가게 사장님은 흔쾌히 두 송이를 따로 포장해주셨고, 포장을 기다리는 동안 나중에 기념일엔 어떤 꽃다발을 좀 건네주면 좋아할까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빠른 손놀림으로 포장을 마친 장미꽃 두 송이를 건네 받았고 걸음을 돌렸던 횡단보도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퇴근이 10분 정도 늦어지긴 했지만 마음 속에는 꽃을 받으면 참 좋아하겠지? 라는 기대감이 스멀스멀 올라왔죠. 마치 꽃을 들고 있으니 주변에서 ‘왜 꽃을 들고 있을까?, 기념일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건 아닐까 하는 나만의 시선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선 아무런 생각이 없을지라도 말이죠.
꽃을 들고 집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꽃을 받아든 딸은 ‘우와’ 한마디만 외치고 다시 할아버지가 보여주는 영상에 집중했고, 아내는 ’이런건 왜 사왔어, 실용적이지 못하잖아’ 라는 말을 했습니다. 기대하고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였죠. 그래도 아내 얼굴을 자세히 보니 싫지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
제가 아내와 연애할 때 처음 꽃을 사줬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빨간 장미꽃 한송이를 포장해서 건네줬고 그 꽃을 들고 한참을 좋아하던, 열심히. 셀카를 찍었던 아내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꽃을 선물한다는 것이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아내의 말처럼 꽃은 참 실용적이지도 못하고 시들면 아쉬운 마음에 쓰레기통으로 갈 수밖에 없지만, 그 짧은 순간 어떤 말보다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는 것 아닐까요. 또 ’난 항상 너를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프로포즈나 이벤트 등에선 꽃이 빠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은 아닐까요. ‘너를 항상 생각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기 부끄러우니 꽃에 힘을 빌려 대신 좀 전해주는 것 말이죠.
저도 MBTI를 하면 T와 F가 번갈아서 나올만큼 T성향이 있긴 하지만, 저보단 상대적으로 대문자에 가까운 아내에게 구박을 좀 받더라도 전 꽃 선물을 종종 합니다. 꼭 기념일이 아니더라도 그냥 예뻐서, 꽃이 참 아름다워서 주고 싶었다는 핑계로 말이죠. 그리고 꽃 선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작은 희망이 있다면 저를 따라 고집있고 자동차를 그렇게 좋아하는 딸아이가 아내보다는 좀 더 좋아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