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처가에서 1박 2일(5)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이랬으면

by 연필

처가는 저희 부부가 살고 있는 지역과 같은 도시에 있습니다. 차로 10분 정도 거리, 걸어선 30분 안쪽으로 같은 도시 안에서도 굉장히 가깝습니다. 그래서 자주 뵙기도 하고 밥도 같이 먹고 또 종종 일이 있건 없건 들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되면 처가 쪽 스케줄보단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저희 부모님 일정을 우선적으로 잡습니다.(부부 간의 합의 하에 말이죠) 이번 설 명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희 부모님을 찾아뵐 일정을 잡고 처가를 찾아뵐 일정을 잡았습니다.


처가를 먼저 찾아뵙고 같이 식사를 하고 부모님을 만나기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부모님을 찾아뵙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장모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명절 선물을 전달해달라고 하셔서 집 가는 길에 잠깐 들려서 드리고 갈 생각이었습니다.


“잠깐 올라왔다가 가~“


꽉 막힌 고속도로를 간신히 뚫고 돌아온 수고에 따뜻한 차라도 한잔 주시고 싶은 마음이었죠. 그렇게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전달해드릴 선물을 들고 아내, 아이와 함께 처가로 향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반가웠는지 아이도 한껏 들뜬 표정이었습니다. 그렇게 따뜻한 인삼차 한잔을 마시고 있는데 아이가 한마디 하더군요.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서 자고 가자~~”


사실 저희 집과 처가는 걸어가도 될 만큼 가까운 거리였기에 처가에서 잘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딱 한번 처가에서 잔 적이 있었는데, 결혼 후 첫 추석이었습니다. 명절에는 양가 부모님 집에 방문해서 하루 정도 깊게(?) 지내야하는 것이 제가 어렸을 적부터 경험했던 분위기였기에 제가 굳이 집이 가까운데도, 장모님이 만류하는데도 처가에서 자고 가겠다고 했었습니다. 그때 딱 한번이 전부였죠.


그런데 아이가 자고 가자고 이야기를 했고 이미 외박할 수 있는 짐을 가지고 있는 저희 부부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허락만 있으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이의 이런 제안에 장인, 장모님도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 같이 1박을 하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1박을 하기로 한 거 늦게까지 맥주도 한잔하고 치킨도 한마리 먹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장인, 장모님과 열심히 놀고 있는 아이를 뒤로 저희 부부는 맥주도 살겸, 치킨도 픽업해올겸 외출에 나섰습니다.


캄캄한 밤거리를 아내와 함께 걷는 이 순간이 참 좋았습니다. 밤거리를 둘이 걸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더군요.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둘이 밤산책을 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와 함께였거나 혹은 혼자였거나였죠. 맥주를 사러 편의점에 들리고 치킨을 픽업하러 돌아다니는 그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쉽게 오지 않고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라서 더욱 빨리 지나가는 것이겠죠. 차가운 밤공기도, 쌓인 눈을 밟으면서 나는 뽀드득 소리도 참 예쁘게 들렸습니다.


그렇게 어쩌다 처가에서 1박을 하게 됐습니다. 같이 야식을 먹으면서 밤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다 잠에 들었고 다음 날 아침 늦게까지 온 가족이 늦잠을 자는 게으름도 참 좋았습니다. 아이도 이런 분위기가 좋았는지 오늘도 할아버지와 할머니집에서 자고 가고 싶다고 때를 쓰더군요. 하지만, 또 내일 각자의 일상이 있기에 다음 명절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꼭 명절이 아니더라도 연휴가 껴있다는 핑계로, 아이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애타게 찾는다는 핑계로라도 종종 처가에서 1박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핑계 삼아 아내와 함께 밤산책도 좀 하고 밤거리도 좀 거닐고 차갑게 내려앉은 밤공기도 종종 느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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