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했다
6시가 되기 5분 전. 사무실은 고요하면서도 엉덩이부터 들썩거리는 경우가 많다. 6시 정각이 되면 바로 퇴근이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에게 '퇴근'은 출근하자마자 하고 싶을 정도로 간절하다. 출근한 사람에게 오늘 뭐 하고 싶은거 있냐고 물어보면 '퇴근'이라고 답한다고 하지 않나. 아마 모든 직장인들에게 퇴근은 어찌보면 희망일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퇴근 준비만큼 설레는 준비는 없다. 아침 출근할 때 잠깐 얼굴만 봤던 아이의 얼굴도 보고 놀아줄 생각, 가족과 함께 한 식탁에 앉아서 밥먹을 생각에 퇴근이 기다려졌다. 6시 정각. 야간 근무자를 뺀 나를 포함한 모든 직원들이 인사하고 나간다. 다들 발걸음이 가볍다.
차를 타고 막힌 퇴근길을 뚫고 집 근처에 왔을 때쯤. 문뜩 하나가 떠올랐다. 아. 약 놓고 왔다. 주말부터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던 눈에 난 다래끼. 점심 때 간신히 시간을 내서 회사 근처 안과에서 진료를 받고 약을 받아왔다. 약도 먹고 안약도 넣으면 금방 나아지겠지 싶었는데. 약을 통째로 그대로 내 책상 위에 올려두고 왔다.
나를 지독하게 눈이 팅팅 부을 정도로 괴롭히던 녀석을 잡기 위해 약까지 간신히 받았는데. 퇴근을 준비하는 사이에 내 기억과 감각 속에서 사라진 것이다. 퇴근이 이렇게도 설레고 무서운 일이다. 다시 돌아갈 엄두는 내지 못했다. 막히는 퇴근길을 또다시 뚫고 가야하는 것은 둘째치고 회사에 다시 간다는 것만해도 기분이 썩 좋지 않기 때문이다. 내일 출근해서 바로 약먹고 안약 넣으면 한끼 정도만 건너뛰는 셈이니 괜찮겠지. 나름의 논리를 세워 다시 회사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접어둔다.
우리가 너무 기대되고 설레는 일을 마주할 순간이 오면 꼭 중요한 무엇인가를 놓치는 경우들이 있다. 기대와 설렘이 클수록 상대적으로 다른 일은 너무 작게 느껴지는 법이다. 나는 퇴근이 급한 바람에 주말 내내 괴롭히던 다래끼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