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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사쓰는 육아대디 Apr 01. 2024

퇴근이 급한 바람에

깜빡했다

6시가 되기 5분 전. 사무실은 고요하면서도 엉덩이부터 들썩거리는 경우가 많다. 6시 정각이 되면 바로 퇴근이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에게 '퇴근'은 출근하자마자 하고 싶을 정도로 간절하다. 출근한 사람에게 오늘 뭐 하고 싶은거 있냐고 물어보면 '퇴근'이라고 답한다고 하지 않나. 아마 모든 직장인들에게 퇴근은 어찌보면 희망일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퇴근 준비만큼 설레는 준비는 없다. 아침 출근할 때 잠깐 얼굴만 봤던 아이의 얼굴도 보고 놀아줄 생각, 가족과 함께 한 식탁에 앉아서 밥먹을 생각에 퇴근이 기다려졌다. 6시 정각. 야간 근무자를 뺀 나를 포함한 모든 직원들이 인사하고 나간다. 다들 발걸음이 가볍다.


차를 타고 막힌 퇴근길을 뚫고 집 근처에 왔을 때쯤. 문뜩 하나가 떠올랐다. 아. 약 놓고 왔다. 주말부터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던 눈에 난 다래끼. 점심 때 간신히 시간을 내서 회사 근처 안과에서 진료를 받고 약을 받아왔다. 약도 먹고 안약도 넣으면 금방 나아지겠지 싶었는데. 약을 통째로 그대로 내 책상 위에 올려두고 왔다.


나를 지독하게 눈이 팅팅 부을 정도로 괴롭히던 녀석을 잡기 위해 약까지 간신히 받았는데. 퇴근을 준비하는 사이에 내 기억과 감각 속에서 사라진 것이다. 퇴근이 이렇게도 설레고 무서운 일이다. 다시 돌아갈 엄두는 내지 못했다. 막히는 퇴근길을 또다시 뚫고 가야하는 것은 둘째치고 회사에 다시 간다는 것만해도 기분이 썩 좋지 않기 때문이다. 내일 출근해서 바로 약먹고 안약 넣으면 한끼 정도만 건너뛰는 셈이니 괜찮겠지. 나름의 논리를 세워 다시 회사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접어둔다.


우리가 너무 기대되고 설레는 일을 마주할 순간이 오면 꼭 중요한 무엇인가를 놓치는 경우들이 있다. 기대와 설렘이 클수록 상대적으로 다른 일은 너무 작게 느껴지는 법이다. 나는 퇴근이 급한 바람에 주말 내내 괴롭히던 다래끼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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