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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사쓰는 육아대디 Mar 29. 2024

독박육아의 낮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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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라면 둘이 같이 육아를 해야할 일요일. 아내가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약속이 잡혀서 나 혼자 독박육아를 하게 됐다.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아이와 함께 놀다가 잠깐의 간식 시간을 가진 뒤 아내를 배웅했다. 아내가 나가려고 준비하는 순간부터 아이의 기분이 약간 다운되긴 했지만 그래도 배고픔이 먼저인지 점심 시간이 아니지만 배가 고프다며 밥을 달라고 한다.


아내가 미리 준비해준 덕에 어렵지 않게 밥과 반찬을 준비하고 아이와 함께 점심을 먹는다. 밥을 다 먹으면 주니토니를 보여준다고 말해서인지, 진짜 배가 고팠던 모양인지 평소엔 먹여달라고 하던 아이가 스스로 수저를 들고 밥을 남기지 않고 싹싹 먹었다. 부모라면 공감하겠지만 아이가 스스로 주어진 밥을 다 먹는 모습을 보면 그때만큼 뿌듯한 순간도 없는 듯하다.


볼록해진 아이 배를 보면서 아이와 함께 퍼즐을 맞추다보니 아이의 눈에 졸음이 슬슬 몰려오는듯하다. 아이를 데리고 책 몇 권을 챙겨 아이 방에 들어갔다. 누워서 책을 읽어주다보니 식곤증이 온 탓인지 나도 비몽사몽이다. 몇 권의 책을 몇 번을 반복한 끝에 아이도 나도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잠이 들었다.


"띠리리링" 잠귀가 밝은 나는 작은 소리에도 쉽게 잠에서 깬다. 이게 무슨 소리지. 아! 제습기에 물통이 가득차서 비워달라는 소리구나. 왜 하필 아이와 함께 낮잠을 자는 도중에 울리는지 모르겠다. 혹여나 아이가 깰까 조심조심 몸을 일으켜서 제습기를 끈다. "띠리리리링"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제습기가 종료되는 소리가 나온다. 흠칫 놀라며 아이를 바라봤는데 다행히 깊은 낮잠에 빠져있다.


나는 한번 잠에서 깨면 쉽게 다시 잠들지 못한다. 아이가 낮잠에서 깼을 때 옆에 누가 없으면 우는 경험이 있어서 다시 아이 옆으로 슬쩍 조심스럽게 눕는다. 폭신한 이불 소리마저 크게 들린다. 조용히 차렷자세로 잠을 자려고하는데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린다. 뭐지? 출입처에 관련된 사람의 전화였다. 일단 급하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달라며 전화를 거절한다. 전화를 거절한 뒤 고개를 돌려서 아이를 쳐다본다. 자세가 조금 움직였다. 휴대폰 진동이 영향을 주긴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잠을 깨우진 않았다.


급한 전화일 수도 있어 아이 방을 조심스럽게 나간다. 침대 프레임 소리가 왜 이렇게 크게 들리는지 방문 밖을 나가는 순간까지 한시라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다행히 급한 전화는 아닌지 다시 연락이 오지 않는다. 아이를 간신히 재우고나면 주변이 조용해진 탓인지 나의 긴장감이 높아진 탓인지 모든 소리가 5배는 더 크게 들린다. 제습기가 종료되는 소리, 휴대폰의 진동소리, 아이 방문을 닫는 소리까지. 이럴 땐 모든 소리에 무음모드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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