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본 자만의 느낌
나홀로 육아를 해야하는 토요일. 오늘은 부모님이 아이를 보러 오시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나홀로 육아의 부담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도 있는 날입니다. 그런데 아침 일찍 일어나면 전화를 부탁한다는 아버지의 메시지가 와있었습니다. 일어나서 전화를 드렸더니 기침이 나는데 감기인 것 같다고 오늘 못 갈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아이한테 옮길 수도 있으니 보러 가지 않고 오전에 병원을 가보겠다고 하시더군요.
어쩔 수 없이 나홀로 육아를 시작하고 9시가 조금 넘어서 전화가 다시 왔습니다. 병원에 가서 코로나, 독감 등 온갖 검사를 다 하셨는데 별 이상 없고 약 먹으면 금방 나아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물어보시더군요.
"특별히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혹시 아이한테 옮기려나? 너무 보고싶긴한데 너가 괜찮은지 궁금하다"
전 당연히 오시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래도 걱정이 되셨는지 하루 종일 마스크를 벗지 않은 상태로 계셨고 밥이나 커피를 먹을 때만 잠깐 벗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아이와 함께 잘 놀고 다시 집으로 가시기 전에 못 왔으면 너무 아쉬울 뻔했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제가 오지말라고 했으면 아쉽지만 안왔을 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키워보면 아무리 조심한다고해도 감기에 걸리거나 다치는 건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특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 공동체 생활을 하면 더더욱 막을 수 없죠. 아이한테 마스크를 씌워줘도 어느새 답답하다고 벗어버리는 경우도 많고 바닥에 떨어진 애착인형을 코나 입에 가져가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그렇게 몇 차례 아프고 나으면서 큰다는 것을 알게 되죠.
전 이 말씀을 아버지께 드리면서 전 언제든 오시라고 했습니다. 감기를 옮길까봐 조심하는 것은 좋지만 한 달에 한 번 보는 손녀를 크게 아픈 것도 아닌 상황에서 너무 조심할 필요는 없다고요. 어차피 아이는 아프면서 크고 아프면서 성장하게 된다고요.
이런 말을 하고나니 여러 육아선배들의 말이 스쳐지나갔습니다. '둘째는 발로 키운다'고요. 왜 그런지 이제는 조금 이해할 것 같습니다. 첫째를 키울 때는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워서 매 순간 긴장의 연속, 노심초사합니다. 혹여나 아프면 어떻게할까. 다치면 안될텐데..하지만, 키워보니 이해가 갑니다. 아무리 조심한다고해도 아이는 넘어지고 다치고 아프면서 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죠.
둘째를 키우면 이래서 편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내가 대처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으면 크게 노심초사하지도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저희 부부는 아직 둘째 생각이나 계획은 없습니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는데, 이젠 '쉽지 않겠지만 발로 키울 수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조금 유연해지는 듯합니다. 이래서 둘째 생각을 하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