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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 창 Jun 29. 2023

빌런: 이정출

영화 '밀정' (2016)

#친일파


상하이 임시정부 일본어 통역을 하다가 독립 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일본 경찰 자리로 이직했다.

변절과 동시에 친일을 아주 열심히(?)해 히가시 부장의 신임을 얻었고, 조선인이라는 한계를 넘어 경부(지금의 파출소장 정도)의 자리까지 올랐다.

부장의 말이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하는 그에게 새로운 명령이 떨어졌는데 바로 '의열단'을 소탕하는 것

- 그 목표를 이루고자 의열단원 김우진에게 접근한다.


수많은 친일파가 있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까지 몸담을 정도로 독립에 진심이다가 박쥐처럼 변절한 그는 우리에게는 빌런이 틀림없다.


조선인 잡는데 진심인 조선인 이정출


#그가 빌런인지 아닌지 점점 헷갈린다


큰 공로를 세우고자 의열단에게 접근한 이정출 씨, 그런데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 당시 의열단은 헝가리에서 공수한 폭탄을 경성으로 가지고 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일을 도울 적임자로 이정출을 선택하고 자신들의 편으로 포섭하려고 한다.


이 모든 계획은 의열단의 대장 정채산이 세웠고, 김우진은 이정출과 가까워진 후 만남의 자리를 주선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정채산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그가 아군이 되어 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자신들의 편에 서주기를 부탁하며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어디에 올려야 할지를 정해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이 동지는 어느 역사 위에 이름을 올리겠습니까?


오늘의 빌런은 혼란스럽다 - 그에게도 조국은 하나, 조선뿐이기 때문이다.

애국과 이기심 사이에서 갈등하던 이정출은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변해 갈지 확신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영화, 뮤지컬 속의 빌런들이 한결같은 못됨으로 권선징악의 결말을 맞이하는데 반해 오늘의 빌런은 뭔가 좀 다르다. 마음속의 양심의 크기가 크달까? 같은 민족을 때려잡는 일을 하며 죄책감이 있었는데 그 찰나 정채산의 진심이 훅 들어오니 흔들린다 - 교화의 가능성이 있는 나쁜 놈이다.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이 정말 정채산?...


#마무리


의열단과 정채산의 강한 신념을 보며 이리저리 이익에 따라 갈대처럼 움직이던 본인의 모습에 창피함을 느끼고, 결국 폭탄을 경성까지 들여오는 일을 돕기로 결정한다 - 이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빌런이 아니다.


여러 위기 상황을 넘기고 무사히 임무를 완수하지만, 그 과정에서 의열단은 체포되고 그 폭탄을 대신 넘겨받은 이정출은 한때 자신이 충성을 다했던 히가시 부장이 주최한 파티에서 거사를 진행한다.


우리가 일제 강점기의 이중 스파이를 보는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 한때 빌런이었을 지언정, 참회 후 자신의 위치를 이용하여 독립운동을 도운 이정출 같은 이들은 애국지사이다.


- 아니다, 다른 독립군들이 목숨을 내놓고 활동할 때에 일본과 조선사이에서 두발 다 담그면서 언제든지 힘의 균형이 기우는 쪽으로 넘어갈 준비가 되어있던 야비한 빌런들일뿐이다.


애국지사의 눈빛이 되었다


이 영화는 전자의 입장을 지지한다.


친일과 애국, 두 가지만이 존재했던 양극단의 시대에 그는 잠깐 실수를 하긴 했어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참회의 기회가 오자 망설임 없이 자신 안의 정의를 쫓는 선택을 했다.


의열단의 리더 정채산은 영화 마지막 이런 메시지를 남긴다.



우리는 실패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실패가 쌓여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앞으로 전진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야 합니다


새로운 작전을 앞두고 지금 당장 큰 성취를 얻지 못하더라도 될 때까지 해보자라는 의미였겠지만 이정출 개인의 인생, 더 나아가 우리의 인생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


개인의 이익과 정의 가운데서 갈등하는 우리는 가끔 옳지 못한 방향을 바라보기도 하지만 그 실패들이 곧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일 수 도 있다. 그리고 그 끝이 정의에 더 가깝다면 우리는 꽤 괜찮은 선택을 한 사람들로 기억될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확고해진 삶의 방향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는 이정출의 모습이 매우 당당하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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