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함도 삶의 일부

발리 한달살이 Day 7

by 나우히어


어젯밤에 눈을 감으며 궁금했다. 과연 토요일에도 평일처럼 새벽 6시에 근처 사원에서 울려 퍼지는 기도소리에 잠이 깰까.


어김이 없었다. 내 느낌인 건지는 몰라도 소리의 크기가 조금 줄어들긴 했으나 시간은 정확했다. 소리에 예민한(잠귀가 밝은 편인) 나는 늦잠을 자도 되는 토요일 아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잘 수가 없었다.

일찍부터 잠이 깬 김에 특별한 일정이 없는 오늘의 시간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결국 넷플릭스 유료 결제를 하고 딸이 깨면 함께 "우 to the 영 to the 우!"를 볼 준비를 해두었다.(한국에서 손쉽게 이용하던 사이트 및 어플들은 모두 해외라서 이용이 안된다는 메시지가 떴고, 넷플릭스도 이미 다른 사람의 아이디를 받아서 사용하고 있던 터라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다 결국 유료결제를 하고야 말았다.)

오전 7시. 아이는 아직 한창 꿈나라인 것 같아 나는 최대한 조용히 책과 핸드폰을 들고 커튼 너머 테라스로 나갔다. 그곳에서 약 2시간 정도 책도 읽고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검색도 하고 바깥 풍경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9시에야 딸이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침으로 사뒀던 빵과 사과, 커피 및 우유를 먹은 후 지난밤 그렇게나 보고 싶었던 우영우를 드디어 보게 되었다.


원래 별다른 계획이 없었던 발리에서의 첫 토요일의 계획은 느지막이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우영우 9,10화를 본 후 점심으로 컵라면을 먹고 오후에 마사지를 받은 후 근처 몰에 가서 구경을 하고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서울옥 in sdewalk mall Jimbaran


하지만 우영우를 보던 도중, 어제 PCR 검사를 받은 언니와 아들이 코로나 음성인 것으로 결과가 나왔다는 연락이 와 기쁜 마음에 계획을 급수정하게 되었다. 11:30 즘 만나 몰에 가서 점심을 먹고 구경을 하고 마사지를 받고 돌아오는 것으로.


Jinje Root COFFEE in Jimbaran


언제나 그렇듯 인생은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마사지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호텔 근처 카페에 들르는 것이 추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호텔에 돌아오니 오후 4시도 안 되었다.


원래 여행을 가든 무얼 하든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는 편은 아닌 데다가 특히 이번 발리행은 거의 한 달을 있는 일정이고 평일에는 아이의 캠프 일정이 나름 빡빡했기 때문에 꼭 이곳을 가야지 꼭 무엇을 해야지 하는 것이 없이 그냥 왔다.



그런데 막상 오늘 하려던 것을 다 했는데도 오후 4시밖에 안 되니 너무 대책이 없는 건가 싶기도 했다. 계획적이지는 않지만 또 멍하니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못 견디는 성향인 나는 잠깐 쉬고 다시 나와 울루와뚜 절벽사원을 가자고 딸을 꼬셔보았다. 역시나 딸의 반응은 시큰둥했지만, 내가 좀 더 강하게 설득하면 아직까지는 내 말을 잘 따라주는 착한 딸은 어쩔 수 없이 나를 따라나설 것을 예상하며 우선 방으로 들어왔다.


오전에 못 본 우영우 10회를 보고 나니 5시가 넘었고, 막상 나도 다시 나가려니 귀찮은 마음이 들었다. 울루와뚜 절벽 사원은 내일 오후에 가기로 하고 그냥 오늘 남은 시간은 무료하게 보내기로 했다.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비행기로 약 7시간 걸리는 인도양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타국의 섬에 있지만 마치 평범한 여느 주말처럼 집에서 라면을 먹고(물론 끓여먹는 것아 아니고 컵라면이지만) 딸은 수학 문제집을 풀고 홈트를 하고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토요일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 4박 5일 정도의 일정이라면 시간을 쪼개어 하루에 여기저기 다 가봐야겠지만, 우리는 4주 동안 있을 건대 하루 정도 특별한 일정이 없다고 아까울 건 없는 거 아니겠어. 나의 최대의 무기인 자기합리화를 장착하며 오전에 서핑을 하고, 오후에 울루와뚜 절벽 사원을 갈 내일을 위해 오늘은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해야겠다.


P.S 1

아까 마사지를 친해진 언니와 딸과 나, 이렇게 셋이 함께 했는데(여자들만의 시간) 마사지가 끝난 후 카페에 갔을 때 나 빼고 둘은 우두둑 소리가 안 나서 아쉬웠다며 “우리는 타이 마사지가 딱이야~”라며 급 공감대를 형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어른스러운 대화에 자연스럽게 참여하던 딸은 룸에 들어오자마자 장난스러운 소리를 내며 아이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어쩔 땐 나보다 더 사회적인 딸의 면모가 놀랍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P.S 2

점심 먹은 후 잠시 마트를 둘러보던 중, 딸이 먹고 싶어 했던 망고스틴이 보여 3개를 사 왔는데 한 개는 까던 도중 개미가 나와 마저 까는 것을 포기, 한 개는 개미는 안 나왔지만 뭔가 신선하고 탱탱한 느낌이 안 들어 먹는 것을 포기, 나머지 한 개는 까보는 것 자체를 포기. 어제 산 사과도 아침에 먹어보았는데, 겉은 괜찮았는데 속으로 들어갈수록 퍼석해져 말 그대로 사과 겉핥기 식으로 먹고 말았다. 아침마다 수박, 멜론, 파인애플 등이 조식에 나오지만 전체적으로 맛이 싱겁기 그지없다. 한국에 돌아가면 신선한 과일을 양껏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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