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what I want

발리 한달살이 Day 13

by 나우히어


지겨운 호텔 조식은 패스하고 룸에서 어제 산 빵과 오렌지, 푸딩과 마실 것 등으로 아침을 대체한 후 아이만 캠프 체크인 장소로 내려보낸 후 나는 바로 1층으로 내려가 택시를 불렀다. 오늘은 어제 마음먹은 대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조식 먹고 체크인 장소에 아이와 같이 가면 무조건 엄마들을 마주칠 테고 그럼 또 오늘은 뭐해? 하며 은근히 피곤한 눈치싸움에 동참을 하게 될 것 같아 9:30에 있는 요가 수업도 째고 택시에 몸을 실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딸만 있는 걸 본 다른 언니가 아프냐고 톡이 왔다. 그 언니는 어제저녁에 남편이 왔기 때문에 역시 오늘은 따로, 또 한 언니는 어제부터 속이 안 좋아 오늘은 따로, 최근에 눈탱이를 맞아 힘든 젊은이 역시 오늘은 따로.


Balangan beach in Bali

나 때문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나를 시작으로 오늘은 모두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날이 되었다. 나의 행선지는 발랑안 비치. 서핑과 일몰로 유명한 바닷가, 절벽샷이 유명하다는 정도의 정보만 가지고 일단 가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발리에 와서 택시를 혼자 타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뭐든지 느릿느릿한 동남아 특유의 일처리 속도들을 겪으며 우리들끼리 농담 삼아 여기에서 시간을 제일 잘 지키는 건 고젯뿐이라고 할 정도로 이제 고젯은 믿고 택시를 부르고 음식을 주문하는 어플로 인식이 되어 버려서인지 혼자 타는 택시가 크게 걱정스럽지는 않았다.


숙소에서 발랑안 비치를 가는 길은 그동안 다녔던 곳보다 조금 더 고불고불하고 좁은 길을 계속 계속 지나가야 나오는 곳이었다. 도로에 누워있는 개들도 유독 더 많았고, 비치에 가까워지자 도로에 닭들도 막 지나다니는 풍경이 뭔가 신기하고 귀엽고 재밌기까지 했다.


숙소에서 서쪽으로 약 8km를 달려 도착한 발랑안 비치. 내가 너무 이른 아침에 가서였을까. 처음 마주한 모습은 한국의 약간 관리 안되어 있는 해변가 같은 느낌이었다. 모래사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해변가에 자리 잡은 카페, 썬베드 같은 것들이 깔끔한 느낌은 아니고 오래 동안 방치되어 있어 낡은 느낌이었다.


사실 이번 주에 오전에 엄마들끼리 오늘 뭐하지?를 의논할 때 나는 두어 번 정도 바다를 가자고 제안했었다. 발리에서 가본 바다보다 아직 안 가본 바다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는 예전부터 바다에 직접 들어가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모래와 바다와 하늘이 어우러진 그 풍경을 하염없이 보고 사진 찍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책도 보고 맥주도 마시고 하는 것은 좋아했었다. 그런데 일행 중에 바다를 뭘 또 가?라고 반응하는 사람이 있어, 내 제안은 묻히곤 했었다.


그리고 뭐랄까, 다른 나라 여자들은 내가 친분이 없어서 모르겠으나, 유독 한국 여자들은 동남아 같은 해외에 나왔을 때 청결이나 일처리 속도에 대한 것을 엄청 트집 잡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해외에 나오면 다 애국자 된다고, 대한민국이 얼마나 우수한 나라인지 실감하게 되는 건 사실이지만, 나는 솔직히 그런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이 나라 사람들은 손을 안 씻어.”

“호텔 청소하는 애들 너무 더러워.”

“얘들은 아침에 말하면 저녁에 해줘.” 등등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딱 이사 오기 전 동네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르곤 한다. 우리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이 동네에서 구축 아파트(우리 집)와 신축 아파트(뉴타운) 사이에 위치해 있었는데, 실제 거리로는 우리 집에서 유치원까지가 더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학부모 모임에서 뉴타운 사는 어떤 엄마가 나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어머, 거기서 여기까지~너~~무 멀지 않아요?” 했을 때의 그 느낌. 같은 동네에서 뉴타운에 사는 게 그렇게 유세를 떨 일인가, 그렇게 잘 살면 강남에 살지 왜 여기서 이러지?

위와 같은 일화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자신이 생각했을 때 남보다 조금 나은 면이 있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을, 대상을 싸잡아 무시하는 듯한 그런 태도.


바다에 오면 해초 냄새도 나고 물비린내도 나고 화장실 이용도 불편한 게 당연한 거지, 그런 모든 것이 다 싫으면 투숙객 외에는 들어오지 못하게 철저하게 관리되어 있는 프라이빗 비치를 이용할 수 있는 곳에 투숙을 하던지. 다른 나라에 가면 이래저래 불편한 게 있을 수밖에 없지, 모든 게 자기 나라에서와 똑같을 수 있나. 그러고 싶으면 우리나라보다 훨씬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곳(그런 곳이 있을까 싶지만)으로 여행을 가던지.



아무튼 오늘 발랑안 비치에 발을 디디는 순간, 혼자 오길 잘했다 싶었다. 나는 혼자 온 자의 여유를 마음껏 누리고자 해변의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발길 닿는 대로 가보았다. 해변의 양쪽 끝에 절벽이 있는 구조였고, 인터넷에서 발랑안 비치하면 절벽샷이 유명하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나 둘 중에 한쪽의 절벽에는 올라가 보고 싶었으나 그 루트와 방법은 결국 찾지 못했다. 아니 굳이 찾아 기를 쓰고 올라가려고 하지는 않았다. 갈 수 있으면 가고 아니면 말고의 심정이었다.



대신 엄청 큰 나무도 보고, 종교 시설도 보고, 서핑 보드를 들고 있는 외국인 할아버지와 이야기도 나누어 보았다.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도 구경했다. 모래, 바다, 하늘 삼위일체의 사진을 엄청 여러 장 남겼고, 셀카도 많이 많이 찍었다.


SUZUKE WARUNG in Balangan beach

그리고 썬베드를 빌려 모닝 빈땅도 먹고 책도 읽고 외국인들도 실컷 구경했다. 점심을 꼭 먹어야 해서가 아니라 솔직히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한국 엄마들이 불결하다며 질색할 것 같은 비치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바나나 셰이크와 발랑안 버거를 시켜 먹고 또 한참을 앉아서 서양인들을 구경했다.


오늘 그곳에 4~5시간 정도 있는 동안 현지인을 제외한 관광객 중 동양인은 나뿐이었다. 그래서 더욱 특별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티를 내든 그렇지 않든 자신만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부분 또는 상황이 있을 것이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 아침 발리의 발랑안 비치에 제일 먼저 와서 빈땅 2병을 먹은 동양 여자.


썬베드를 빌려준 아저씨든, 서핑보드를 들고 나와 이야기를 했던 할아버지든, 바나나 셰이크와 발랑안 버거를 가져다준 여성이든, 택시를 태워준 기사든, 썬베드 양 옆에 있던 외국인 커플들이든, 누구라도 한 사람이 오늘의 나를 특별하게 기억해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


그들 중 누구라도 앞으로 살면서 다시 만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겠지만, 2022년 8월 5일 아침, 발리의 한 해변에서 내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게 된다면, 그렇게 내가 지나왔던 40여 년의 시간, 내가 머물렀던 꽤 많은 장소에서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나의 이미지들을 모아 콜라주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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