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vs 수영장

발리 한달살이 Day 15

by 나우히어



바다가 좋아 수영장이 좋아 물어보면 수영장, 그럼 바다가 좋아 산이 좋아 물어보면 산. 나에게 바다는 언제나 무서운 곳, 싫은 곳이었지 좋아하는 곳, 들어가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그런 나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발리에 오기 전 수영도 조금 배우고 캠프 추가 일정으로 일요일에 자녀와 부모가 함께 서핑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여 그것도 2주 연속 신청을 했었다.



그래서 지난주 난생 처음으로 서핑을 해보았고, 비록 엉거주춤이지만 인생 사진도 건졌다. 서핑이라는 것을 한 번 해보고 나니 역시 금세 싫증을 느끼는 나는 오늘 또 서핑을 꼭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어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만약 오늘 서핑이 지난주 일요일처럼 오전에 시작되었다면 무조건 취소를 했을 텐데, 1시에 호텔에서 출발하는 일정이라고 해 그래도 참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surfing in Bali

그러던 중 오전에 엄마들 단톡방에 미리 서핑 신청을 안 한 엄마 중에 첫째는 서핑을 하고 싶어 하는데 둘째는 또 너무 싫다고 하여 중간에서 난감하다는 내용이 올라왔고, 난 그 기회를 잽싸게 포착했다. 마침 서핑을 하고 싶어 한다는 첫째가 우리 아이와 같은 반 언니라 그럼 내가 신청해 놓은 것을 그 아이에게 넘겨주기로 마치 아주 큰 호의를 베푸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는 바다에 들어가지 않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아이도 피곤한 지 어제저녁부터 서핑을 안 가고 싶어 했는데 그 언니도 한다고 하니 순순히 따라나서 나로서는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었다.


바다에는 안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오늘 이왕 물놀이로 하루를 시작하는 김에 서핑이 끝나고 어제 다른 엄마들이 엄지척을 날렸던 선데이즈 비치클럽을 갈 계획이어서 아예 수영복을 입고 룸을 나섰다.

아이는 이제 벌써 발리에서 서핑이 3번째라고 처음 한 두 번만 넘어졌지, 나중에는 파도를 타는 족족 보드 위에 일어서서 여유 있고 안정적인 자세로 물 위를 떠다녔다. 더 멋진 사진을 남겨주고 싶었지만 핸드폰 카메라로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찍다 보니 한계가 있어 그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내 눈으로 직접 봤으니까 그것으로 만족.


Jimbaran beach in Bali


역시 아이는 지난주처럼 서핑이 끝난 후 또 실제 파도타기를 원했고, 오늘 급 동참하게 된 같은 반 언니는 쉬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바다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들어가게 되었다. 짐바란 비치는 한국의 서해바다처럼 실제 발리의 서해바다이기도 했고 꽤 먼 곳까지 들어가도 깊이가 얕아 아이는 나보고 자꾸자꾸 더 들어오라고 성화였다. 그래, 이왕 들어온 거 조금 더 들어가 보자.


그렇게 아이와 함께 잠깐이지만 파도타기를 해보았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작년인가 아이와 남편과 워터파크에서 구명조끼를 입은 상태에서 인공파도를 타던 중 아주 잠깐이지만 죽음의 공포를 느낀 적이 있어 저쪽에서 제법 큰 파도가 나를 향해 오는 순간 겁부터 났다. 하지만 발이 닿는 곳이니까 큰맘 먹고 파도가 나를 덮치기 직전 깡총 뛰어올라보니 파도와 함께 내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가 떨어지는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아 이런 느낌에 내 딸이 다른 아이들이 서핑을 하고 나서도 또 이렇게 파도타기를 하려고 하는 거구나 싶었다.


아무튼 그렇게 바다에는 안 들어가려고 했던 나의 계획은 여지없이 틀어졌지만 그래도 덕분에 딸과 친구 같은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이 사진 때문인지 아니면 그래도 잠깐이지만 바다에 함께 들어가 파도타기를 한 덕분인지 나중에 딸이 “우리는 친구야~”라며 제법 애정 표현을 해주기도 했다.


바다에서 논 후 대충 모래만 털어내고 바로 택시를 불러 선데이즈 비치클럽으로 향했다. 발리의 남해안에 위치한 곳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수영장과 바다를 오가는 재미가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런데 너무 엄마들의 후기만 듣고 사전 정보 없이 가서였을까. 입구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오늘 그곳에서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어 더 이상 입장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와 딸이 너무 아쉬워했는지, 다행히 선데이즈 비치클럽의 담당자가 근처의 다른 비치클럽을 안내해주어 차를 그곳으로 바로 돌리기로 했다.

이왕, 수영장에 오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다른데라도 가야지.



그렇게 급 처음 들어보는 비치클럽을 다시 찍고 가는 길에 급 검색을 해보니 우리가 갈 곳은 이름도 신선하면서 고급진 Melasti beach에 위치한 Palmilla Bali Beach Club이었다. 택시에서 내려 입구로 들어가는데 벌써 비싸겠다 싶은 기운이 확 느껴져, 괜히 딸 앞에서 허세를 부려보았다.


아~역시 엄마가 오는 데는 항상 이렇게 고급져~


가방 검사도 하고 이미 키가 나와 얼추 비슷한 딸은 성인 요금으로 적용되어 입장료를 1인당 100,000 루피아씩 결제하고 베드 또는 다른 자리를 선택하라고 하길래 이왕 온 거 베드를 잡기로 했다. 500,000 루피아. 음 역시 예상대로 좀 가격대가 있군. 하지만 그렇게 들어간 그곳은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훌륭했다.


Palmilla Bali Beach Club in Melasti beach


그래, 이뿌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해. 진정한 루프탑 수영장 뷰, 탁 트인 바다와 하늘, 둠칫 둠칫 DJ가 직접 틀어주는 빵빵한 음악, 맛있는 음식까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비치클럽이었다. 조금 늦게 4:30 즘 도착했고, 8시까지 운영한다고 해 우리는 해가 지고 캄캄해질 때까지 있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나름 밤의 비치클럽의 분위기도 발리에 온 지 15일 만에 처음으로 느껴볼 수 있었다.


내 기분 같아서는 끝나는 시간까지 꽉꽉 채우고 싶었지만 7:30 즘 비가 떨어지기 시작해 내일부터 캠프 마지막 주 일정에 참여해야 할 딸을 위해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일어섰다.



오늘 하루 바다와 수영장을 제대로 만끽한 하루였다. 이제 다음에 누가 나에게 바다가 좋아 수영장이 좋아 물으면 바로 수영장이라고 대답은 못하고 조금 고민을 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한 거겠지. 어느덧 훌쩍 커 정말 친구처럼 대화도 되고 사진도 찍어주고 갑작스러운 계획 변경에도 불평 없이 나를 따라와 주는 딸과 함께하면 바다든 수영장이든 어디든 다 좋을 것 같다.




딸이 그려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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