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한달살이 Day 24
발리에서 택시를 타면 기사들이 두 부류로 나뉜다. 영어를 할 줄 알아 말을 거는 부류와 영어를 못해 말을 안 거는 부류. 말을 거는 기사들이 주로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 발리에 온 지(머문 지) 얼마나 되었니?이다. 딸과 둘이 탔을 때는 "온 지 1(2 or 3)주 되었어."라고 답을 했는데, 남편과 셋이 탄 이후로는 "나와 딸은 3주 전에 왔고 남편은 지난주 토요일에 왔어."로 대답이 더 길어졌다. 물론 그냥 뭉뚱그려서 대답할 때도 있지만.
아무튼 우리는 이미 3주 동안 발리에 있었고, 남편이 뒤늦게 합류한 상황이다 보니 남편이 여기 가볼까? 하는 곳 중에 우리가 이미 경험해 본 곳이 꽤 많았다. 그래서 어제 그제 계속 “거기는 별로야, 거기는 생각보다 비치가 작아” 류의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조금 짜증이 날법한 피드백을 하게 되었었다. 그러다 오늘 아침 조식을 먹으며 ‘내가 또는 나와 딸이 가보았어도 또 가지 뭐.’라고 생각을 바꾸고 스미냑을 가보기로 했다.
스미냑은 4년 전 발리에 왔을 때, 남편은 회사 일정 때문에 나와 딸만 갔었고, 이번에 나 혼자 낮에 한번, 딸과는 저녁에 택시로 지나가면서 또 한 번 다녀왔던 곳이다. 어쨌든 남편은 한 번도 못 가봤으니 그래 또 가보자!
오전에 남편은 홀로 수영 & 태닝을 하고, 딸과 나는 방에서 쉬면서 이것저것을 한 후 12:30 즘 택시를 타고 스미냑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SUSHIMI라는 회전초밥집. 실제로 가보니 회전초밥집은 아니고 회전롤집이었다. 그래도 주문하면 초밥이 나오기는 하는데, 회의 종류가 많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김치우동과 스시 샐러드는 먹을만했다.
우리가 많이 먹은 건지 비싼 건지 675,675 루피아 (약 60,000원)가 나왔다. 다음 행선지는 스미냑 비치. 딸과 4년 전에 왔을 때는 비치는 안 갔었고, 지난번에 혼자 왔을 때는 더블식스 비치를 갔었다. 그래서 나름 스미냑 비치는 처음이라 뭐든지 처음을 좋아하는 나는 흔쾌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스미냑 비치는 어쩐지 파도가 굉장히 가까이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바다를 본 딸은 어느새 신발을 벗고 파도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고, 나도 바지를 걷어 올리며 따라 들어갔다. 그렇게 둘이 잠깐 시원한 바닷물을 느끼며 파도를 구경하고, 남편은 그런 우리 둘을 찍어주고 있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큰 파도가 다가와 나와 딸은 물론이고 나름 멀찍이서 모래사장에 앉아 있던 남편과 그리고 그 옆에 두었던 내 가방까지 물에 다 젖는 일이 벌어졌다.
안돼~빨리 주워~!!
소리를 지르며 다가갔지만, 이미 내 가방과 그 안에 있던 물건은 다 바닷물로 샤워를 한 상태. 다행인지 불행인지 가방은 천으로 된 그물 가방이어서 물기를 짜면 되었지만 문제는 그 안의 물건들. 나와 딸의 휴대폰, 현금 지갑, 화장품, 선글라스 케이스. 다행히 지갑 안으로 물이 들어가지는 않아 돈은 괜찮았고, 화장품과 선글라스 케이스도 모래와 물기를 털어내니 괜찮아졌다.
하지만 나의 아이폰은 멀쩡했는데 딸의 갤럭시폰은 먹통이 되어버렸다. 지난번에는 폰을 잃어버릴 뻔 해 말썽이더니 오늘은 물에 젖어 또 말썽이구나. 외출할 때 딸의 폰을 두고 나오기로 했으면서 하필 오늘 왜 가지고 온 걸까? 룸에 와서 드라이기로 말려도 보았지만 충전도 안되고 여전히 먹통 상태. 한국에 돌아가 수리를 맡겨보아야겠지만 큰 기대는 말아야겠다. 아무튼 그렇게 스미냑 비치에서 짧지만 강렬한 파도를 경험하고 오는 길에 예약을 해 둔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발마사지를 60분씩 받고 이어진 다음 행선지는 아시아에서 제일 크다는 스타벅스. 역시 나는 며칠 전에 이미 와 본 곳. 하지만 남편과 아이에게 굳이 그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스미냑 골목을 가로질러 스타벅스까지 약 10분 정도를 걸어갔다. 지난번에는 스타벅스에서 빈땅 슈퍼마켓까지 10분 그리고 빈땅 슈퍼마켓에서 더블식스 비치까지 또 10분 정도를 걸어갔었고, 오늘은 스미냑 비치에서 마사지샵까지 10분 그리고 마사지샵에서 스타벅스까지 또 10분 정도를 걸어갔으니 비슷한 길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오고 가는 셈이었다.
같은 공간 다른 느낌. 혼자 걸을 때와 함께 걸을 때는 달랐다. 혼자는 혼자여서 좋았지만 어딘지 조금 긴장되고(외국이어서 더) 살짝 지루했다면 함께는 든든해서 마음이 편하고 덜 지루했던 거 같다. 그렇게 도착한 스타벅스도 마찬가지. 같은 공간인데, 아마 두 번째 방문이어서 그런 면도 있었겠지만 어딘지 더 편안했다. 그래서 혼자 왔을 때는 미처 담지 못한 부분을 사진으로 더 남기고, 3종류의 음료를 나눠 먹었고, 그날은 보이지 않았던 그네도 타보고,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찍고 싶은 곳에서 인증샷도 남겼다.
저녁은 또 뭘 먹어야 하나. 한국에서도 보통 주말에 저녁은 주로 외식을 하는데, 맛집을 찾는 것은 거의 남편 몫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남편이 이미 검색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나는 그냥 맡겨두었다. 남편이 검색한 곳은 꾸따 비치의 선셋을 볼 수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루프탑 자리에 혹시라도 못 앉을까 봐 예약을 해놓고 이동했다.
꾸따 비치의 선셋만 벌써 몇 번째일까. 솔직히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남편이 결정을 한 것에 만족해하며 따라간 상황이었는데, 루프탑으로 올라간 순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선셋이라는 것 자체, 하늘이라는 것 자체가 매번 모습이 다르기도 하겠지만, 같은 하늘도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동안은 지면에서 꾸따 비치의 선셋을 봤었다면 오늘은 3층 높이에서 봐서 그런지 또 느낌이 달랐다. 그리고 마침 우리 앞쪽에 외국인 선남선녀 커플이 앉아 있었는데, 우리가 그들을 볼 때 그들 뒤로 펼쳐지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하늘의 색이 마치 CG처럼 보여 무슨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장면에 반한 딸은 몰래 그들의 뒷모습을 찍기까지 했다.
완벽한 뷰와 점심에 비하면 훨씬 만족스러웠던 음식(심지어 가격은 비슷), 직원들의 친절한 응대까지 더할 나위 없는 저녁 시간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마사지를 한번 더 받으려던 남편은 딸과 밤수영을 하기로 마음을 바꿔 덕분에 또 잠깐의 혼자만의 시간이 생겼다.
이제 약 50시간 후면 우리는 공항에 있을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각자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지금 이렇게 한 공간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이 순간을 각자의 마음속에 저장해두느라 또 우리는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