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읽은 책

발리 한달살이 Day 23

by 나우히어



발리에 오기 전 해야 할 일 목록 중에 도서 구매가 있었다. 갑자기 내가 1년에 책을 몇 권이나 사는지 궁금해져 어플에 들어가 확인해보니 작년 12월 9일부터 올해 7월 11일 약 7개월 동안 39권을 주문했는데 그중 아이 책이 7권이었으니, 내 책은 32권이었다.


그럼 실제 7개월 동안 32권을 다 읽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예전에 한동안 책을 많이 읽을 때는 1년에 50권 넘게 즉, 일주일에 한 권씩 읽었던 적도 있지만 요즘에는 그 정도는 아니다. 올해 들어 지금까지 읽은 책이 23권이니 1년에 약 30권 남짓을 읽는 것 같다.


잠깐 다른 얘기지만, 예전에 회사생활을 할 때 일적으로 알게 되었던 어떤 여성이 3년 동안 책 1000권을 읽은 후 그 내용으로 책을 출판했다고 하여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1년에 333권을 읽으려면 거의 하루에 한 권을 읽어냈다는 것인데, 솔직히 나는 아직까지도 그 부분을 믿을 수가 없다. 애 둘을 키우는 워킹맘이었는데 아무리 잠자는 시간을 줄인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하루에 한 권을 다 읽을 수가 있을까?


물론 책 중에는 유독 분량이 적거나 보통의 분량이라고 하더라도 술술 잘 읽혀 정말 하루는커녕 2~3시간 만에 다 읽을 수 있는 책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책은 또 뭐랄까 내 기준에서는 조금 가벼운 책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그 여성을 개인적으로 그다지 선호하지 않아서 더 그런 마음이 들었겠지만, 3년 동안 1000권을 읽었다는 것은 구라라고 친한 동료와 둘이 뒷담화를 하기도 했었다. 돌이켜보면 일종의 질투의 마음도 있었던 거 같다. 내가 쓴 글로 채워진 책을 출판해보는 것이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때 이후로 더더욱 책을 몇 권 읽었느냐보다는 어떤 책을 얼마나 깊이 있게 읽었고 또 그것을 오래 기억하고 나아가 내 삶에 조금이라도 적용해보느냐로 나의 독서를 평가하기로 마음먹었다.



발리에 거의 한 달을 있을 것이기에 책은 꼭 챙겨야 하는 물건 중의 하나였다. 다만 몇 권을 가져갈 것인가가 고민이 되는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가벼운(내용이) 책 위주로 4~5권(+아이책 3권)을 챙겼었다. 그런데 수하물 무게가 오버되는 상황이어서 책을 빼는 것으로 결정을 하고 과감히 2권(+아이책 2권)만 챙겨 왔다. 좀 가벼운 책 1권,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 1권.


마침 2권의 표지가 모두 바다와 관련이 있었던 것은 우연의 일치 아니면 내 무의식의 센스였던 걸로.


캠프 기간 중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가끔 애들 잠들고 나서 밤에 잠이 안 올 때나 아침에 일찍 깼을 때 아니면 낮에 특별한 일정이 없어 룸에 있을 때 뭐하냐는 말이 나온 적이 있다. 누구는 방정리를 한다고 하고 누구는 유튜브를 본다고 하고 누구는 티비로 한국 채널(tvN)을 틀어놓고 그냥 핸드폰 한다고 했다. 그 와중에 저는 책을 읽어요, 독서를 해요 라는 사람은 없었다.


분위기상 굳이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런 시간에 책을 읽었다. 그래서 아이의 캠프가 끝나기 전 이미 가져온 책 2권을 다 읽어버렸다. 그래서 남편에게 한 권 더 챙겨 오라고 해 지금 발리에서 3번째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아마 여기서 다 읽고 가게 될 것 같다.



첫 번째 책은 나중에 내가 인생을 돌아볼 때 나에게 영향을 준 작가를 꼽을 기회가 생긴다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리베카 솔닛의 회고록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이다. 리베카 솔닛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은유의 ⌜쓰기의 말들⌟이라는 책 속에서 만나게 된 구절 때문이다.


작가의 재능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희귀하지 않다. 오히려 그 재능은 많은 시간 동안의 고독을 견디고 계속 작업을 해 나갈 수 있는 능력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 리베카 솔닛


지금 이 문장을 다시 옮겨 적다 보니 내가 아직까지(?) 책을 쓰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많은 시간 동안의 고독을 견디고 계속 작업을 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의 부족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그 이후로 리베카 솔닛의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해 4권째 읽었고, 현재 나의 도서 어플 장바구니에는 또 그녀의 책이 1권 담겨져 있는 상태이다.


https://blog.naver.com/2gafour/222842813438



두 번째 책은 발리에 오기 전 읽기 시작해 오자마자 끝내려고 했던 책인데, 발리에 있는 동안 내가 제일 편하게 생각했던 80년생 두 언니들에게 잠깐씩 빌려주느라 조금 늦게 마무리가 되었다. 스벤 브링크만의 ⌜불안한 날들을 위한 철학⌟. 사실 나는 평소에 그렇게 마음이 불안한 상태는 아니기는 한데, 그냥 오랜만에 이런 책이 읽고 싶어 제목만 보고 주문했던 책이다.


휴가지에서 편안하게 읽기에 좋은 책이었다.


https://blog.naver.com/2gafour/222845592132




세 번째 책은 남편이 토요일에 오면서 가져온 것으로 김완의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와 내용의 책이다. 오늘 1/5 정도 읽었는데, 벌써 접힌 페이지가 꽤 많다(책을 읽으면서 기억해두고 싶은 구절이 나오면 페이지 귀퉁이를 접어두었다가 틈날 때 기록해둔다). 특수 청소 서비스 회사 ‘하드웍스’ 설립자가 일하면서 맞닥뜨린 죽음 현장에 드러난 인간의 삶과 존재에 대해 기록한 내용이다.


https://blog.naver.com/2gafour/222854043778


두 번째 책과는 다르게 사실 휴가지에서 읽기에 적합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것 또한 타자의 시선이지 않을까. 죽음은 내 삶의 중요한 모토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이런 책을 읽고 있는 나 자신이 조금은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 하루는 정말 휴가다운 휴가처럼 보냈다. 아침에 조식을 먹고 호텔 수영장에서 늦은 오후까지 시간을 보내다 6시쯤 호텔 밖으로 나갔다. 멀리까지 간 것은 아니고 바로 맞은편 꾸따 비치로 가서 해가 지는 하늘과 바다를 조금 보다가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저녁을 먹고 마사지를 받고 밤 10시에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우리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지만, 어떤 누군가에게는 평생 살면서 소원인 하루일 수도 있겠지.


매일매일이 특별하지 않더라도 그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두 특별한 존재라고 나는 생각한다. 마사지를 받는 동안 먼저 와서 마사지를 받고 있던 덩치 큰 백인 남자가 코를 고는 소리에 나와 마사지사의 눈이 마주치며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런 찰나의 웃음, 행복, 기쁨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그 느낌을 잘 간직하는 나는 참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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