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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Dec 03. 2022

160921-02

이사 다음 날


석현 #1     


찌익 찍(박스에 붙여진 테이프를 뜯어내는 소리)

부스럭 부스럭(비닐봉지를 찾는 소리)

띠릭 철컥(현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     



테이프를 뜯어내는 소리에 잠이 깼다. 바닥이든 침대에서든 배게만 있으면 잘 자는 편이지만 어제는 거의 한숨도 자지 못했다.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 것인지 밤새 모기 한 마리가 앵앵거리는 소리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어젯밤 현관 앞에서 마주친 여자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무튼 해가 뜰 때까지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아침결에 겨우 잠이 들었는데 주연의 박스 뜯는 소리에 잠이 깨버렸다. 그 소리는 부스럭 소리로 그리고 현관문 열고 닫는 소리로 이어졌고, 결국 잠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핸드폰을 보니 시간은 9시 15분.



일요일 아침 그것도 이사 온 다음 날 아침, 굳이 이 시간에 일어나 소리를 내는 주연에게 짜증이 난다. 아니 실은 주연에게 짜증은 그전부터 나 있는 상태다.



올해로 결혼 10년 차. 이사만 벌써 4번째다. 첫 번째 이사는 18평 조그만 방 2칸짜리 신혼집에서는 딸 지민을 재울 공간이 마땅치 않아 27평 방 3칸짜리로 옮기느라 하게 되었다. 두 번째 이사는 전세 가격이 치솟아 주인이 요구하는 금액을 도저히 맞출 수가 없어 서울에서 더 먼 곳으로 들어가느라 하게 되었다. 세 번째 이사는 주연이 회사를 옮기면서 출퇴근 거리가 너무 멀어져 지민이 유치원 등하원이 불가능하여 주연의 회사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기느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제. 네 번째 이사는 그래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전세가 아니라 매매. 드디어 결혼 10년 만에 내 집을 가지게 되었다. 지민이가 고학년으로 올라가기 전에 경기도보다는 서울에서 교육을 시키는 게 낫지 않겠냐는 주연의 의견, 그리고 마침 전세가와 매매가가 큰 차이가 없었고 10년 동안 맞벌이를 하며 어느 정도 목돈도 생겼고 대출금리도 낮아져 여러모로 집을 사기에는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그래서 이번 이사는 큰 트러블 없이 서로 기분 좋게 준비해왔다.



사실 그동안 이사만 하면 주연과 싸웠다. 주연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원인은 딱 하나다. 바로 주연의 절약정신. 물론 그 절약정신 덕분에 10년 동안 아이를 키우면서도 악착같이 돈을 모아 서울에 내 집 마련이라는 큰 성과를 이루게 되었지만 그 절약정신으로 인해 이사 때마다 싸우게 되는 상황이 이제는 지겹다.



이사를 하면 돈이 들게 마련이다. 주연은 그 비용을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용을 쓴다. 이사 비용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나는 부분은 포장이사 업체에 맡기느냐 일반이사 업체에 맡기느냐이다. 신혼집에서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이사할 때만 해도 짐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주연이 임신 중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아이가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기에 둘이서 미리 박스를 구해다 짐을 싸는 것이 그럭저럭 가능했다.



하지만 그때도 결국 이사하는 날 대판 싸웠다. 주연이 비용을 아끼려고 톤수가 작은 트럭을 불러 짐을 다 싣지 못했기 때문이다. 임신 중인 주연에게 웬만하면 화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3톤짜리 하나를 부르라고 했는데 주연은 1톤짜리 2대를 불렀다. 결국에는 돈을 더 주고 1톤짜리 트럭이 한 번 더 왕복을 하고 11시가 되어서야 짐을 모두 옮길 수 있었다. 그때부터 이사만 하면 싸우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젯밤까지 순조로웠다. 현관 밖에서 쓰레기들을 봉투에 넣기 전까지는.



주연에 대한 짜증을 누르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마침 주연이 들어온다.



“어제 쓰레기를 그냥 넣기만 하고 봉하지를 않으면 어떡해?”



이번만큼은 싸우고 싶지 않아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대답한다.



“어차피 오늘 버릴 때 분리해서 버려야 되니까 열기 힘들까 봐 그랬지.”

“아니 그럼 좀 잘 세워놨어야지 어떻게 세워 놨기에 쓰러져서 쓰레기가 밖으로 다 나왔잖아.”


“그럼 니가 하지 그랬어.”



결국 이 말을 내뱉고야 만다. 주연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그리고 듣는 순간 입을 닫아버리는 말. 그렇게 입을 닫고 등을 보인 채 서있는 주연이 보기 싫고, 주연을 또 그렇게 만든 나에게 화가 나 담배를 챙겨 밖으로 나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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