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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Dec 15. 2022

내가 선택한 고통

다섯 번째 타투를 기념하며

  

        

어제 벼르고 벼르던 타투를 드디어 했다. 왜 벼르고 벼르던 이냐면, 처음 이 내용을 타투로 새겨야지라고 마음먹은 지 4개월이나 지나서야 실행을 했기 때문이다. 보통 무언가에 대해 마음을 먹으면 금방 실행을 하는 성격이라 4개월 만에 실행을 했다는 것은 나에게는 꽤나 오랜 고민과 검토의 시간을 거치고 내린 결정이라는 뜻이다.      


왜 이리 오래 걸렸냐면 앞의 타투들은 레터링이어서 글씨체와 크기, 타투의 위치 정도만 선택하면 되었었는데, 어제 한 타투는 디자인이 들어가는 거여서 나름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 중간에 타투에 신경을 쓰기 힘든 시간들이 좀 있기도 했었고.     


아무튼 내 인생의 첫 이미지 타투는 무려 3 사람의 손을 거쳐 디자인이 완성되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딸에게 부탁했던 첫 번째 이미지. 탈락.   

   

앞선 네 개의 레터링 타투를 해줬던 타투이스트에게 부탁했던 두 번째 이미지. 탈락     



다른 타투샵에 의뢰했던 세 번째 이미지들. 탈락     


아, 디자인은 어려운 거구나를 실감 하며 답보상태에 빠져있던 그때, 우연히 읽고 있던 책에서 발견한 내가 찾던 이미지.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애덤 스미스 원저, 러셀 로버츠 지음

https://blog.naver.com/2gafour/222905320399




다시 레터링 타투를 해줬던 타투이스트에게 한번 더 요청해서 받은 이미지. 음, not bad.     



딸도, 타투이스트들도 다 물어봤었다. 이 그림은 무슨 의미인가요?라고. 사실 의미에 부합하는 제일 직관적인 이미지는 딸의 것이다. 내가 요청했던 의미가 바로 “책은 별이다.” 였기 때문이다. 그럼 왜 그 문장을 타투로 새기려는 건가요?라고 추가 질문을 한다면, 그냥 그 문장에 꽂혔기 때문이다.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지난여름 발리에 있을 동안 읽었던 책의 어떤 구절이 너무나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에, 그 구절을 읽었을 때의 느낌을 간직하고 싶어서?      


북극성은 지구에서 워낙 멀리 있기 때문에, 그 빛이 우리에게 도달하는 데는 300년이 넘게 걸린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의 빛이 우리에게 오는 데도 4년이 걸린다. 책은 별과 좀 비슷하다. 독자가 지금 읽는 것은 저자가 오래전에 열중했던 내용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가끔은 그저 책을 쓰고, 편집하고, 인쇄하고, 배포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도 해도 말이다. 책을 만드는 데 그렇게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곧 그 내용이 글쓰기에 앞서 있었던 관심의 잔류물이라는 뜻이다. 콜라주는 오래된 것의 흔적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것을 만든다. 쪼가리의 쪼가리성을 지우지 않고도 그것들로부터 새롭게 온전한 것을 만든다. 창조란 태초의 신이나 화가나 소설가처럼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이미 수많은 이미지와 생각과 잔해와 인공물과 파편과 잔여물로 터질 듯한 세상으로부터 뭔가 다른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콜라주를 낳는다. -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리베카 솔닛

https://blog.naver.com/2gafour/222842813438



어떤 누군가는 그냥 그 정도의 이유로 타투를 한다고 하면 이해를 못 하고 겉으로는 멋지다, 어울린다라고 하면서 속으로는 경솔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사실 타인의 평가를 고려했다면 타투 자체를 시도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이미 나에게는 이제 다섯 개의 타투가 자리 잡았고, 모르긴 몰라도 아마 앞으로 조금은 더 하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아직 새기고 싶은 문구가 몇 개 더 있고 새기고 싶은 위치도 몇 군데 더 있기 때문이다.

      

처음 타투를 한 가장 큰 이유는 고통을 느껴보고 싶어서이다. 좀 변태 같은 생각일 수도 있지만, 얼마나 아픈지 그 아픔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또 너무 아프면 견딜 자신이 없을 것 같아서 가장 작게 가장 가늘게 첫 번째 타투를 했다. 문구는 추가 설명이 필요 없는 carpe diem. 위치는 왼쪽 팔 위쪽에 가로로.      


한 번 해보니 생각보다 견딜만했기에 두 번째 타투는 조금 더 과감하게 시도하게 되었다. Natura non facit saltum. 무슨 뜻이냐고?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 위치는 오른팔 아랫부분에 세로로. 반팔을 입으면 무조건 보이고 긴팔을 입어도 소매를 조금만 걷으면 딱 보이는 곳.      


세 번째 타투는 carpe diem 이 너무 연해서 그 아래 하나 더. Letum non omnia finit.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내지는 않는다. ‘죽어야 끝난다’가 좌우명 중의 하나였던 나의 생각을 바꾸어준 문장.     

 

이렇게 세 개의 레터링 타투를 하고 발리에 갔었다. 역시 그곳에서도 대부분의 아이 엄마들은 타투를 보고 놀라면서 신기해하고 겉으로는 멋지다, 잘 어울린다고들 했었다.      


발리에 있는 동안 지천에 널린 타투샵들을 지나갈 때마다 현지에서 한번 받아볼까 싶은 유혹에 흔들렸었지만 정신줄을 잘 붙들고 한국으로 돌아와 네 번째 타투를 했다. The wind bloweth where it listeth. 바람은 임의대로 분다. 위치는 오른쪽 쇄골에 뼈 라인을 따라 약간 사선으로.   

  

그리고 어제 한 타투의 위치는 목 뒤.       


앞으로 몇 개나 더 하게 될까. 나도 모르겠다. 어제는 기존의 레터링들보다는 시간도 조금 더 걸렸고 조금 더 아팠다. 하지만 그 고통은 딱 그때뿐. 바늘이 멈추는 순간 고통도 끝난다. 그 고통이 조금 약하더라도 더 지속이 되는 것이었다면 아마 5개까지는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투가 완성되는 순간 고통도 함께 끝난다. 일시적 고통. 그때뿐. 그래서 바늘이 내 몸을 찌르는 동안에는 이제 그만해야지 싶지만, 바늘이 멈추면 바로 다음엔 어디에 하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중독이 되는 거겠지. 그래도 타투는 내 눈에 보기엔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보기엔 멋지고 쿨하고 섹시하니까 조금은 중독이 되어도 괜찮지 않을까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P.S      


나의 (선하고 올바른) 친구나 지인들은 옷소매 사이로 슬쩍슬쩍 보이는 두 번째 타투를 보고는 대체적으로 두 가지를 물어보았다.      


(남편 또는 부모님의) 허락은 받았어? 와 딸의 반응. 허락에 대한 나의 답은 “할 거다 또는 했다고 통보만 했어.”이고, 딸의 반응을 떠올려보면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던 것 같다.      


딸 : 많이 아파?
나 : 조금 아프긴 하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야. 바늘로 콕콕 찌르는 정도?
딸 : 그럼 나도 나중에 해야지.     


이 대화를 떠올리면서 역시 내 딸이구나 싶다. 나도 나중에 받아도 돼?라고 나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고 이미 미래에 자기도 할 거라고 나에게 통보를 한 것이니까. 뭐 그 어미에 그 딸이지 어디 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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