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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an 17. 2023

방학이 힘든 이유

개학이 기다려지는 이유

   

아이의 겨울 방학이 시작된 지 18일째다. 겨울 방학 기간이 총 61일이니 아직 70% 이상 남은 셈이다. 쉽게 말해 반도 안 지났다는 뜻이다. 그나마 처음 7일은 사이판에서 휴가를 보내고 왔고 주말도 두 번이나 보냈으니 제대로 된 방학은 이제 겨우 7일째. 그런데 나는 왜 이리 벌써 지치는 걸까?      


엄마 입장에서 자녀의 방학이 힘든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 차리든 시키든 사 먹든 어쨌든 삼시세끼를 챙겨야 한다는 점    

 

어제, 2월 말에 1년 일정으로 아이와 미국으로 떠나는 고등학교 동창이 있어 다른 동창과 함께 셋이 저녁을 먹었다.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왜 문제가 없겠냐만은 그래도 크게 모난데 없이 크게 치우치는데 없이 남들 보기에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다. 다양한 화제들 가운데, 미국으로 가는 친구가 문득 물었다.     


너네, 요즘 애들 뭐 먹여?


그렇게 시작된 방학 또는 주말에 삼시세끼를 챙기는 것에 대한 힘듦의 토로.      


질문을 한 친구는 최근에 포켓몬고 게임에 빠진 예비 초3 아들과 함께 동네를 돌아다니며 포켓몬을 잡다가 점심으로 김밥을 사 먹고 또 포켓몬을 잡다가 저녁으로 똑같은 김밥을 한번 더 먹였던 날이 있다며 끼니를 때우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사실 이 이야기는 두 끼 연속 김밥을 사 먹여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포인트 외에도, 매번 포켓몬을 잡으러 자신이 아들과 함께 나가는 상황에 대한 남편을 향한 불만이 더 큰 포인트이기는 했다.)     


아이가 셋이어서 전업주부가 되어버린 또 다른 친구는 좀 과장되게 “우리는 그냥 1일 1식이야.” 라며 그야말로 제대로 된 밥은 하루에 한 끼라고 했다.      


나는 아이가 하나뿐이지만 나름 워킹맘이기에 역시 1일 1식 수준이다. 학기 중은 평일에 아침에 간단히 먹고, 점심은 학교에서 중식을 제공해 주니까 저녁 한 끼만 챙기면 된다. 그 한 끼의 저녁도 <집밥 -> 배달음식 또는 컵라면 등의 간편식 -> 외식>의 루틴으로 채워지니까 매일 제대로 챙기는 것도 아니기는 하다. 그래도 어쨌든 하루에 한 끼였기에 크게 힘들지는 않았는데, 방학에는 매일 하루에 세끼를 챙겨야 하니 만만치가 않다.  

    

다른 글들에서 몇 번 언급했지만 나는 자기 관리 차원에서 많이 움직이고 덜 먹는(다동소식) 편이며, 먹는 것을 삶의 큰 즐거움으로 여기는 편도 아니다. 하지만 아이는 아직 더 커야 하며 한창 먹을 때다 보니(실제로 요즘에는 나보다 많이 먹는다) 엄마인 내가 아이의 식사를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데, 그게 나에게는 꽤나 힘든 일인 것이다.      


오늘만 해도 아침에 집밥, 점심에 간단 외식, 오후에 집에서 간식까지 챙겨주고 나니 저녁은 정말이지 나는 모르겠다의 심정이 되어버려, 일찍 온 남편은 라면을 끓여 먹었고, 딸은 학원을 다녀온 후 남편이 사 온 샌드위치로 저녁을 때우기로 했다. 나는 저녁 6:30-9:30 수업이 있어 자연스럽게 저녁을 안 먹는 것으로.  

    

예전에 코로나가 엄청 심하던 시절, 원격수업으로 하루종일 집에 있는 아들을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매일 아침과 점심을 나름 균형 잡힌 식사로 준비해 놓고 출근했다가 퇴근하고 와서도 저녁을 같이 집에서 해 먹는다는 워킹맘의 글을 보며 잠시 나를 반성했던 적이 있는데, 반성이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삼시세끼를 챙겨야 하는 방학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둘째, 주로 아이 등교와 동시에 확보되었던 혼자만의 시간이 사라졌다는 점    

 

나는 사교육계에 종사하다 보니 근무 시간이 주로 학생들이 하교한 오후 3시부터 시작된다. 즉, 학기 중 평일에 나는 아이가 등교하는 오전 8:30부터 일을 시작하는 오후 3:00까지는 자유부인이라는 뜻이다. 사실 나도 그 시간이 아까워 아르바이트를 해볼까 하는 생각은 여전히 하고 있지만, 아직은 그 시간을 좀 여유 있게 쓰는 것이 좋다. 그 시간이 있어야 오후에서 늦은 저녁까지 일을 할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도 하고.      


그 시간에 내가 주되게 하는 것은 아침 걷기, 수업 준비, 글쓰기, 집안일이다. 이 모든 활동들 중 아침 걷기, 글쓰기는 조금 많이 수업 준비와 집안일도 일정 부분 나를 북돋워 주는 것들이다. 아침 걷기와 글쓰기가 나를 어떻게 채워주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글들에서 많이 썼으니 생략하기로 하고, 수업 준비와 집안일의 경우도 두 가지 모두 꼭 필요한 일이어서(해도 크게 티는 안 나지만 안 하면 티가 확 나니까)이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나를 힐링해 주는 면이 있는 활동들이다.      


나의 수업 준비는 한 마디로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다. 그 외 가끔 그야말로 업무적인 일처리들이 중간중간 있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수학 문제 풀어보기이다. 다른 과목에 비해 수학은 그래도 어느 정도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을 그대로 끄집어내어 가르쳐주면 되어서 편한 과목이기는 하지만, 고등학생의 경우, 모의고사나 수능의 새로운 문제들, 학교별 기출문제, 문제집의 고난도 문제 등 그때그때 풀어볼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미리미리 다음 수업에 대한 준비를 해두어야 수업 시간에 원활하게 강의를 이어갈 수 있다. 다행인 것은 나는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 좋고 심지어 약간의 어려운 문제가 단계별로 착착 해결되어 갈 때 짜릿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집안일은 나에게 어떤 에너지를 주는가. 나는 집안일을 할 때 최소한의 인풋 대비 최대한의 아웃풋을 얻는 것을 나름의 철칙으로 삼고 있으며 그것이 스스로의 통제하에 달성되었을 때 만족감을 느끼는 편이다. 최소한의 인풋을 위해 주로 월요일 오전에 하는 일들과, 그 외 비정기적으로 틈틈이 하는 일들을 나누어 놓고 있으며, 최대한의 아웃풋을 위해 평소에 쓴 물건을 그때그때 제자리에 두려고 하는 편이다. 물건들만 제자리에 있어도 집안은 어느 정도 깔끔해 보이니까. 그리고 가끔이지만 반짝반짝 까지는 아니어도 깔끔해진 화장실 타일을 볼 때나 물때가 사라진 개수대를 볼 때 뿌듯하기도 하다.(비록 가스레인지 후드나 냉장고 청소 등은 아직도 명절 때마다 역귀성하시는 엄마가 해주고 있지만)        


사실 평일 오전 혼자만의 시간이 사라진 것은 아이의 방학 때문만은 아니고 나의 일과도 관련이 있다. 우리 아이처럼 다른 아이들도 모두 방학이라 오전으로 수업 시간을 옮긴 학생들이 있다 보니 방학 때 평일 오전에 나는 걷기, 글쓰기, 집안일보다는 수업을 우선적으로 해야만 한다.      


쓰다 보니 글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두서가 없어졌다. 10분 뒤에 오늘의 마지막 수업이 시작될 예정인데, 수업 전에 부랴부랴 글을 올릴지, 아니면 수업이 끝난 뒤 조금 더 다듬어서 올릴지 고민이다.      


일단 올리고 수정을 하는 게 나으려나. 고민하는 사이 또 2분이 흘러갔네. 방학이 힘든 이유로 시작했는데 일관성 있는 글쓰기가 여전히 힘든 이유로 마무리가 되는 느낌이다. 함께 올릴 사진도 준비가 안 되었으니 우선 오늘은 수정한다고 딱히 더 나아질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조금 있다 올려야겠다.      


방학이 힘든, 개학을 기다리는 모든 엄마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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