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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Feb 16. 2023

내 인생의 첫 거짓말은?

드라마 <안나>를 보고


요즘 어쩌다 보니 생각보다 덜 바빠 꽤 여러 편의 드라마를 섭렵했다. 더 글로리, 카지노와 같은 최신작부터 D.P, 안나, 봄밤 등 약간은 지나간 하지만 평이 좋았던 것 등등.      


책을 읽을 때 같은 작가의 책을 또 찾아 읽게 되는 경우처럼, 드라마를 보다가 드라마 속 배우가 좋아져 그 배우가 출연한 다른 작품을 또 찾아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D.P의 정해인과 안나의 김준한의 교집합으로 봄밤을 보게 된 것이 그런 사례이다. 아무튼 안나는 큰 기대 없이 시작했지만 기대가 없어서였을까 꽤 괜찮은 드라마로 나에게 기억될 것 같다.        


<안나>라는 드라마를 검색해 보면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게 된 여자의 이야기”라는 소개글이 나온다. 극 중에서 수지가 유미였던 시절, 시작한 첫 번째 거짓말은 부모님에게 대학에 합격했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회에 수지가 안나로서 비서에게 하는 고백 중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행정고시 5년 준비하다 포기하고 정치인 비서를 하는 자신에게 실망한) 부모님께 주눅 들지 마요. 독립은 부모의 실망에 죄책감을 갖지 않는 것부터가 시작이에요. 난 그게 제일 후회돼.”      


대학에 떨어졌다고 하면 부모님이 실망할까 봐 사소한(?) 거짓말을 했던 그 순간을 제일 후회한다는 의미로 나는 이해했는데, 저 대사를 들으면서 세 가지 생각을 했다.      


붙지도 않은 대학에 붙었다고 한 것이 사소한 거짓말일까?라는 것과 내가 부모님에게 했던 첫 번째 거짓말은 뭐였을까?라는 것, 그리고 내가 살면서 했던 첫 번째 거짓말은 누구에게 한 것이었을까?라는 것.      


내가 거짓말을 했던 첫 번째 대상이 부모님 일지 아닐지의 여부에 따라 두 번째와 세 번째 질문은 의외로 쉽게 답을 얻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답을 얻기 위해 엄마에게 톡을 보내볼까 하다가 크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기억을 쥐어짜보려 한다.      


왜 의미가 없을 것 같냐면, 엄마가 기억을 하고 있어서 나의 첫 번째 거짓말의 대상과 내용을 말해준다고 한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내 인생의 첫 거짓말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믿는 순간, 거짓도 진실이 된다.”  

   

역시 <안나>의 소개글에 나오는 말인데, 결국 어떤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는 결국 그 말을 한 자신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의 첫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거짓 행동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7살 무렵, 화장대에 있던 엄마의 동전지갑에서 몰래 500원짜리를 하나 꺼내어 손에 꼭 쥐고 친구들과 놀러 나갔던 일이다. 나는 엄마가 그걸 나중에라도 알아냈는지 아직까지도 모르고 있는지, 그때 당시 알고 있었지만 나에게 말을 안 한 건지 알지 못한다. 내가 그런 행동을 상습적으로 했더라면 언젠가는 들켜서 혼났을지도 모르겠지만, 다행히(?) 지갑에서 몰래 돈을 빼내는 행동은 그 후로 거의 하지 않았던 거 같다.      


아무튼 이것은 거짓말에 대한 기억이라기보다는 나쁜 행동, 조금 더 엄밀히 정의하자면 첫 도둑질에 대한 기억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위의 행동이 거짓말이 되려면 엄마가 나에게 “너 엄마 지갑에서 돈 꺼냈니?”라고 물어봤을 때, 내가 “아니~그런 적 없어.”라고 해야 하는데 그런 말을 주고받은 기억은 없다.

    

500원 정도를 도둑질이라고 하기엔 너무 한 거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쓰다 보니 이런 일화도 떠오른다.      


17살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근처에 엄청 큰 팬시점이 있었는데 지하철역 바로 앞이라 워낙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이다 보니, CCTV가 거의 없었던 당시에 가게에서는 잦은 도난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가게 중간중간에 의자를 두고 그 위에 사람을 세워서 감시하는 시스템을 마련했었다. 당시 친구들과 나는 그 눈을 피해 머리끈 몇 개를 잽싸게 주머니에 넣는 데 성공했었다. 물론 우리는 나름 주도면밀하게 머리끈만 가지고 나오지는 않았고, 다른 것들은 돈을 주고 구매했었다. 그래도 어쨌든 머리끈은 도둑질을 한 것인데, 당시 재미가 들려 두세 번 정도 더 사소한 것들을 도둑질했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내 인생의 첫 거짓말은 누구에게 뭐라고 한 것일까?     

어렵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아마도 첫 거짓말의 대상은 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나 자신에게 뭐라고 거짓말을 둘러댔는지는 오늘은 아니더라도 다음에 언젠가 문득 떠오르기를 바라본다.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하지만 진실은 간단하고 거짓은 복잡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떠한 상황도 견딜 수 있습니다 - 안나 마지막 회 중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라도 나중에 누가 볼 수도 있으니까? 아니면 스스로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아니면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서?      


자기기만, 자기 최면, 자기 암시, 자기 합리화...     

이 모든 말들이 결국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다른 사람들도 나만큼이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많이 하나보다. 지난 글에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나를 위해서”라고 썼었다. https://brunch.co.kr/@2gafour/98


내가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이유도 결국은 “나를 위해서”일 것 같다.       


사람이 말이야 너무 자기 자신에게 집중을 하면 우울해진단 말이야 - 안나 마지막 회 중   

 

문득문득 삶이 좀 무료하고 지루하고 나아가 의미가 없다고 여겨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 이유가 너무 나에게 집중을 해서 그랬던 것일까? 너무 나, 나, 나 거리는 걸까? 지금, 여기, 나 자신만 보는 삶에서 이제는 좀 벗어나야 할 때가 온 걸까? 그런데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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