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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Mar 03. 2023

아직 봄은 덜 왔나 봄

올해 첫 나 홀로 등산


    

다음 주부터 출근하기로 한 곳에서 오늘도 나와줄 수 있냐고 물어왔지만 앞으로 당분간 없을 평일의 시간을 위해 나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을 하기로 했다. 덕분에 오늘 일이 하나도 없는 평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낮기온이 10도 이상으로 올라간다는 소식에 작년 가을 이후 오랜만에 등산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올해 첫 등산은 우선 동네의 검단산. 동네에 있는 산이지만, 그리고 내가 산을 많이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가볍게(?) 오르내리기 적당한 산이라고 생각한다.      


지난가을, 인생 첫 나 홀로 등산에 성공한 이후, 2023년에는 시간이 나면 틈틈이 검단산뿐 아니라 다른 산들도 많이 올라봐야겠다 다짐했었다. 지난번에는 버스를 타고 검단산 입구로 가서 등산을 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오다 보니 하산 후 버스를 탈 때 솔직히 좀 지치기도 하고 ‘인생 참 고독하구나~’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었다. 그래서 오늘은 등산로 입구까지 차를 가져가기로 했다. 예전에는 등산을 하러 오면서 차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을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은 못마땅하게 생각했었는데 오늘 내가 그 못마땅한 짓을 하고야 말았다.      


평일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주차공간은 텅텅 비어 있었다. 차를 대고 현충탑을 지나 8:50에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딸과 올랐을 때 내려왔던 길로 오늘은 올라가 보게 되었다. 초반부터 경사도 꽤나 있고 바위길이어서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기온은 올라간다고 했지만 아직 아침에는 영하의 기온이었고 더구나 산속은 더 추워서인지 손이 시릴 정도였다. 하지만 어느덧 마스크 안쪽으로 땀이 맺히기 시작하고 상체와 맞닿은 옷에도 땀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보다 조금 앞에 있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제쳐가면서 중간중간 앉아서 쉬는 사람들도 지나쳐가면서 나보다 더 먼저 올라갔다 이미 내려오는 사람들과 마주치면서 조금씩 조금씩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거의 다 올라갔을 때 정상으로 가는 두 갈래 길이 등장했다. 조금 짧지만 경사가 심한 길과 조금 길지만 경사가 완만한 길. 나의 선택은? 후자였다. 이미 정상 직전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올라온 상태라 정상까지는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겠다는 선택에서였다.      


마지막에 늑장을 부렸어도 정상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9:45. 지난번과는 다른 루트라서 정확하게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지난번보다 시간이 단축되었다는 사실에 내심 뿌듯했다.       



정상에 잠깐 앉아있자니 땀이 식으면서 한기가 몰려왔다. 혹시라도 어깨에 무리가 갈까 봐 달랑 한 개만 챙겨 온 귤을 하나 까먹고 목과 어깨를 조금 풀어준 후 춥기도 하고 더 있어봐야 할 것도 없어서 내려가는 것을 택했다. 잠깐이지만 일행이 있다면 이런 시간들이 조금은 더 길어지고 그 일행이 마음도 맞는 상대라면 덜 고독해지겠구나 싶었다.      



아무튼 내려오는 길은 거의 뭐 날아다닌 정도(?). 10:00에 출발해 현충탑 앞에 이르니 10:45. 그리고 검단산을 올라갔다 내려오니 벌써 10,000보를 훌쩍 넘게 걸었다는 기록이 나를 반겨주었다. 오늘의 활동량 이미 초과 달성!! 내 의지로 내 두 발로 해냈구나~     


봄에 꽃이 핀 산의 모습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직 앙상한 나뭇가지들만 있는 산의 모습은 막 아름답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봄은 아직 덜 왔나 보다. 내일부터는 낮기온이 15도 정도로 오른다고 하니 이제 곧 지역별 꽃피는 시기, 벚꽃축제 기간 이런 것들이 인터넷에 마구 올라오겠구나.       

      

매년 돌아오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    


  

Natura non facit saltum.


내 오른쪽 팔목에 새긴 타투의 문구이다. 라틴어로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라는 뜻. 나에게는 저 문장이 ‘사람은 시시 때때 변하지만, 자연은 변하지 않는다.’로도 읽힌다. 시점에 따라 관점에 따라 위 문장에 반박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가장 흔한 반례(?)는 ‘사람은 절대 안 변해’와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초록이 무성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울긋불긋하고, 겨울에는 앙상해지는 자연이 안 변한다고?’ 일 것이다.      


글쎄 그건 그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보기에 사람은 수시로 바뀌고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자기 멋대로 왜곡하고 비약하지만, 자연은 하루도 빼먹지 않고 정해진 일을 거의 오차 없이 수행해 나가는 것 같다. 물론 그러다 가끔씩 인간이 감히 어찌하지 못할 엄청난 충격을 주기도 하지만. 그래서 언제나 인간은 자연 앞에 작아지고 겸손해지는 수밖에.     

 

이번 봄에는 마음이 맞는 그리고 체력이 비슷한 일행과 함께 하는 등산도 해보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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