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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Apr 05. 2023

오늘의 행운은 이걸로 끝?

질량 보존의 법칙



업무의 포지션에 변화가 생긴 지 오늘이 딱 한 달째. 한 달 동안 나름 바빴고 여유가 없긴 했나 보다. 보통 한 달에 3~4권의 책은 읽는 편인데, 3월 한 달 동안 다 읽은 책이 한 권뿐이었다. 덩달아 브런치에 올린 글도 3월 9일이 마지막이었다. 마지막 글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은 무엇일까?> 였는데 오늘 글도 행운이 키워드가 될 것 같다.     



오랜만에 비가 세차게 내렸다. 최근에 계속 미세먼지도 안 좋고 건조한 공기 때문에 산불 소식도 많았는데 식목일을 맞아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로 탁하고 건조했던 공기가 맑고 촉촉해질 것 같아 내 기분도 좋았다. 원래 비를 그리 싫어하는 편이 아니기도 하지만, 오늘은 비의 매력을 나름 듬뿍 느끼는 출근길이었다.

     

집에서 근무지까지 편도 35km 정도. 처음에 주차공간이 여유롭지 않다는 말에 대중교통으로 다녀볼까 이리저리 검색을 해보았지만 버스든 지하철이든 3번을 갈아타야 하는 루트에 주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차를 가지고 다니기로 결정을 했다.      


운전을 힘들어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라 출퇴근길에 오롯이 나에게만 주어지는 편도 40~50분의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한 달을 다녀본 결과, 주정차위반 딱지 한번 떼이고, 근무 중에 두어 차례 차를 빼러 나갔던 경우를 제외하면 주차로 인한 스트레스가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라디오나 음악을 들으며 또는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가끔은 업무 관련 통화를 하며 오가는 시간은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 되었다.      



오늘의 출근길은 뭐랄까 내 마음을 정화하는 최고의 시간이었다. 비가 대차게 내리는 올림픽대로를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들으며 달리는 기분이란 직접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것. 보통 비 오는 날 창이 커다란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며 커피 한잔 하며 멍 때리고 싶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와 비슷한 기분이었달까. 차바퀴가 빗물을 만나 내는 소리에 내 마음속 답답함도 함께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시원하게 (물론 차는 중간중간 막히기는 했지만) 달리며 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아 오늘 주차까지 완벽하면 정말 기분 좋은 시작이 되겠다’ 생각했었다. 비가 오니까 최대한 가까운 곳에 그리고 내 차가 비를 맞는 것은 또 싫으니까 이왕이면 지하에 대고 싶었는데 주변에 그런 선택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운이 좋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비가 오니 사람들이 외출을 많이 안 해 한산하거나 아니며 오히려 비가 와서 평소에 차를 안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까지 차를 가지고 나와서 더 복잡하거나 둘 중 하나이겠지만.     

 

그렇게 도착해서 어딘지 떨리는 마음으로 평소라면 주차장 입구까지 차가 세워져 있어 들어가 볼 엄두도 못 낼 곳을 슬쩍 보니 입구에 차가 없길래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 보았는데, 빈자리가 그것도 이어진 빈자리가 3군데나 있는 것이었다. 이게 웬 떡!!! 잽싸게 차를 대고 트렁크에서 우산을 꺼내 펼쳐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 완료.      


이제 한 가지만 더 내 뜻대로 된다면 오늘은 멋진 하루~!     


점심을 먹고 나오면 차가 더 막힐 것 같아 아침에 식빵 한 조각 먹은 채로 나왔더니 배가 고파 오는 길에 출근 후 2시간 정도의 여유 시간 동안 김밥을 먹으며 브런치에 글을 써야겠다~생각했었다. 보통 3시 반부터 학생들이 오기 시작하기 때문에 다른 동료들도 2시 반 이후에 출근을 한다. 나는 거리가 멀다 보니 자발적으로 조금 더 일찍 오는 편인데,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수업 준비를 하는 그 시간이 또 나쁘지 않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보다 학생들이 조금 적은 날이니 오랜만에 글을 한편 써야겠다 했던 것이다.  


    

그런데 2층으로 올라오는 길에 보니 이미 불이 켜져 있는 것이다. 아, 오늘따라 누가 일찍 왔구나. 아, 혼자만의 시간은 날아갔구나. 오늘 나의 행운은 주차하는 데 다 쓴 거구나 싶었다.      


과학 시간에 배웠던 질량 보존의 법칙. 질량 대신 초성이 같은 다른 단어(지랄) 또는 아무 상관이 없는 다른 두 글자 단어들로 대체해서 친구들과 대화할 때 많이 써먹었던 거 같다. 오늘은 그 두 글자 단어에 행운을 넣어보려 한다.      


하루에 또는 일생동안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행운의 양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의 행운을 비를 안 맞을 수 있고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한 것으로 다 써버린 것으로.      


일찍 왔던 사람은 센터장님이었다. 김밥을 먹으며 업무 관련 수다를 잠깐 나누고, 서로 눈치껏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그러니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거지.      


그러고 보니 센터장님은 센터장님대로 내가 일찍 와서 아쉬워했던 거 같다. 점심을 안 먹어서 김밥을 사 오겠다고 했더니 “먹고 오지 왜~” 하셨던걸 보면.      


아무튼 이제 행운 타령은 그만하고 슬슬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다. 다음번 글이 또 한 달 뒤가 될지 그만큼 나는 또 정신없을 한 달을 보내게 될지, 그 사이에 나에게는 또 어떤 행운과 불운이 따르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그래서 뻔하지만 재밌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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