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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n 13. 2024

160920-03

결혼 10주년



신혼여행 마지막 날 남편과 싸운 계획에 없는 일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일정표대로 그곳에 있었다. 칵테일 바에 갔는데 아내가 없으면 어쩌나 라는 걱정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아내를 발견하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하나우마 베이랑 동물원 혼자 갔었어?”

“그럼 나 혼자라도 가야지.”

“그래 잘했어.”

“자기는 뭐 했어?”

“나?”

“차는 반납했어?”

“당연히 했지.”

“추가비용 얼마 냈어?”

“아~얼마 안 나왔어. 나 배고프다. 머 좀 시키자.”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그날 하루 예기치 않게 낯선 땅 하와이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느꼈는지 칵테일을 여러 잔 마시고 방으로 돌아가 오랜만에 달달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여행의 가장 마지막 밤, 달달함을 머금은 채 잠이 들었지만 다음 날 아침부터 아내의 일정은 또 시작되었다. 도대체 돌아가는 날 더 이상 무슨 계획이 필요하단 말인가.



호텔에서 쉬다가 체크아웃하고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 타면 끝 아닌가?



아니었다. 체크아웃 시간보다 일찍 내려와 캐리어를 로비에 맡기고 시내에 있는 쇼핑센터로 가서 또 선물을 샀다. 그동안 샀던 선물은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 용이었고, 오늘은 회사 동료나 친척들 용을 더 사야 한다는 것이다. 역시나 우리는 돌아오는 날 호놀룰루 공항에서도 9번 게이트를 찾아 뛰어야만 했다. 비행기를 타고 애초에 잠은 포기한 나는 오는 길에 못 봤던 영화 3편을 계속 보며 속으로 한 가지 생각만 했었다.



아내와의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



하지만 결혼하고 10년을 살면서 여행을 안 갈 수는 없었다. 회사 일을 핑계 대며 갖은 용을 써봤지만 신혼여행 이후 우리는 총 5번의 여행을 갔었다. 아내는 아쉬워했지만 나에게는 천만다행으로 그 5번의 여행은 모두 다른 일행들과 함께였다.



첫 번째는 결혼 다음 해에 엄마 환갑을 기념하며 누나네 식구, 우리 부모님과 함께 2박 3일로 일본을 다녀왔었다. 두 번째는 아내가 출산하기 전 처가 식구들과 3박 4일로 홍콩과 마카오를 다녀왔었다. 세 번째는 아이의 두 돌을 맞이하여 우리끼리 1박 2일로 가평을 다녀왔었다. 네 번째는 아내의 고등학교 단짝친구 3명 및 그의 가족들과 함께 2박 3일로 강화도를 다녀왔었다. 마지막은 가장 최근, 바로 작년, 나의 친구들 2명 및 그의 가족들과 함께 3박 4일로 제주도를 다녀왔었다.



부모님 또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었던 만큼 신혼여행과 같은 혹독한 일정은 아니었지만 아내의 일정표는 매번 빽빽했다. 하지만 함께했던 일행들은 모두 그처럼 치밀하게 계획하는 아내의 준비성을 칭찬하고 군소리 없이 그 일정들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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