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을 세우되 계획한 대로 모든 것이 일어날 것처럼 계획하지는 말라.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고 뜻밖의 놀라움을 검소하게 즐기며 살라” - 앨리스 워커
방학을 맞아 내일 영어 학원을 재끼고 친구들과 워터파크에 놀러 가기로 한 딸은 며칠 전부터 사부작사부작 준비물들을 챙기며 계획을 하는 중이다. 우선 입장권을 예매하고 가는 차편을 예매하고 수영복을 챙기고 어제는 선글라스를 사달라고 하더니 내 선글라스 더미에서 잊어버린 줄 알았던 자기 걸 발견해 뿌듯해했다.
오늘 하루 종일 또 생각나는 대로 하나씩 하나씩 계획하고 챙기고 준비하겠지. 그렇게 해도 또 막상 내일 아침에는 허둥대고 집을 나서는 순간 빠뜨린 무엇인가가 생각날 수도 있지만, 한두 개 빠뜨리고 가도 또 어찌어찌 굴러가고 그날 하루 종일 뜻밖의 놀라움들을 경험하며 신나게 놀고 지쳐서 돌아올 것이다.
MBTI 끝자리가 P인 나는 이제는 해외여행 가는 짐도 거의 하루 전날 후다닥 싸버리는 경지에 이르렀고, 비행기와 숙소만 예약하고 거의 대부분을 현지에서 그때그때 검색해서 해결하는 편이다.
미리 준비하고 철저하게 계획해서 꼼꼼하게 실행하는 타입이 아니다 보니 전체적인 삶도 그렇게 흘러가는 중인데, 개인적으로 살면서 처음 경험하는 어쩌면 너무 중대한 상황을 앞두고도 나는 여전히 그렇다. 나는 왜 이럴까 왜 이것밖에 안될까 싶다가도 또 어쩌겠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오늘 하루만 버티자, 오늘도 잘 버텼다.”
나의 엄마가 지난 6개월 동안, 매일매일 되뇌었던 말이다.
그리고 불현듯 깨닫게 되었다. 충분히 예상되고 시기적절한 죽음에서도 모호함의 무게가 느껴진다는 사실을. 그리고 처음으로, 모호한 상실의 긍정적인 면을 개인적으로 체험했는데, 내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는 것이다. 모든 죽음이 그런 순간을 주는 것은 아니다. - 『모호한 슬픔』, 9장 끝나지 않는 상실의 지평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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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6개월 아니, 실은 2014년 12월부터 엄마와 나에게는 시간이 주어졌던 것인가 보다. 하지만 상실은 아무리 오랜 기간 준비할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덤덤하게 수용하기에는 어려운 것인가 보다. 앞으로 또 그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문득문득 실버 라이닝(구름 가장자리에 보이는 햇빛. 힘든 상황 속 희망을 의미함)이 비추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