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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Aug 12. 2019

글 쓰는 삶 vs 밥 짓는 삶

[쓰기의 말들]을 읽고


# 105

글 쓰는 것은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도

아니 될 수도 있는데, 밥 짓는 것은 ‘반드시’ 도움이 된다. - 은유

최근까지 나는 ‘동남아-동네에 남아 있는 아줌마’였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를 키우는 동네의 전업주부들 몇몇과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평일 오후 5시. 아이들의 일과가 끝나고 남편들은 야근 예정이면, 우리들은 번갈아가며 각자의 집에서 저녁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것이 아이들에게도 우리들에게도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로 했을 때 가장 큰 고민은 ‘아이들 저녁은 무엇을 먹이나?’였다. 가끔은 외식을 했지만 대부분은 주먹밥일지언정 집밥을 먹여야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저녁밥에 과일까지 먹이고 나야 엄마들은 ‘오늘 할 일은 끝났다’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맥주 한잔을 들이켤 수 있었다.



주먹밥, 오므라이스, 유부초밥, 돌아가며 한 그릇 음식들을 먹이다가 어느 날 어떤 엄마가 마음먹고 밥과 국에 반찬 3가지를 식판에 담아 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고마운 마음을 간직했다가 다음번에 우리 집에서 모이게 되면 나도 나름 영양 잡힌 집밥 메뉴를 준비해 대접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결혼했다. 아내, 엄마의 역할은 참으로 다양하지만, 나는 다른 역할에 비해 밥 짓는 역할에는 소홀한 편이다. 가족이 비교적 오랜 시간 집에 함께 있는 주말에도 나는 하루에 한 끼만 집에서 해 먹는 불량 주부다. 이는 외식에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큰 거부감이 없는 남편과 아이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가까이 사는 오랜 친구만 해도, 주말에 외출을 했다가도 저녁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남편 때문에 결혼 생활 내내 거의 삼시 세 끼를 집에서 해 먹었고 덕분에 이제는 못하는 요리가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나는 집밥의 달인과 오랜 세월 함께 살았다. 그녀가 해 주는 밥을 나는 몇 끼나 먹었을까? 입맛이 까다롭고 칭찬에 인색했던 나의 친할아버지는 자신의 막내 며느리가 대접하는 집밥을 먹을 때면 고개를 끄덕이며 밥그릇을 싹싹 비우시곤 했다. 함께 살 때는 몰랐는데, 내가 아내, 엄마가 되고 보니 알겠다. 가족을 위해 매일 매끼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드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오랜 세월 집 안에서 가족을 위해 다양한 음식을 해오던 나의 엄마는 지금은 집 밖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여전히 음식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아직은 취미 수준이지만 글을 쓰고 있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그동안 이웃의 수도 많이 늘었고, 조회수도 꾸준히 증가하는 중이다. 내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고 과연 도움이나 위로를 받은 타인이 있을까?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나의 감정과 생각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어서’라고 다른 글에 쓴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쓰는 글들에 나의 감정과 생각을 정성스레 다 담고 있는가?



요즘 같은 무더위에 그야말로 팥죽 같은 땀으로 온몸을 흠뻑 적셔가며 150인분의 밥을 짓고, 뜨거운 국을 끓이고, 계란찜을 하는 엄마를 보는 것은 나에게는 고역이다. 서로 사는 곳이 멀어 그 모습은 1년에 2~3번 밖에 못 본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작은 것에 감사하고, 일상에서 행복을 찾으려 노력하며, 자신의 역할을 빠짐없이 해내고, 최근에는 내가 올리는 글들에 일일이 댓글을 달아주는 엄마. 그런 엄마를 생각하면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지고 미안해지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슬퍼진다.   


자신이 정성과 최선을 다해 지은 밥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 엄마처럼, 나도 진실한 글로 타인에게 도움과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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