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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Nov 02. 2019

경험하지 않은 것까지 아는 사람이 되자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읽고

며칠 전, 한 달에 한 번 있는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이번 달의 책을 내가 추천했기에 나름 진행자의 역할을 맡았었다. 그래서일까. 평소보다 말을 조금 더 많이 하게 되었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굳이 안 해도 될 말이 툭 튀어나오게 마련인가 보다. 타인의 마음에 대한 주제와 관련 문득, 나의 치부를 드러내고 말았다. 오래 보아온 사람들도 아니고, 앞으로 얼마나 볼지도 모르는 사람들인데. 아 어쩌면 그래서 오히려 더 편했던 것일까. 가족이나 친구, 가까운 지인보다 때로는 처음 보는 사람,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더 편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      



토머스 네이글의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책이었다. 소형 판본에 164페이지짜리 였지만,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총 2 회독을 했는데, 발췌독 후 정독이라는 일반적인 프로세스가 아니라 정독 후 발췌독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책의 부제는 <아주 짧은 철학 입문 강의>. 역시 아주 짧지만 철학이기에 개념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부터 두고두고 곱씹어볼 부분까지 자그마한 겉보기와는 달리 깊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책의 내용에 대한 요약본은 블로그를 참고하기 바란다.(https://blog.naver.com/2gafour/221681378830)     


서문을 제외하면 총 9개의 주제에 대해 저자는 말하고 있는데, 오늘은 그중 2번째 주제인 ‘타인의 마음’에 대해 글을 써보려 한다. 이 부분에서 나에게 가장 강렬하게 와 닿았던 표현은 “당신이 실제로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경험은 당신 자신의 경험뿐이다.”이다. 아직은 끄적이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단어의 의미를 더 곱씹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위의 문장에서도 “실제로/가질 수 있는/유일한/~뿐이다” 이러한 단어들을 써서 저자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생각 또는 주장에 내가 동의할 수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내 생각은 무엇인지, 나의 생각을 적합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지 등등.      


일단 위 문장을 조금 더 이해해보기 위해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려 한다.      


1) 실제로     


국어사전에 의하면 실제는 ‘사실의 경우나 형편’이라는 뜻이며, 반의어로 가공, 허구, 허위 등이 있다. 또한 실제(實際)와 실재(實在)를 많이들 혼동하는데 전자는 본인이 보거나 듣거나 하는 경험을 통해 무엇인가를 직접 하거나 느끼는 것을, 후자는 사실로서 현실에서 존재함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그 ‘존재’에 초점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위 문장에서 ‘실제로’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가상현실이나 간접경험을 배제하고 오로지 직접 하는 경험만을 지칭하기 위해서인가?       


2) 가질 수 있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을 말할 때, ‘경험을 하다’라고 하지 ‘경험을 가지다’라고 하지는 않는데, 가질 수 있는 경험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이런 의문 때문에 이 책을 한번 읽고 원서로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영어 'have'라는 단어가 이 부분에 들어있는지 아니면 번역의 과정에서 들어간 말인지 확인이 되어야 이 부분이 더 정확하게 이해될 것 같다.      


3) 유일한/~뿐이다    


나는 철학 전공자는 아니고 수학 전공자이기 때문에 ‘~뿐이다’로 끝나는 문장을 보면, 항상 의심하고 예외가 진짜 없을지 늘 고민해본다. 수학에서는 백개, 천 개, 만개 중에 단 1개라도 예외가 있으면 ‘오직~뿐이다.’라고 절대 말할 수 없고 그래서 그 단 하나의 예외가 항상 학생들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요소가 된다. 하지만 저자가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철학은 형식화된 증명 방법이 있는 수학과는 다르기 때문에 ‘유일한 ~은 ~뿐이다.’라는 문장을 쓸 수 있는 것인가?     




어설픈 분석은 여기서 끝내고 글을 더 이어가 보려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1844-1900


내가 “당신이 실제로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경험은 당신 자신의 경험뿐이다.”를 읽는 순간 떠올랐던 또 다른 문장이 있다. “경험한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니다. 경험한 것이든 경험하지 않은 것이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앎이다. 사람은 크게 3부류로 나뉜다. 자신이 경험하고도 알지 못하는 사람, 자신이 경험한 것만큼만 아는 사람, 경험하지 않은 것까지 아는 사람.” 작년 이맘때 한창 심취해있었던 니체, 그 니체를 나에게 가르쳐준 채운 선생님의 말이 섞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듣는 순간 그야말로 머릿속으로 맑은 공기가 주입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토머스 네이글의 문장과 니체+채운의 문장을 상반되는 뜻으로 이해했고, 니체+채운의 문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기에 토머스 네이글의 문장에는 물음표를 찍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주변에서 3부류의 인간들 중, 첫 번째 부류의 인간을 종종 접하게 된다. 물론 나는 두 번째 부류를 넘어 세 번째 부류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조차 나의 착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자신만의 경험이라도 진짜 가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던 건대, 쓰면서 정리가 된다. 왜 토머스 네이글이 경험 앞에 ‘가질 수 있는’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당신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경험은 당신 자신의 경험뿐이다.”와 “당신이 실제로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경험은 당신 자신의 경험뿐이다.”는 엄연히 다른 문장이다. 왜냐하면 가지고 있는 것이 곧 내 것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역시 언제나 그렇듯, 나의 글쓰기는 어디로 튈지 나조차도 모르겠다. 첫 문단을 쓸 때는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글이 전개되고 말았다. 이즘 되면 첫 문단을 수정하든지 아니면 첫 문단과 뒤의 내용을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줄 만한 연결고리를 찾아내든지 둘 중 하나다. 찾았다 연결고리!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툭 해버리는 나니까 글을 쓸 때도 굳이 처음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글을 툭 써버리게 되나 보다. 첫 문단에서 말한 문득 드러낸 나의 치부는 다음에 다른 글에서 아마 또 툭 튀어나오게 될 것이다.      



아무튼 이 글의 마지막 문단에서 나는 이런 말을 꼭 하고 싶다. 제발 경험하지 않은 것까지 아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자. 3년 전, 내 앞에 그런 기회가 펼쳐졌을 때만 해도 나는 겁이 났었다. 그래서 그 기회를 내 발로 걷어차고 지난 3년 동안 새로운 기회를 만들기보다는 나에게 익숙한 것만 곁에 두고, 나에게 편한 곳에만 가고, 나에게 호의적인 사람들과만 어울리며 조용히 지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을 테니까. 그렇게 조용히만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내가 아닐 테니까.     




“뭔가 부족하다면 어떤 식으로든 움직여야 한다. 앞으로든, 옆으로든, 하다못해 뒤돌아 가더라도. 영원히 멈춰 있으면서 지금 이대로 유지할 수는 없다.” -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김동영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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