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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Dec 31. 2020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이 나에게 준 것 5



2020년 12월 31일 오전 9시 53분 현재.      


나는 20분짜리 온라인 수업을 마치고 다음 온라인 수업 전까지 시간이 남아 이 글을 쓰고 있다.

남편은 Zoom으로 화상 회의를 하고 있다.

딸도 Zoom으로 학교 온라인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1년 전 오늘 밤 우리는 강원도의 한 스키장에서 여러 사람들과 모여 공연을 보고 맥주를 마시며 카운트다운을 외쳤었고, 나와 딸은 Zoom이 뭔지 1도 몰랐었는데, 그 사이 참 많은 변화가 있었구나 싶다.    

  

2020년 12월 31일 밤 12시의 풍경


오늘 있을 4개의 수업 중 3개는 온라인이 돼버린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처음으로 온라인 수업을 했던 날이 떠오른다.     


일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이사를 하게 되어, 기존에 수업하던 학생들 중 대부분은 다른 교사에게 인계를 했지만, 당시 중학교 1학년, 3학년이었던 여학생 3명은 다른 교사 말고 나에게 온라인으로라도 수업을 받고 싶어 했다. 고마운 한편, 온라인 수업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앞섰다.      


급히 팀장님께 태블릿과 전용펜을 빌려 필기 연습을 하고, 수업에 사용할 교재나 문제 등을 파일로 정리하고, 회사에서 제공하는 화상강의 프로그램을 설치한 후 다양한 기능을 익혀보았지만 막상 수학을 가르친 경험 자체가 많지 않던 내가 그것을 온라인으로 하려니 진땀이 삐질삐질 났었다.     

    


온라인 수업은 나의 수업환경뿐 아니라 학생의 수업환경에도 큰 영향을 받았다. 위의 세 학생들 중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은 결국 환경의 제약을 극복하지 못하고 2번의 테스트 수업 후 다른 교사에게 방문수업으로 토스할 수밖에 없었다.      


첫 수업 때는 학생의 카메라와 스피커가 말썽이어서 카메라를 끄고 보이스톡으로 수업을 했었고, 나의 이사로 인해 학생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던 마음에 인터넷으로 캠을 주문해 학생 집으로 배송이 된 후 2번째 수업을 시도했으나 저렴한 것을 고른 게 잘못이었는지 아니면 학생이 초점을 맞추는 기능을 못 찾았는지 아무튼 역시나 학생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컴퓨터가 거실에 있는 상황에서 동생이 옆에서 시끄럽게 하는 등 다른 가족들의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아 수업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없었다. 학교 수업마저 온라인으로 다 바뀌어버린 지금 그 학생의 수업 환경은 좀 개선이 되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나머지 두 학생들도 기말고사까지만 나와 수업을 하고 학원으로 전향을 하긴 했다.      


그렇게 코로나 이전에 그래도 나는 온라인 수업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코로나를 맞이하게 되었고, 올 초 코로나가 처음 확산될 때 예비 중학교 2학년 남학생과 한시적으로 온라인 수업을 또 하게 되었다.   

   


그 학생은 내가 지난 글에서 썼던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알려고 하는 이해력이 빠른 학생’이었고, 가정환경도 좋은 편이었지만, 이번에는 또 다른 이유로 그 수업 역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각자의 와이파이 속도가 달라서인지 소리 전달이 바로 옆에서 수업할 때처럼 100% 실시간이 아니고 아주 약간의 시간 차이가 있었는데, 그 학생도 나도 좋게 말하면 두뇌회전이 빠른 거고 나쁘게 말하면 참을성이 부족한 탓으로 그 약간의 시간 차이에 상대방의 말을 기다려주기보다는 자꾸 자기 말을 먼저 하려고 해 소리가 겹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하게 되었다. 직접 만나면 금방 해결될 아니면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였지만 온라인이어서(그 또한 핑계였다는 것을 이제는 알지만) 오히려 갈등이 쌓여만 갔다. 그 학생도 힘들었는지 한 달 동안 온라인 수업 후 코로나를 핑계로 잠시 수업을 쉬다가 5월부터 다시 시작하여 현재까지 방문 수업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 들어 코로나도 더 기세를 떨치고 날씨도 많이 추워져서 기말고사가 끝나고 조금은 여유가 있는 틈을 타 기존에 방문 수업을 하던 친구들 중 2명을 한시적으로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계속된 온라인 회의로 나도 이제는 더 이상 기계를 통해 흘러나오는 내 목소리가 어색하지만은 않고, 화면에 조그맣게 보이는 내 모습에도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고, 스마트펜으로 삼각함수 그래프도 잘 그리게 되었고, 수업 자료와 진행에 대한 노하우가 쌓여 수업 준비에 들이는 시간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 신규 수업은 온라인으로만 받기로 한 상태이다.      


회사 제공 화상 강의 프로그램


처음 언택트, 온택트 이야기가 나올 때만 해도 ‘잠깐 저러다 말겠지. 그래도 사람은 직접 만나야 제 맛이지.’ 했는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아닌 것 같다. 싫어도 불편해도 아쉬워도 그리워도 어쩔 수 없는 거겠지. 대세에 맞추는 수밖에.      


어제 자기 전, 딸이 1년 전 오늘을 떠올리며 “2020년 정말 실망이야.”라고 했는데, 오늘 밤 12시에는 예전 같은 왁자지껄함이나 기대하는 마음은 느껴질 것 같지 않아 나 역시 실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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