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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Apr 06. 2021

아침 걷기와 저녁 걷기

걷기는 나에게 글쓰기를 위한 준비단계였다


오랜만에 걸었다. 그것도 하루에 두 번이나.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총 8.4km, 12,035걸음.


아침에 돌아오는 길에 엘리베이터를 안 타고 21층까지 걸어 올라와서인지 저녁에 걸을 때는 왼쪽 고관절이 살짝 아파 무리하지 않고 밤공기를 즐기며 산책하는 수준으로 걸었다. 가끔 아침에 조깅을 하는 남편은 “뛰어야지(뛰어야 살이 빠지지).”라며 조언(?)을 했지만, 무리하면서까지(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살을 빼야 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스스로 합리화를 시켜본다.      


아침 걷기와 저녁 걷기는 많은 것들이 달랐다.      


아침은 너무 환해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썼어도 세수도 안 한 내 얼굴을 누가 자세히 보기라도 할까 맞은편에서 사람이 다가오면 살짝 위축이 되었지만, 저녁은 어두웠고 나도 하루의 일과는 마쳤지만 화장은 안 지운 상태여서 주변 사람들이 덜 의식되었다.     


아침에는 등교하는 학생들 및 그들과 같이 나온 엄마들이 많아 길을 요리조리 비키며 다녀야 했는데, 저녁에는 아이들은 거의 없고 어른들만 간간이 있어 내 앞길이 뻥 뚫린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아침과 저녁은 소리가 달랐다.      


내가 가는 코스는 집에서 직선거리로 2km 정도에 있는 동산에 올라갔다가 다른 길로 돌아오는 코스인데, 재작년 가을 처음 그 길을 걸어 동산을 오를 때는 아무리 야트막한 산이어도 산 입구에 들어서면 느낌이 확 달랐다. 콘크리트가 아닌 흙을 밟는 그 느낌, 이슬 젖은 흙과 돌과 풀 냄새,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나뭇잎, 무엇보다 짹짹 지저귀는 새소리, 다람쥐들이 왔다 갔다 하며 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런데 오늘은 산 입구에서 그 느낌이 안 들었다. 왜 그런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산 바로 옆쪽에 엄청 큰 건물을 짓느라 뚝딱뚝딱, 지이이잉...인위적인 기계음이 산을 감싸고 있었다. 소리(뿐 아니라 다른 것에도)에 그렇게 민감한 사람이 아닌 나에게도 매우 거슬리는 소음이었다.      


나도 나이가 든 것인가, 아니면 최근에 읽었던 책들의 영향으로 나(인간) 아닌 다른 생명체(환경)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인가, 아니면 우리 집에 있는 고양이 녀석의 영향인가, 아무튼 그 소음은 나로 하여금 산에 사는 생명체들에게는 저 소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른 아침부터 저 위협적인 각종 기계음을 들으며 잠에서 깨어야 하는 산속의 동식물들이 걱정되고 내 일인 것처럼 마음이 쓰였다. 그러다 저 소리를 견디지 못해 조금 더 조용한 산을 찾아 떠나는 경우, 또는 새로운 터전을 찾지 못하고 스트레스로 일찍 죽는 경우도 있겠다 싶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면 층간소음을 겪어보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앞서도 말했다시피 나는 평소 소음에 민감한 편이 아니어서 그동안에는 주변 사람들이 층간소음으로 스트레스받는다는 이야기를 하면 속으로 ‘너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윗집은 좀 다르다. 초4(남), 초3(남), 6세(여) 아이가 3명이어서 나도 웬만하면 이해하고 넘어가려 하지만 때로는 좀 심하다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나보다 먼저 남편이 관리실에 전화를 하곤 하지만 그때뿐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만약 우리 윗집의 아랫집에 정말 소리에 민감한 사람들이 산다면 뉴스에 나올법한 일도 일어날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하다.      


조금 다른 경우지만, 최근에 재미있게 보고 있는 드라마 중 tvN ⌜마우스⌟에 뇌수술을 받고 난 후, 청각이나 후각에 예민해져 이전에 자신이 키우던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참지 못하고 새를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또 다른 드라마 JTBC ⌜괴물⌟에 자신이 20년 넘게 키우던 딸을 죽인 아버지(친딸이 아닌 것으로 밝혀짐)가 심문 도중 “너무 시끄러워서” 죽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극단적인 허구의 사례이기는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현실에서 더 끔찍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요즘이다.      


오랜만의 걷기로 시작한 글이 드라마 얘기로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뭐 걸으면서 떠올랐던 이런저런 생각들이 글에 그대로 담긴 것이라고 또 합리화를 시켜본다.      


그러고 보니 걷기와 글쓰기, 이 두 가지가 작년에 거의 못했던 것이다. 어제부터 시작한 걷기를 꾸준히 한다면 왠지 글쓰기도 작년보다 올해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걷기는 글쓰기를 위한 준비 단계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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