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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Nov 02. 2021

행복은 나로부터

3710일 만에 각방 쓰기

 

2021년 11월 1일.

     

잊지 않기 위해 날짜를 써보았다. 이 날은 위드 코로나가 시작된 날이자 태어난 지 3710일 된 딸이 난생처음 자기 방 자기 침대에서 혼자 잔 날이다.  

   

아침에 딸에게 간밤에 평안했는지 묻자 그렇다고 한다.

이제 앞으로 계속 혼자 잘 거냐고 하니 그렇다고 한다.

전에는 침대 옆 옷장 위에 큰 곰돌이 인형이 있어서 그게 자기를 쳐다보는 것 같아 무서웠는데, 이제 그 인형이 없으니 하나도 안 무서웠다고 한다.    

  

솔직히 해방감보다는 서운함이 더 크다.   

   

그동안 주변의 다양한 엄마들과 간간이 교류를 쌓으면서 내가 제일 공감이 안되었던 부분은 “애가 더 이상 안 컸으면 좋겠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였다. 어릴 때는 어릴 때대로 커가면 커가는 대로 그때의 모습이 다 소중하고 예쁜 거지 어차피 시간을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참 부질없는 바람이다 그랬었다.     


심지어 내 기준에서 정말 엄마와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자녀를 둔 엄마조차도 “너무 빨리 크는 것 같아 아쉬워.”라고 말을 할 때는 한편으로 내가 너무 감정이 메말랐나 싶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감정을 나는 올해 들어 한방에 느끼고 있다.      


작년 한 해 코로나로 인해 학교도 거의 못 가고 친구들과의 교류를 많이 못했던 딸이 올해 4학년이 되면서 등교일수가 늘어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의 즐거움을 느끼며 어느덧 주말에 약속을 잡아 나가 노는 일이 늘어났다.      



나는 업무의 특성상 주말에도 3~4시간 정도 일을 하는 편이라, 내가 일을 하는 시간에 딸이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거나 자전거를 타고 떡볶이를 먹고 인생네컷을 찍고 오면 오히려 주말에 시간을 함께 못 보내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덜 들어 고맙기도 했다.    

  

주말에 바빠진 딸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건 아마 나보다는 남편일 것이다. 작년에는 주말에 둘이 자전거를 타고 멀리까지 가서 라면도 먹고 팥빙수도 먹고 오는 날이 많았는데 올해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말 아침에 밥을 먹을 때 이런 대화가 오고 간다.   

   

“오늘 아빠랑 자전거 타러 갈까?”

“아니, 나 친구랑 놀 거임.”       


알아서 약속을 잡고 지갑과 핸드폰을 챙겨 나가는 딸을 보며 벌써 저렇게 컸구나 싶긴 했지만 역시 나는 서운함보다는 친구들과 잘 지내니 보기 좋고 그래도 몇 시까지 돌아온다는 약속은 철썩같이 지키는 것에 대한 기특함이 더 컸다.      


그런데 그러던 내가 어젯밤 딸이 자기가 먼저 혼자 자겠다고 하는데 티는 안 냈지만 속으로 어찌나 서운하던지. 솔직히 조금 있다 안방으로 오지 않을까 싶어 귀를 기울이고 있기도 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짝사랑의 심정이었다.      


앞으로 그런 순간이 점점 더 늘어나겠지. 아이가 발달 단계에 맞게 잘 커가고 있으니 안심이 되고 이제는 우리가 또 다른 부모의 역할로 나아갈 마음의 준비를 할 때이다.      


나는 성향상 그리고 또 내 일이 있으니 빈둥지 증후군을 크게 느끼지는 않겠지만 매일 한 침대에서 자다가 각방을 쓰기 시작한 날 이리도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한데 나중에 성인이 되고 독립을 하게 되면 정말 허전할 것 같기는 하다.      



오늘 아침 운동을 하는 길가에 떨어진 낙엽이 많아 놀랐었다. 이렇게 또 가을은 빨리 지나가버리고 겨울이 오면 내년이 되겠구나. 하지만 긴 겨울이 지나면 또 봄이 찾아와 싱그러운 잎사귀와 하늘하늘 꽃잎이 우리를 웃음 짓게 할 것이다.          


딸은 계속 커가고 우리는 계속 나이 들어가겠지만 그 안에서 매일매일 새로운 행복을 찾아가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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