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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Nov 23. 2021

남는 건 사진뿐

우리가 진짜 남기고 싶은 건 뭘까?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고 여기저기서 소식이 들려왔다. 중부 지방에는 눈이 온다고 하던데 왔는지 모르겠다. 추워진 날씨에 아침 운동을 쉴까 하다 오늘 마침 회사 일정이 다른 요일로 변경되어 오전 시간이 비는데 운동마저 안 하면 집에서 퍼져 있게 될 것 같아 집을 나섰다. 어제보다 춥긴 했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추위를 가시게 하려고 더 빨리 걷다 보니 오히려 평소보다 일찍 몸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춥긴 했는지 걷는 동안에도 다른 생각은 떠오르지 않고 등교하는 중학생들이 부르던 노랫말만 자꾸 맴돌았다.      


걷고 씻고 커피 한 잔 마시며 글쓰기. 그게 최근 나의 평일 오전의 루틴인데, 사실 어제도 걸었지만 별다른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글쓰기는 못했다. 이틀 연속 걷기만 하게 되는 걸까 약간의 불안감에 사로잡히려던 순간, 저 앞에 어떤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봐도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와 마주 보는 방향으로 선 채 휴대폰을 높이 들고 약간 자기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여 찍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나무나 하늘을 찍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멀리서부터 지나쳐 가는 동안에도 계속 그 상태였다. 주변에 앙상한 나무밖에 없는 상태여서 내심 궁금했다. 과연 어떤 풍경이길래 저렇게 열심히 오랫동안 찍고 계신 걸까? 그래서 아저씨 옆을 지나는 순간 고개를 돌려 아저씨가 보고 있는 풍경을 보았다. 역시나 앙상한 나뭇가지와 푸른 하늘 그리고 고등학교 건물이 전부였다.      


지금 저 아저씨의 휴대폰에는 어떤 사진이 저장되고 있는 걸까? 어떤 풍경을 남기고 싶은 걸까? 그 풍경에는 어떤 기억이, 어떤 느낌이,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 걸까?   


  

문득, 어제 나의 망설임이 떠올랐다. 걷던 도중 주말에 초대받아 갔던 집들이에서 본 핑크뮬리과의 푸른색 갈대(?)와 비슷한 것을 발견해 사진을 찍으려다가 앞에 아주머니가 내 쪽을 보고 있어서 순간 고민하다가 사진을 못 찍고 지나쳤었다. 내가 갑자기 멈춰서 사진을 찍으면 오늘 내가 위의 아저씨를 보고 느꼈던 것처럼 뭘 찍으려고 저러나 궁금해할 것 같아서였다. 뭐 그 아주머니가 나의 행동을 궁금해하거나 내가 사진 찍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절대 안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냥 그 순간에 나는 사진을 안 찍는 것을 택했고, 그래서 그 갈대 사진은 남기지 못했다.      


나와 친한 사람들은 나와 만났을 때 음식이 나오면 바로 먹지 않는다. 내가 사진 찍을 동안 기다려준다. 모든 음식을 다 그렇게 찍어대는 것은 아니고 내 나름의 기준이 있고, 그것을 친한 사람들이면 또 다 안다. “이건 찍을 거지?” 하면서. 그리고 어느덧 자연스럽게 “나중에 나도 보내줘~” 한다. 이제는 그들도 내가 사진을 찍는 3~5초 정도를 기다리는 것에 불만은커녕 나라도 이렇게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서 공유해주니 고맙다고들 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여러 개의 SNS를 관리하고 심지어 최근에는 브런치에 글까지 올리는 나를 보며 “참 부지런하다.” 한다.      


글쎄 그런 나의 행동이 부지런한 걸까 싶다. 나는 그냥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놓고 싶다. 그리고 더 특별했던 순간은 나의 SNS에도 남겨놓고 싶다. 가끔은 정말 나도 가끔은 보여주기용으로 SNS에 무언가를 올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내가 보려고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 SNS에 올린 사진을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사진을 딸과 같이 본다.       


해외여행 갔던 사진은 심지어 블로그에 전체 공개로 다 올라가 있다. 물론 누가 볼 수도 있기에 올려도 될 만한 사진만 올려놓았다.   

   


어쨌든 그렇게 올려놓으니 이제는 잊을만하면 SNS에서 알아서 1년 전 오늘, 7년 전 오늘이라며 가끔씩 과거를 꺼내어 내 앞에 펼쳐주기도 한다. 그 과거를 보다가 또 추억에 젖고 그 사진 속에 함께 있는 사람들이나 그곳에 함께 갔던 사람들을 떠올리다가 더 마음이 여유로운 날은 그 사진을 보내며 그들에게 연락을 먼저 해보기도 한다.      


가끔 딸이, “엄마 (사진첩에 있는 또는 SNS에 올린) 사진 볼래~” 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그렇게 보고도 안 지겨워?” 하며 옆에 앉는다. 그런데 내가 봐도 정말 여러 번 본 사진들 인대도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 것 같다. 보고 또 봐도 새로울 것 까진 아니지만 그때를 떠올리며 미소 짓게 된다. 또 틈만 나면 사진을 찍어두기 때문에 계속 새로운 사진들이 있으니 볼거리가 많은 편이기도 하다. 다 볼 수가 없어 매번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또 보자.”하며 핸드폰을 끈다.    


  

그래, 역시 남겨두길 잘했어. 사진이 남아 있으니 그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기분, 느낌, 이야기가 다시 생생하게 떠오른다. 내가 지나온 자리를 기억하기 위해,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과 그 기억을 나누기 위해 오늘도 나는 사진을 찍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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