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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마흔_04

알다가도 모를 인생

by 나우히어

그날?


성준이가?

널?


성준이로 말할 것 같으면, 효인의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20살부터 31살까지 무려 11년 동안 효인의 남자 친구였으니까. 우리 중에 제일 남자에게 관심이 없는 륜이도 무려 3명의 남자를 만나고 헤어졌던 그 11년이라는 시간 동안 효인은 오직 성준만을 바라봤었다. 우리 중에 제일 화려하게 생긴 그래서 남자 꽤나 울리고 다녔을 것 같은 효인은 성준과의 11년의 연애 후 지금까지 싱글로 지내는 중이다. 즉, 성준이 마흔 살 효인의 인생에 있어 유일한 남자인 것이다.


어쨌든 헤어진 지 9년이나 지난 지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정을 찾아갔다니 대박사건이긴 하다.


정리를 하자면, 그날은 효인이가 단톡방에서 나갔던 날이고, 우리 중에 제일 SNS 활동을 활발히 하는 유정의 페친 중에 성준의 지인이 있어 유정의 병원을 물어봐 찾아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왜?


나도 그게 제일 궁금해서 물어봤지. 그랬더니 효인이랑 연락이 끊겼다고 연락되냐고 물어보더라고.


아니 그럼, 둘이 계속 연락하고 지냈던 거야?

성준이 걔, 결혼하지 않았어?


은재와 륜의 말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그래, 결혼했지, 그런데 그게 뭐? 결혼했으면 옛 친구랑 연락하면 안 되니?


야, 걔네 그냥 옛 친구 사이는 아니잖아.

친구는 무슨, 부인이 알면 눈 돌아갈 거 같은데?


또 은재와 륜의 말이 겹쳤다.


아무튼 내가 그날 오전에 우리랑 단톡방도 아무 말 없이 나가버려서 안 그래도 우리 모두 눈치 보고 있다고 하니까 표정이 더 안 좋아지더라고.

뭔가 이유가 있다고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 이유에 성준이 등장할 줄은 몰랐다. 성준이 군대에서 지낸 2년, 영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낸 2년 포함, 11년이라는 그 길고 긴 시간 속에서 효인과 성준이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사실 행복했던 것은 처음 1년이고 대학교 2학년 초에 성준이 군대를 가면서 그 둘의 불행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효인과 사귀는 걸 아신 성준이 부모님이 둘을 떼어놓기 위해 성준을 일찍 군대에 보내신 거였다. 아침 드라마 소재 같지만, 실제 두 사람의 연애가 딱 그랬다. 가진 게 많은 성준이네 부모님은 가진 게 없는 효인이를 못마땅해하셨고, 어떻게든 둘을 갈라놓으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두 사람은 더 끈끈해져만 갔다.


21살의 우리들은 세상에 남자가 걔 하나뿐이냐, 고무신 거꾸로 신어도 아무도 누가 뭐라고 안 한다며 주말마다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면회를 가는 효인에게 잔소리를 해댔다. 하지만 나중에 그렇게 면회를 갔던 어느 날, 부대 앞에서 성준의 부모님과 마주쳤다가, 음식이 다 내동댕이 쳐지는 수모를 겪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우리 모두 마음이 아파 함께 울기도 했었다.

제대 후, 성준이가 복학해 효인이가 졸업할 때까지 또 1년이 그 둘이 잠깐 행복했을 때다. 성준이 2학년 겨울방학 때 부모님이 영국으로 교환학생을 보내버린 것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질 거라고만 생각하셨던 거 같다. 처음에는 그 작전이 어느 정도 먹히는 것 같았다. 군대는 정성만 있으면 주말마다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영국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효인은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해 비행기표 끊을 돈만 모이면 3일이고 5일이고 영국을 다녀왔었다. 우리는 차라리 그렇게 찔끔찔끔 다녀오지 말고 방학 때 한 달 정도 있으면서 같이 여행도 하고 오라고 했지만, 자주 봐야 한다며 한 달이 머다 하고 영국을 갔었다.

물론 그래도 여유 있는 성준이 두 번에 한번 정도는 비행기표를 예약해줬던 거 같기는 하다.

그렇게 영국에서의 2년 후, 성준이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효인이 제일 바빴던 시기였다. 대학생 때부터 죽 수학 과외 아르바이트를 해왔던 효인은 졸업도 하기 전에 선배가 운영하는 입시 학원의 강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화려한 외모 덕분에 수강생들이 많이 몰려 1년 만에 스타강사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오후 2시부터 밤 12시까지 주말도 없이 일했던 효인은 우리는 물론이고 그 누구와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역시 나중에 알았는데 그 시기에 그래도 유일하게 만났던 사람이 성준이었다고 한다. 효인이 잘 나가던 그때, 성준의 어머님이 병치레를 하시느라 둘 사이에 간섭이 좀 적었다고 한다. 그러다 건강을 회복하신 후, 효인의 학원과 부모님을 차례로 찾아가는 만행으로 결국 두 사람은 11년 긴 연애의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헤어지고 3개월도 안 되었을 때, 성준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우리는 모두 부둥켜안고 또 울었었다.


그렇게 자의든 타의든 한 여자와 그 친구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 성준이 마흔 살 인생에 다시 등장하게 되다니.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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