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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마흔_10

참을 수 없음을 참을 수 없어서

by 나우히어

곧 마흔을 앞둔 나이에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학교 가까운 곳으로 이사도 하느라 남편과 의견 충돌을 하면서까지 나름 힘들게 들어간 대학원 박사과정을 한 학기 만에 그만둔 이유가 고작 교수님의 비듬 때문이라고?


우리도 이렇게 당황스러운데 그 사실을 차마 남편에겐 말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에겐 휴학 사실을 고백하지 못한 채 아침에 아이 등원시킬 때 백팩에 노트북을 넣고 같이 나와 유치원 버스를 태워 보내고 휴학 중에도 이용할 수 있는 학교 도서관이나 스타벅스를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때 처음 직장에서 잘렸지만 아직 가족에게 말 못 하고 아침마다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 척을 한 뒤 하루 종일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 늦은 저녁에야 귀가하는 사람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고 한다.

약 10여 년 전 석사과정으로 처음 뵈었던 교수님은 50대 중반의 인텔리전트한 아주 후하게 평가하자면 손석희 전 아나운서를 닮은 분이셨다. 이과 출신이었던 은재는 처음 접하는 심리 사회학 분야의 이론들이 어려우면서도 너무 재미있었다. 수학이나 과학만으로는 설명이 다 안 되었던 사람들의 복잡 미묘한 심리나 그러한 심리의 원인을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고 실제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들과 그것을 전달하는 주체였던 교수님은 새로운 것이라면 환장하는 은재에게 활력을 넘어서 매력 그 자체였던 것이다.


하지만 약 10년 뒤 박사과정으로 다시 뵙게 된 교수님은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은퇴를 앞둬서 그런지 예전의 날카로움은 사라지고, 기억력 감퇴 때문인 건지 본인이 했던 말을 자꾸 번복하질 않나, 판단력도 흐려진 건지 현실적으로 무리를 넘어서 불가능한 일들을 학생들에게 자꾸만 요구하시고, 예전에는 전혀 몰랐던 음흉한 시선까지 느껴지는 통에 교수님의 수업 시간이나 연구실에서의 회의 시간이 너무 고역이었다고 했다.


석사과정 때는 1:1로 교수님을 만날 일이 거의 없었지만, 박사과정은 그렇지 않았다. 왜 때문인지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단 둘이 회의를 하는 적이 많았는데, 좁은 테이블에 마주 앉은 교수님의 모습은 정말 안습이었다.


안경 너머 느껴지는 어딘지 시커먼 시선, 콧구멍으로 삐져나온 코털, 입가의 침 자국, 그중에 압권은 짙은 양복 자켓의 어깨 부분에 수두룩하게 떨어져 있는 비듬이었다. 평소에 어르신에 대한 거부감은커녕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들과도 잘 지냈던 성격이라 단지 교수님이 나이가 들어서 생긴 감정은 아니었다고 했다.


프로젝트 진행사항을 보고하거나 아티클에 대한 의견을 말씀드리거나 차를 마시며 간단한 이야기를 나눌 때조차도 시선이 자꾸만 교수님의 어깨로 향했고,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아주 미세하게 양미간을 찌푸리게 되는 날이 많았다고 했다.


다행히 교수님이 눈치채기 전에 자신이 반박자 빠르게 그 표정을 거두어들이긴 했지만, 자신의 표정과 수시로 싸우느라 교수님의 말씀에 집중을 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2번째 학기가 시작되는 9월 1일은 월요일이었고, 오전에 교수님에게 주간보고를 하는 날이었다. 일요일 저녁, 아니 그 며칠 전부터 주간보고를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좋은 핑곗거리가 생각나지 않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연구실로 옮기던 은재는 불현듯 학교 안 스타벅스에서 노트북을 켜고 교수님과 연구실 동료들에게 메일과 카톡을 미친 듯이 보냈다고 했다.


보내 놓고 노트북은 닫아버리고 핸드폰은 비행 모드로 해 둔 채 잠시 스타벅스에 더 앉아 있다가 학교 앞에서 472번 버스를 타고 한강 근처에 내려 하루 종일 강바람을 맞으며 벤치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딸아이 하원할 시간에 맞춰 동네로 돌아왔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남은 하루를 마무리했다고 했다. 그날 밤, 아이가 잠든 후 그제야 핸드폰 비행모드를 끄니 아까 보냈던 카톡에 대한 답과 부재중 전화 목록이 쏟아졌다고 했다. 꼭 답을 해야 하는 톡에만 답을 보내고 교수님의 짧은 답메일까지 확인하고 나니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그제야 실감이 났다고 했다.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것을 참을 수 없는 자신을 또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날 늦게 돌아온 남편에게는 말을 못 한 채 다음 날이 되었는데, 아침에 정신없이 출근하는 남편에게 차마 말을 못 꺼낸 채로 1년의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고 했다.

그러다 며칠 전, 그날도 어김없이 동네 스타벅스에서 오전에 아메리카노 한잔, 점심때쯤 베이글과 크림치즈에 뜨거운 물 한잔, 시킨 채 몇 시간을 죽치고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당연히 학교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학교 안 스타벅스로 잠깐 나오라는 것이었다. 사실 평소에 자연스럽게 잘 써먹던 임기응변을 그때 살짝만 발휘했으면 남편이 특별히 의심하지 않고 넘어갔을 텐데 속으로 ‘이제 그만 하자.’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당황하며 어버버 하다 결국 무려 1년이나 대학원생 코스프레를 해왔다는 사실을 실토하게 되었다고 했다.

모든 비밀은 간직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짊어질 수 있는 무게 그 이상이다. 안 그래도 우리 중에 몸무게가 제일 적게 나가는 은재는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순간만큼은 홀가분함이 무엇인지 온 몸으로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남편과는 지난번보다 더 오래갈 냉전을 시작했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매일 가던 학교 도서관이나 스타벅스를 더 이상은 갈 수가 없고, 그렇다고 집에 있자니 스스로 너무 한심해서 요즘 매일 다양한 루트로 한강을 다니던 중이었고 덕분에 몸무게는 거의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수준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몸무게처럼 나이도 되돌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그것만큼은 절대 안 되는 것이라는 사실이 어쩌다 마흔이 되어버린 그녀들을 무겁게 짓누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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