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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n 11. 2022

161125-01

세탁소 할머니의 불친절함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


         

어서 오세요.

2**4요.

네, 이희수 고객님. 찾아가실 거 있네요.

네, 그리고 오늘 셔츠 4장이요.

잠시 만요.     



지난주에 맡겼던 셔츠를 받고 오늘 맡기는 셔츠 1장당 990원, 총 3,960원을 카드로 결제하고 영수증을 받는다. 일주일에 한 번, 들어간 지 3분 정도면 볼일을 마치고 나오게 되는 집 앞 세탁소. 그 곳에서 항상 나를 맞이하는 사람은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짧은 단발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뿔테안경을 쓰고 푸석푸석한 피부 너머로 삶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여자다.



3분이라는 시간이지만 나는 느낄 수 있다. 그녀가 삶에 절어 있지만 그래도 딸랑 소리와 함께 고객이 들어오면 친절하게 맞으려 애쓴다는 것을. 그래서 나도 용무를 마치고 나오며 항상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수고하세요"라는 말을 크게 하곤 한다. 영수증과 카드를 지갑에 넣고 새로 나온 셔츠를 들고 돌아서려는데 여기 문 닫아요 한다.      



네? 언제요?

아마 다음 주 금요일까지 영업할 것 같아요.

아~어디 이사 가세요?

아니요, 힘들어서 좀 쉬려고요.



이 동네로 이사와 이 곳을 이용한 지 1년 반 만에 처음으로 대화다운 대화가 이어 지려나 했지만 거기서 멈췄다. 누가 봐도 힘들어보였던 사람이 막상 힘들어서 좀 쉰다고 하니 예상 외로 말문이 막혀버렸다. 말문은 막혔지만 그 순간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그래, 힘들면 쉬어야지. 그럼 나도 좀 쉬어도 되는 걸까? 그 여자도 막상 나에게 속내를 드러내고 나니 민망해졌는지 2초가량 정적이 흘렀다.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다행히 그 여자였다.      



오늘 맡기신 것은 다음 주 금요일 전까지 찾아가주세요.

아 네, 그럴게요. 수고하세요.     



어쩐지 내가 듣기에도 덜 활기찬 수고하세요를 내뱉으며 돌아섰다. 사실 그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그 여자를 대할 때마다 알게 모르게 내 삶을 위로받는 듯한 기분을 느꼈었다. 1년 반 전, 남편의 셔츠 5장과 나의 블라우스 2장과 카디건, 정장바지를 맡기면서 고객 등록을 위해 주소와 핸드폰 번호 등을 불러주는 동안 나는 그 여자의 부러워하는 눈빛을 느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맡기는 옷가지들을 눈여겨보고 화장을 하고 귀걸이를 한 나를 보는 그 여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민낯에 뿔테안경을 쓰고 머리를 질끈 묶은 채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 있는 자신과는 너무나 상반되는 나를 보면서 했을 생각. 같은 여자이기에 말을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의 마음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척하며 용무를 마치고 밝은 미소로 인사를 하고 나왔었다. 그리고 돌아서면서 나는 알았다. 앞으로 여기 올 때마다 내 마음이 편할 것임을. 그냥 그 여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받을 수 있을 것임을. 그것은 상대를 무시하거나 얕잡아보는 마음은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잘났다거나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마음도 아니었다. 그냥 그 여자를 봄으로써 마음이 편해지는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곳에서 그 여자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는 시간은 잠시 뿐.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팍팍한 삶은 나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렇게 또 일주일이 정신없이 흘렀다. 수요일까지 집 앞 세탁소를 잠깐 들를 새도 없이 바빴다. 목요일 아침, 남편이 출근하면서 오늘 세탁물 좀 찾아줄 수 있어? 라고 물어보는 소리에 오늘 맡기신 것 다음 주 금요일 전까지 찾아가주세요. 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 날 저녁 8시가 다 된 시각에야 겨우 그 곳에 들를 수 있었다.   

   


아, 안 그래도 연락을 드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어요.

이번 주에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네요.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떤 일 하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순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상대방의 직업을 아는데 상대방은 나의 직업을 모르니까 궁금할 수도 있고 알려줘도 괜찮겠다 싶었다.      



아~회계사에요. 요즘에 월말이라 평소보다 더 바쁘네요.

아~역시 전문직 종사자시구나. 옷들이 너무 깔끔하면서도 세련되어서 항상 궁금했었어요. 어떤 일을 하시는지.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터놓는 여자가 고마워 다시 한 번 얼굴을 보았다. 그런데 안경을 쓰고 있지도 않았고 머리를 묶고 있지도 않았고 심지어 화장을 한 얼굴이다. 칭찬을 해주고 싶은데 마땅한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이번에도 다행히 그 여자가 먼저 화제를 전환해 주었다.    

 


참, 이 근처에 가까운 세탁소가 두 군데 있거든요? ooo점이랑 oo점이요.

아, 네. 알려줘서 고마워요.

네~여기 세탁물이요.

네, 그럼 잘 쉬세요.      



이렇게 마지막이라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더 이어갈 말도 없었고, 더 남아있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안경 벗으니까 훨씬 보기 좋아요. 그냥 이 정도 말이라도 할 걸. 왜 그 순간에는 생각이 안 났을까. 바깥으로 나오자 후회가 되었지만 저 말을 하려고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갈 만큼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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