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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권형 Nov 19. 2018

'도시놀이'가 던지는 질문

2018년 11월 19일 [인천In] 청년칼럼 기고


 아침부터 서울 후암동 집을 나서 인천공항을 지나 영종도까지 갔다. 공항이 보이는 전망대에서 처음 보는 이들 몇몇과 전망대 뒤편 샛길로 함께 걸어 들어갔다. 멀리 아주 작은 호수와 돌 뿐인 허허벌판에 3미터쯤 되는 황금색 오각뿔 조형물을 중심으로 설치된 다섯 개의 커다란 텐트가 보였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사회경제체제가 한계에 부딪혀 전부 붕괴됐다고 생각해보자. 디스토피아가 된 세상은 개인의 다양한 욕망을 감당할 수 없다. 이에 사람들은 온라인 세계로 숨어든다. 그리고 새로운 대안 체제의 필요성을 절감한 이들은 각자의 욕망과 필요에 따라 부족을 형성하고, 이 중 다섯 개의 부족은 ‘미지의 땅’에 도착해 그곳에서 하루 간 새로운 체제를 실험한다.


 이건 지난 11월 10일 영종도의 허허벌판에서 진행 된 ‘부족의 탄생’ 작업의 개요이다. 앞서 묘사한 영종도의 풍광 역시 ‘부족의 탄생’ 진행 현장의 모습이다. 자원을 통해 모집 된 참가자들은 퍼포먼스 당일 하루 속세에서 벗어나 각각 다른 정체성을 가진 다섯 개의 부족(무언어족, 낭만족, 샤먼족, 노젠더족, 업로드족) 중 하나의 부족원이 되어 작가의 세계관을 살게 된다. ‘로그인의 문’을 통해 세계관에 입장해서 ‘로그아웃의 문’으로 퇴장할 때까지 (총 두 번의 워크숍을 통해) 자신들이 설정한 부족의 문화적 디테일(의상, 설화, 인사법 등)을 분장하는 것이다.


 이 ‘부족의 탄생’ 작업은 ‘멍때리기 대회’로도 잘 알려진 웁쓰양 작가의 11번째 퍼포먼스로, 그가 꾸준히 기획해 온 ‘도시놀이개발 프로젝트’의 최근작이다.
 

“월요일 낮 서울 시청 앞 광장에 점심시간부터 세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집단을 등장시켰다. 각자 자신의 직업을 대표하는 옷을 입고 오도록 했다.” 이처럼 단순한 개요를 가진 그의 이전 작 ‘멍때리기 대회’에 비해 ‘부족의 탄생’은 꽤나 방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의 사이버펑크 세계관이 떠오르기도 하고, 단순하지만 초월적인 조형물을 통해 인류의 끝과 시작이 초현실적으로 맞물린다는 지점에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황량하게 펼쳐진 풍광에선 <매드맥스>의 미장센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렇듯 ‘부족의 탄생’은 적지 않은 자본으로 제작 된 영화들이 레퍼런스로 줄줄이 떠오를 만큼 방대한 이야기를 담아낸 작업이다. 당연히 현실적으로 그 디테일을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무리다. 직관적으로 몰입할 만큼 세심한 무대를 연출하긴 애초에 어려웠단 얘기다. 실제 참가자들도 설정 속 자신의 모습과 현실의 모습을 온전히 구분하고 있지 않았다. 작가 역시 그러길 바란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심각한 오류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놀이’는 놀이일 뿐이니까.


 재개발 지구에 새겨진 폭력적 기억을 물감과 물총 놀이로 재현해 컬러풀하게 물들이고(<폐허의 콜렉숀, 2013>), 평일 대낮 메트로폴리스 중심가에 사람들을 모아 각자 지위를 벗어나 아무 것도 하지 않기를 장려하고, 심지어 기념한다(<멍때리기 대회 ,2014~>). 그리고 더 나아가 패션쇼의 형식을 비틀어 해체하고 그 안에서 경직된 도시의 권위가 우리의 입는 방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게 한다(<패셔니스타워즈, 2015>).


 <부족의 탄생>으로 이제 네 번째 진행된 웁쓰양 작가의 ‘도시놀이개발프로젝트’는 ‘놀이’라는 장치를 통해 ‘도시’를 무대로 한 상상력의 한계를 거듭 극복해왔다. 그리고 질문한다. 과연 지금 도시의 시스템 안에서 젠더의 구분이 권력의 차이와 차별을 야기하고 있진 않은지(<부족의 탄생> ‘노젠더족’ 설정), 개인이 너무 많은 관계와 정보를 감당하고 있진 않은지(<부족의 탄생> ‘무언어족’ 설정), 그렇듯 과연 지금의 도시가 개인의 다양한 욕망을 담아내기에 충분한지. 누군가에겐 자신의 욕망이 삭제된 도시가 이미 디스토피아인 건 아닐지.


 그리고 생각보다 다양한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이 삭제 된 현실에서의 일탈을 갈망하고 있는 것 같다. <멍때리기 대회>가 세계 각지에서 꾸준히 개최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가 되지 않을까. 

 한번 천천히 눈을 감고 자신이 꿈꾸는 세계를 떠올려보자.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보이는 현실은 당신의 세계를 얼마나 감당하고 투영해내는가. 놀이는 끝났지만 경직된 도시에 대한 우리의 질문은 계속 되어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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