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진정한 자유를 가능케 하는 상호 인정의 제도들
국내에서 아직 번역되지 않는 악셀 호네트(Axel Honneth)의 "자유의 권리(Freedom's Right)"를 해설하는 글입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을 위해 제가 가장 먼저 "자유의 권리"를 연재하는 이유는 이 작업 안에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분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도구가 담겨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꼭!! Chapter 1. 부터 읽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Prologue도 있긴 합니다). 감사합니다 :)
Chapter 10. 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회적 자유에서 핵심적인 사고는 우리 사이의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입니다.
따라서 이 사고를 따라 몇몇 사회적 자유의 특징들이 도출되게 됩니다.
그러나 이 특징들은 한 가지 테제로 수렴되는데요. 그것은 바로 "Being with oneself in the other," 즉 "타자 속에서 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테제는 우리가 관계망 속의 모든 타자들의 행위를 통해 "외적 세계의 일부"를 식별하게 되면서, 이들의 목적과 욕망이 승인한 범주까지만 (그리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나만의 삶의 기획을 발견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즉 각자의 목적을 타자 속에서 확인하게 되면서, 우리는 반성적인 차원에 머물렀던 우리의 자유로운 행위를 사회적 차원으로, 혹은 상호주관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 상호주관적 공간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소극적 자유와 반성적 자유가 비로소 완전히 실현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공간 속에서 우리의 특수성은 (particularity) 보편성과 (Universality)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타자에 의존하면서, 한 주체의 자유로운 행위의 기획은 "타자 속에서 내가 되는 것" 안에서, "공유성의 경험" 속에서, 그리고 "개인적 목적의 상호 호혜적 이행" 속에서 나의 의도를 거부하지 않는, 이 의도를 가능케 하는 사회적 배경, 혹은 객관 현실 안에서 실현되기 때문인 것이지요.
이제 다시 사회적 자유에서 핵심적 사고였던 '상호주관성'으로 돌아가서, 여기서 도출된 특징들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호네트는 (그리고 헤겔은) '자유'라는 개념에 우리의 행위가 실제 실현될 수 있는 외적 현실을, 혹은 기존의 제도적 구성을 더하면서, 객관 현실의 전제 조건들을 자유 자체의 본질로 여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 자유의 결정 요인은 자유를 구성하는 관점 자체를 완전히 전도시키게 됩니다.
이제 이 외적 현실이나 기존의 제도적 구성들은 자유의 개념에 더해지는 부수적인 요소가 아닌, 자유 그 자체를 구성하는 요소인 것이지요.
이렇게 사회 현실 속에 제도들이 자유의 개념 속에 들어오게 될 때, 우리는 사회적 자유가 소극적 자유와 반성적 자유와 완전히 분기되는 지점을 보게 됩니다.
소극적 자유와 반성적 자유에 관한 사고 속에서 모든 행위는 'I'라는 관점으로 통합됩니다.
외적 방해로부터 자유로운 나의 행위를 추구할 때든, 반성적 행위를 통해 (도덕적) 자율성이나 자기실현을 추구할 때든 언제나 그 중심에는 'I'가 놓여있는 것이지요.
반대로, 사회적 자유에 관한 사고 속에서는 'we'라는 관점이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됩니다.
나의 자유가 진정으로 실현되는 객관 현실 속에 타자의 존재들은 우리가 오직 상호 인정의 상호주관적 관계들을 통해 자유를 실현할 수 있다는 조건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사회적 자유에서는 서로에 대한 우리의 의존성이 자유에 있어 가장 본질적이고 가치 있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자유의 이 상호주관적 차원은, 혹은 상호주관적 순간은 자유가 'we'라는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사회적 자유 속 'we'라는 관점은 우리의 자유 실현을 가능케 해줄, 즉 각자가 타자를 상호 호혜적으로 인정하고 승인할 수 있는 사회 제도들과 관습들을 요구합니다.
살펴본 것처럼, 우리는 서로 얽혀있는 객관 현실 속에서, 서로의 인정과 승인을 토대로 우리의 목적과 욕망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객관 현실이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서로를 '자아의 타자'로 인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직 제도화된 일상의 사회적 제도들과 관습들만이 우리가 서로를 상호 호혜적으로 인식하며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보증해 줄 수 있습니다.
과연 현실에서 사회 제도들과 관습들 이외의 어떤 요소들이 서로를 '자아의 타자'로 인식할 수 있는 토대를 보증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자유로운 행위는... 타자들이 우리의 의도에 반대하지 않는, 오히려 이 의도를 수행할 수 있게 하고 도모한다는 사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악셀 호네트, 자유의 권리, 60), 우리가 '공유성의 경험'을 통해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들과 관습들은 사회적 자유에서 필수 요소가 됩니다.
우리가 서로 의존하며 상호작용하는 이 '관계적 제도' 속에서, 즉 '브런치'라는 제도 속에서 저는 제가 선호하는 목적을 보충해주는 여러분의 존재를 통해 저의 자기실현을 충족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진정한 자유 실현은 불가피하게 사회적 제도들과 관습들을 수반하게 되고, 자유는 필연적으로 "제도적으로 고정된 인정 관계들"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관계들 속에서 우리는 타자를 참조하며 기꺼이 우리를 제한하게 됩니다.
제가 '브런치' 속에서 제 글을 읽어주실 감사한 분들을 참조하며 기꺼이 저의 모든 욕망을 제한하고 있는 이 공간은 우리의 진정한 자유 실현을 위해 꼭 제도화되어야 합니다.
셋째, 이러한 관계적, 인정적 제도들은 그 설득력 있는 힘과 정당성을 우리의 상호 간 인정의 관계들로부터 얻게 됩니다.
호네트는 단순히 모든 사회 제도들을 자유로운 행위를 위해 개개인이 서로 엮인 매개체로 보지 않습니다.
사회적 자유 속에는 각각의 목적에 대한 상호 호혜적 충족이 담겨있기 때문에, 이를 가능케 하는 사회 제도들과 관습들은 반드시 서로의 목적을 가능케 하고 촉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참여자들을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이 인정적 제도들은 단순히 익명으로 통합된 개인적 행위의 밀집체가 아닙니다.
이 제도들은 상호 인정의 관계들을 행위적 규범으로 필요로 하면서, 여기에 관여된 모든 이들이 각자의 자유 실현을 위해 유기될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을 인지할 것을 요구합니다.
나는, 내가 타자의 자유를 가능케 하는 행위자인 만큼이나, 타자 속에서, 타자를 통해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즉 상호 간 인정은 관여된 모든 이들의 목적이 서로 보완적인 방식에서 실현될 수 있을 때 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모든 인정의 관계들이 이 보완적 방식을 위한 행위적 규범을 요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유의 실현을 위해 서로 보완적으로, 그리고 공동으로 구성한 상호 인정의 관계들이 개개인의 목적을 객관적으로 통합하는 행위적 규범의 다발을 제공함에 따라, 한 개인의 의무와 역할은 상호 인정의 관계적 제도 속 타자로부터 그 타당성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제 이 행위적 규범의 다발은 우리 사이의 상호 호혜적 이해를 보증하고, 여서 우리는 타자의 욕망 실현이 우리의 욕망 실현을 위한 조건이 된다는 점을 인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브런치' 역시 단순히 익명으로 통합된 개인적 행위의 밀집체가 아닙니다. 서로를 '작가님'으로 '독자님'으로 인정하고 승인하며, 나의 목적을 충족하기 위해 서로 보완적인 방식에서 각자 자신의 행위를 일정 수준까지 제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제한적인 행위 자체를 나의 자유 실현에 있어 '억압'으로 여기기보다는 서로를 상호 호혜적으로 이해하고 보충하며 기꺼이 스스로를 제한하는 것으로 인지하게 됩니다. 이러한 우리의 행위적 규범을 통해, 우리의 상호 간 인정 관계들을 통해, '브런치'는 자신의 존재 이유와 타당성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개개인은 오직 상호 인정의 관습들로 형성된 사회 제도들에 참여함으로써 자신들의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고 실현할 수 있다는 결론은 두 가지 전제 조건을 필요로 합니다.
(i) 우리는 자유를 위해 상호 간 보완을 요구한다는 관점에서, 우리의 목적과 욕망을 보편적인 것으로써 형식화하는 법을 학습해야 합니다.
일단 이 과업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상응하는 인정 관계들 속의 객관성의 영역 내에서 진정한 자신과 합치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상호 호혜성의 규범적 관습이 확립되어온 제도들 속에서 나고 자라왔기 때문에, 타자의 보완적인 행위 속에서만 충족될 수 있는 각자의 목적과 욕망을 통제하거나 제한하는 방식을 학습해야 하는 것이지요.
(ii) 개인의 자유에 관한 원리를 반영하는 사회 제도들은 반드시 공동의 저자들로서, 모든 참가자들이 반성적으로 숙고한 합리적 비판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남은 사회 질서들만이, 모든 참여자들이 자율적으로 동의하거나 합의하는 범주까지, 구체화된 객관성의 세계로서 정당화된 관습이나 제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를 가능케 하는 이러한 제도들은 반드시 정당화의 상호주관적인, 논증적인, 그리고 비판적인 과정들 안에서 결정되는 것으로써 도덕성의 요구들과 서로 양립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자유가 우리의 반성적이고 비판적인 관찰로부터 살아남은 인정의 제도들로 완성된다는 사실은 일종의 사회 계약과 함께 제도적 구조의 적법성을 - 자연 상태 (홉스), 혹은 원초적 입장 (롤스) 속의 이기적인 개개인의 관점에서 - 모든 가설적 합의에 두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 보다, 우리의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들의 체계는 반드시 원자적인 개개인의 자유를 선행해야 합니다.
이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서로의 상호 의존성을 인지할 수 없기 때문인 것이지요.
요약해 보면, 저는 이번 회차에서 사회적 자유 속의 핵심적인 사고인 '상호주관성'과 여기서 도출된 특징들을 소개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이 특징들은 모두 'Being with oneself in the other'라는 테제 주변을 선회합니다.
이렇게 상호 호혜적인 인정의 제도들 속에서 나의 자유가 진정으로 실현되는 방식은 (1) 'we'라는 자유의 관점, (2) 자유를 가능케 하고 촉진하는 제도의 필수성, (3) 이 제도가 요구하는 각자의 행위적 규범, 그리고 (4) 욕망의 보편성과 개인의 자유를 선행하는 제도 속 인정의 우선성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를 배경으로, 이제 우리는 사회적 자유와 정의의 관계를 파악해 볼 수 있습니다.
사회적 자유 속에서 정의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호네트가 주장하는 정의론은 기존의 정의론과 어떻게 다를까요? 호네트의 정의론은 우리 사회를 진단하고 분석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을까요?
> 다음 회에 (순차적으로) 이어집니다.
#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한 사회적 상상. Philosurfing이 곧 그 상상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작업에 함께할 의향이 있는 분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제 메일로 연락 주시면 앞으로의 작업 내용에 대해 상세히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mail: sjun121@aucklanduni.ac.nz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