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분석을 위한 방법론적 도구
국내에서 아직 번역되지 않는 악셀 호네트(Axel Honneth)의 "자유의 권리(Freedom's Right)"를 해설하는 글입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을 위해 제가 가장 먼저 "자유의 권리"를 연재하는 이유는 이 작업 안에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분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도구가 담겨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꼭!! Chapter 1. 부터 읽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Prologue도 있긴 합니다). 감사합니다 :)
Chapter 12. 에서 살펴본 것처럼, 호네트의 정의론은 사회적 자유에 관한 사고를 기반으로, 우리가 실제 관계되어 있는 사회 제도들과 관습들을 분석하는 과업을 목표로 합니다.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한 개인의 자유는 서로의 목적과 의도를 상호 호혜적으로 승인하고 지지해주는 인정의 제도들 속에 참여할 수 있을 때 만이 진정으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에, 호네트에게 (사회) 정의란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이 인정의 제도들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보장되는가에 따라 측정되어야 합니다.
즉 호네트는 우리 사회의 적법성을 구성원들이 이 인정의 제도들에 참여할 수 있는 정도와 연결하면서, 정의에 관한 사고를 이 제도들 안에 스며있는 윤리적 가치에 결부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방식으로 정의에 관한 사고를 우리 현실의 다양한 기능적 영역의 제도들과 매개하게 되면, 정의론의 방법론적 접근도 기존의 모델과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됩니다.
호네트의 정의론은 (기존의 정의론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상적인 절차나 기준을 미리 설정해두고, 이를 사후적으로 우리 현실에 적용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이미 우리 앞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 현실 속 제도들을 간과한 채, "이 제도들의 실재가 그 자체로 합리적이거나 정당화될 수 있는가 여부를 입증하는 것 없이, 성경 해석학적으로 규범적 원리들을 기존의 제도적 구조들이나 성행하는 도덕적 신념들에 적용" (자유의 권리, 2) 하는 기존 정치 철학의 세태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 보다, 호네트는 정의론을 위해 우리의 윤리적 가치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실제 구현되고 실현되는 다양한 제도적 영역들을 분석합니다.
살펴본 것처럼, 진정한 자유의 실현은 (그것이 소극적이든 반성적이든) 그 실현이 가능한, 이에 상응하는 제도적 구조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 제도들 속에서 우리가 "타인과 규범적으로 조정된 상호작용 속에서 인정을 경험할 수 있는" (자유의 권리, 65) 방식을 관찰하는 것이 정의론을 위해 더 중요해지게 된 것이지요.
이제 호네트는, 자신의 정의론으로써, 우리의 상호주관적 자유를 위해 필수적인 사회 제도나 관습들을 역사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추적하고 분석합니다.
즉, 우리의 자유가 진정으로 실현되는 토대로서 사회 제도나 관습들이 지금까지 해 온 공헌과 역사적 현실성을 살펴보면서,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재생산되어 왔는지 추적하면서, 우리의 진정한 자유 실현을 위해 이 제도나 관습들이 서약했던 내용들이 얼마나 성실히 이행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지요.
이 과정을 통해 호네트는 헤겔이 우리의 '윤리적 삶 (ethical life)'이라고 명명했던 사례들의 외형을 드러내며, 진정한 사회적 자유가 실현될 수 있는 영역들을 선별해 냅니다.
또한 그는 이 과정에서 기존의 제도들이나 관습들이 우리의 진정한 자유를 불충분하고 불완전하게 실현시켜 온 사례들도 지적합니다.
호네트는 이 과정을 '규범적 재구성 (Normative Reconstruction)'이라고 명명하는데요.
즉 규범적 재구성은 각 제도나 관습들이 우리의 자유 실현을 위해 품고 있는 (윤리적) 가치들을 얼마나 잘 이행해왔고 안정화해 왔는가에 따라 이들을 재 정렬하고 범주화하고자 하는 시도인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 사회 속에서 이미 제도화된 각 영역들의 가치가 우리의 자유 실현해 해 온 공헌을 입증하면서, 호네트의 정의론은 우리의 윤리적 관계망에 관한 그림으로부터, 그렇게 분화된 각 제도들의 질서들을 규범적으로 재구성합니다.
상호 인정의 경험 속에서 우리의 진정한 자유의 실현을 가능케 하는 사회 제도나 관습들 겹겹의 층을 분석하면서, 호네트는 우리의 규범적 주장들과 사회 현실 간의 간극을 매우고 있습니다.
# 호네트의 정의론과 관련된 방법론을 둘러싸고 여러 논쟁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 방법론에 강하게 스며있는 헤겔의 '객관 정신 (Objective Spirit)'에 관한 개념을 호네트가 어떻게 해석하고 승인하는가 여부는 현재까지도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이를 다루는 것은 학문적인 영역에 더 가까운 만큼 제가 일일이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 이점 참조해 주시고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호네트의 저작 "자유의 권리 (Freedom's Right)"는 참조문헌과 Index를 포함하여 총 400여 페이지에 달합니다.
그리고 제가 프롤로그부터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은 이 저작에서 약 60여 페이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나머지 300여 페이지는, 즉 "자유의 권리" 대부분은 호네트가 규범적 재구성에 헌신한 내용들로 - 개인의 사회적 자유를 가능케 하는 근대 사회의 주요한 관계적 제도들의 현 상태와 역사에 관한 분석: 각 영역의 주요한 목적을 설명하고, 이들이 허용하는 특정한 자유의 측면, 그리고 이들의 적법성의 기본 원리 - 채워져 있는데요.
따라서, 여기서 이 나머지 내용을 요약해서 제공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될 것입니다.
이를 감안하여 저는 앞으로 호네트가 분석한 사회의 각 영역이 제도화하고 있는 개인의 자유에 관한 특정한 측면, 이들이 보여주는 가치와 규범적 정당성, 그리고 한계나 병리들을 간략히 소개하고, 이를 한국 사회에 대입해 보고자 합니다.
이는 한국 사회를 규범적으로 재구성해 보는 시도가 될 텐데, 이 과정은 분명 각자의 개인적 선호도, 혹은 신념이나 믿음, 그리고 정치적 선호도를 너머, 우리 사회의 각 영역이 처한 현실을 보다 이론적이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이 작업은 다음 회차부터 시작될 텐데, 호네트가 분류한 우리 사회의 각 영역과 이들이 실현하는 자유의 범주, 한계와 병리들, 그리고 우리의 윤리적 삶이 가능한 사회적 자유의 세 가지 주요한 영역들의 간략한 스케치를 위해 우선 각각의 Heading을 도식적으로 소개하면서 마치겠습니다.
1. 자유의 가능성 (The possibility of Freedom)
(a) 법적 자유 (Legal Freedom)
(b) 도덕적 자유 (Moral Freedom)
2. 자유의 실재 (The Reality of Freedom)
(a) 사회적 자유 (Social Freedom)
(i) The 'We' of Personal Relationships
(ii) The 'We' of Market Economy
(iii) The 'We' of Democratic Will-Formation
먼저 호네트가 이야기하는 법적 자유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법적 자유가 가진 한계와 병리적 현상들은 무엇일까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모습은 이 한계와 병리적 현상들을 통해 설명될 수 있을까요?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