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우리가 인정의 제도들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것
국내에서 아직 번역되지 않는 악셀 호네트(Axel Honneth)의 "자유의 권리(Freedom's Right)"를 해설하는 글입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을 위해 제가 가장 먼저 "자유의 권리"를 연재하는 이유는 이 작업 안에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분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도구가 담겨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꼭!! Chapter 1. 부터 읽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Prologue도 있긴 합니다). 감사합니다 :)
#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한 사회적 상상. Philosurfing이 곧 그 상상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작업에 함께할 의향이 있는 분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제 메일로 연락 주시면 앞으로의 작업 내용에 대해 상세히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mail: sjun121@aucklanduni.ac.nz #
Chapter 11. 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회적 자유는 '상호주관성' 이라는 핵심적인 사고 속에서 'Being with oneself in the other'라는 테제로 수렴되는 몇몇 특징들을 수반합니다.
1. 사회적 자유에 관한 사고 속에서, 자유는 이제 더 이상 'I'라는 관점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유를 진정으로 가능케 하는 상호 호혜적인 인정의 제도들 속에서, 자유 그 자체를 구성하는 본성은 반드시 'we'라는 관점에서 설명되고 해석되어야 합니다.
2. 타자의 인정과 승인을 통해 진정한 자유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이를 촉진해 줄 사회 제도들과 관습이 필수적입니다.
3. 이러한 사회 제도들과 관습들은 상호 보완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의 행위적 규범을 통해 그 정당성을 얻게 됩니다.
4. 이 참여자들은 각자의 목적과 욕망을 보편적인 것으로 형식화할 수 있어야 하고, 공동의 저자로서 우리는 규범적인 사회 제도들과 관습들을 재생산해 나갑니다.
이제 우리는 헤겔의 자유 모델을 재해석한 호네트가 제시하는 정의론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호네트는 우리의 좋은 삶을 형식화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자유 모델을 역사적으로 추적해 가는 과정에서 사회적 자유에 관한 사고를 가장 유망한 입후보자로 승인합니다.
호네트에게, 사회적 자유 모델은 소극적 자유와 반성적 자유가 가진 문제들을 수정하면서, 이들의 통합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이전에 불충분하게 남아있었던 소극적 자유와 반성적 자유 모델에서 도출된 정의의 원리 역시 수정이 불가피해진 것이지요.
특히 호네트는 당대 정치-사회 철학에서 지배적인 정의에 관한 사고를 선도하고 있었던 반성적 자유에 관한 사고에서 그 '관념론적 자아도취(idealistic self-absorption)'를 벗겨내려고 합니다.
즉 사회적 자유 모델을 기반으로 호네트는 정의의 원리들을 먼저 설정해 놓고, 이를 현실에 사후적으로 연결하는 기존 정의론들의 방법론적 문제를 수정해 나갑니다.
그렇다면 호네트가 사회적 자유 개념에서 도출한 정의의 원리란 정확하게 무엇일까요?
재차, 호네트에게 사회적 자유에 관한 사고는 근대 속 개인의 자유에 관한 다양한 모델 가운데 우리의 좋은 삶을 형식화하기 위한 규범적 참조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는데 가장 적합합니다.
개개인은 오직 사회적 자유 속에서, 즉 상호주관적인 상호 인정의 제도들에 참여함으로써 실제 자유를 경험하고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호네트에게 우리의 좋은 삶과 관련된 '정의'의 원리는, '타자 속에서 내가 되는 것 (Being with oneself in the other)'이라는 테제와 함께, 각 개인이 사회 제도나 관습 속에서 반성적으로 결정된 목적과 욕망을 실현케 하는 방식에 관한 문제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호네트는 일종의 규범 이론으로서 자신의 정의론을 사회 분석을 목표로 하는 실제 사회 제도들과 관습들의 관찰로 향하게 합니다.
호네트는 직접적으로 '정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What we now call 'just' can no longer merely be measured by whether and to what extent all members of society enjoy negative or reflexive freedoms, rather justice must entail granting all members of society the opportunity to participate in institutions of recognition. This means that certain normatively substantive and thus 'ethical' institutions requiring legal security, state authority and civil support shift to the centre of our idea of social justice.
(Axel Honneth, Freedom's Right, 61).
우리가 이제 ‘정당한’ 것으로 부르는 것은 더 이상 모든 사회 구성원이 소극적 혹은 반성적 자유를 향유하는가 여부나 범주에 의해 측정될 수 없고, 대신 정의는 반드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인정의 제도들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을 수반해야 한다. 이는 법적 안정성, 국가 권력 그리고 시민의 조력을 요구하는 특정한 규범적인 실재적 그래서 ‘윤리적’인 제도들이 사회 정의에 관한 우리의 사고 중심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악셀 호네트, 자유의 권리, 61).
다시 말해서, 호네트가 보기에, 우리 사회는 각각의 영역들이 약속한 자유를 실제로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에서 여기에 상응하는 영역들이 구성원들에게 그 참여를 보증하는가 여부에 따라 정당한 것으로 판단될 수 있습니다.
즉 호네트에게 정의는 사회적 자유를 최대한 실현할 수 있는 사회 질서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지요.
언뜻 보기에, 추상적인 내용의 관점에서, 호네트의 정의 개념은 소극적 자유나 반성적 자유에서 도출된 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이전의 자유 모델 역시 정당한 사회 질서란 개인의 자유를 허용하고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정의론의 방법론적 관점에서, 사회적 자유는 완전히 다른 접근을 요구합니다.
호네트에게, 정의의 의미는 (기존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반성적 사고를 통해 정당화된 이상적이고 철학적인 절차나 기준을 사회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개인이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해 바람직한 사회 계약이나 민주적 절차에 참여할 수 있기 전에, 자유를 실제 가능케 하는 객관 현실이 먼저 존재해야만 하기 때문인 것이지요.
객관 현실은 우리의 자유가 완전히 실현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적이 사회적 삶의 협력적 기획과 조화되는 장소이기 때문에, 정의의 개념은 이 객관 현실이, 외적 현실이 우리의 자유 실현을 위해 얼마나 정당한지를 묻는 문제와 연결됩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개인의 상호주관적 자유를 위해 필수적인 모든 사회 제도나 관습들이 각 구성원들에게 실제로 자유를 가능케 하는 범주까지만 정당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 제도들이 정당한 것으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원자적인 개인의 자유보다 먼저 제시되어야 하고, 상호 호혜성과 상호 인정의 관습들을 구체화 함으로써 잘 작동해야 합니다.
따라서 호네트에게, 정의의 개념은 개개인이 공유성의 경험 속에서 자신만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규범적 관습들과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제도적 구성 속에서 구체화된 관습들 속에서 만이, 주체들은 자신들의 목표에 있어 공동으로 가능한 실현에 대해 자신들의 공헌이 무엇인지를 인지할 수 있기 때문에, 정의는 이를 가능케 하는 정당한 사회 질서가 무엇인지 관찰하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정당하다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개개인이 인정의 제도들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증하는 각종 제도들의 체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고립된, 원자적인 개개인의 결정보다 앞서 존재하는, 이미 타자와의 상호 작용 속에 얽혀있는 인정의 제도들 - 호네트의 표현대로, '몇몇 방식에서 타자와 관계하는 영역 속에 자리하고 있는 자유에 앞선 이 층(layer)' - 에 우리는 정의의, 혹은 정당함의 척도를 대입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 층을 따라, 정의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인정의 제도들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사회 정의의 핵심에는 법적 안정성, 국가적 보호, 그리고 시민 사회에 있어 특정한, 규범적으로 실재적인, 윤리적으로 자기 매김 된 제도들이 놓여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제도적 구조들은 오직 상호 주관적인 자유의 실현을 위한 장소, 즉 법, 정치, 그리고 공론장으로 분화된 각 영역의 협력적 작용 속에서만 보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호네트는 정의의 의미를 실제 사회관계들을 관찰하는 것으로 이동시키게 됩니다.
사회적 자유를 보장하는 이러한 실제 우리 사회의 관계적 제도들이 소극적 자유와 반성적 자유에서 공백으로 남아있었던 공간을 충족하게 되면서, 우리의 자유 실현을 위해, 우리의 목적과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실제 존재하는 규범적 관습들이 우리에게 어떤 모습인지가 중요해지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정의의 내용과 의미는 개념적 분석, 이상적 이론, 선험적 반성, 순수한 추론으로 생성될 수 없습니다.
그 보다, 정의론은 사회적 자유를 이론화하는 작업으로써, 반드시 실제 사회적 제도들의 분석으로부터, 그리고 이를 통해 생겨나야 합니다. 정의론은 사회 분석에 기반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호네트 정의론이 현실 사회 분석을 목표로 할 때, 이제 우리는 그의 모델이 어떤 정의론보다 역사적이고 사회학적이 된다는 점을 식별하게 됩니다.
개인의 자유는 우리가 객관 현실에 참여할 수 있을 때 만이 실현 가능하기 때문에, 이 객관 현실의 역사적 현실성을 증명하는 것이 호네트의 다음 과업이 되는 것이지요.
호네트에게, 개인의 자유가 각자의 목적과 의도에 관여하고 있는 모든 행위의 영역들 속 타자의 응답에 의존하는 만큼, 우리는 자유에 선행하는 이 층을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호네트는 그 다음 작업을 '규범적 재구성 (normative reconstruction)'이라고 명명합니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기존의 제도들과 관습들에 의존하여 개개인의 자유가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적법화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어떤 사회 제도나 관습들을 재생산해 왔는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지요.
"각각의 사회 영역이 사회 속에서 이미 제도화된 가치들을 달성하고 실현하는데 해 온 공헌을 입증함으로써, 그 사회의 특수성과 본질적 특징들을 부각" (자유의 권리, 7) 시키는 과정을 통해, 호네트는 헤겔이 '윤리적 삶 (ethical life)'이라고 명명한 사례들을 체계적으로 스케치하고자 합니다.
또한 호네트는 윤리적 삶의 사례들을 재발견하거나 재구성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기존의 제도들이나 관습들이 불충분하고 불완전하게 구체화해온 모습들을 비판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론을 위한 호네트의 규범적 재구성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 규범적 재구성은 우리 사회의 어떤 영역들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을까요?
> 다음 회에 (순차적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