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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i generis Jun 11. 2022

Chapter 10. 사회적 자유 II-'너' 안의 나

 Being with Oneself  in the Other

국내에서 아직 번역되지 않는 악셀 호네트(Axel Honneth)의 "자유의 권리(Freedom's Right)"를 해설하는 글입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을 위해 제가 가장 먼저 "자유의 권리"를 연재하는 이유는 이 작업 안에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분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도구가 담겨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꼭!! Chapter 1. 부터 읽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Prologue도 있긴 합니다). 감사합니다 :)


Chapter 9. 에서 살펴본 것처럼, 호네트는 소극적 자유와 반성적 자유의 결함들에 맞서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해 사회적 자유 개념을 적극적으로 승인합니다.

그가 보기에, 사회적 자유는 우리가 좋은 삶을 형식화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입후보자인데요.

사회적 자유는 반성적 자유가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던 객관 현실을, 즉 자율적으로, 자기 진실적으로 정화된 의지의 행위가 실제 실현될 수 있는 외적 조건들을 자유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 자체에 포섭시키면서, 우리의 자유가 진정으로 실현되는 모든 상호 주관적 토대 - 사회 제도와 체계, 관습 혹은 수단 - 를 시각화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반성적 자유는 소극적 자유의 결함을 수정하면서 '자유' 개념을 내적으로 연장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 개념을 객관성의 영역 밖으로 끄집어내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반성적 자유 속에서는 우리의 반성적 목표가 사실상 성취될 수 있는 어떤 보증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반성적 자유가 외적으로 연장해 내는데 실패한 이 객관 현실을 사회적 자유는 자유의 척도에 밀어 넣으면서 반성적 자유의 결함을 수정하게 됩니다.



이제 호네트에게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우리의 자유로운 행위에 걸맞는, 이 행위가 실제 실현되는 사회적 배경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 배경으로부터 우리는 행위의 목적과 감각을 끌어내고, 이 안에서 우리의 행위는 사회적 행위의 협력적 기획과 조화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모든 사회적 배경이 '' 포함한 '',  '타자들' 구성되어 있다는 인데요.

따라서 사회적 자유에서 가장 핵심적인 차원은 자유에 본질적인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 입니다.

즉 우리 모두와의 관계 속에서 나의 주관성이 발현될 수 있는, 그리고 더 높은 차원에서 서로 간의 개성이 존중될 수 있는 상호주관성은 사회적 자유를 대표하는 개념이 됩니다.


호네트의 (그리고 헤겔의) 사회적 자유 개념 속에서는, 나의 행위가 진정으로 자유롭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한 기획이 성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사회적 배경을 구성하는 타자의 실존에 의존하게 됩니다. 반대로 타자 역시 자신의 자유를 위해 나의 실존에 의존적이 됩니다.

이 상호 간 인정의 관계들 속에서, 그리고 이 인정의 관계들을 구체화하는 모든 사회 제도들, 관습들, 체제들, 혹은 수단들 속에서 타자는 나의 자유를 위한 조건이 되고 목적의 일부가 됩니다.

(호네트의 이름을 더욱 널리 알려준 그의 저서 "인정투쟁 (The Struggle for Recognition)"에서는 이 인정의 관계들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약 20년 후 "자유의 권리 (Freedom's Right)"에서 그는 대부분의 페이지를 근대 사회의 주요한 인정의 제도들 (우리 사이의 관계적 제도들)의 현상태와 역사에 관한 사회적 분석에 할애합니다)


헤겔은 "법 철학 (Philosophy of Right)"에서 이 특성을 '타자 속에서 내가 되는 것(Being with oneself in the other)'으로 형식화하는데요 (그리고 '사랑'과 '우정'에 관한 그의 해설은 이 형식을 잘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호네트 역시 이 형식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저서 "자유의 권리 (Freedom's Right)"에서 여러 차례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다른 표현을 사용합니다: "공유성의 경험 (the experience of commonality)," "개인의 목적의 상호 호혜적 이행 (the reciprocal fulfilment of individual aims)" 등등 (Freedom's Right, 62).


사회적 자유의 주요한 몇몇 특징들은 모두 방금 언급한 이 테제로 수렴됩니다: "Being with oneself in the other."

따라서 우리가 사회적 자유 속 상호주관적 차원의 몇몇 특징들로 향하기 전에, 이 테제를 좀 더 살펴보는 것이 사회적 자유 개념 전체를 개괄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일단  주체가 (어디서든) 다른 주체를 마주하게 되면,  주체의 반성적 행위에 있어 - (도덕적) 자율성이든 자기실현이든 - 그의 주관적 경험은 여기서 끝나게 됩니다.

 주체는 "상호주관적 파트너들의 행위" 통해 "외적 세계 일부를 엿볼 "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특히 모든 제도적 관습 속에서 우리는 서로와 상호 호혜적으로 인정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제 타자의 존재는 단순히 나와 무관한 세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보다, 이 타자의 존재는 한 주체가 자신의 자율적인 목적을 객관적으로 이행할 수 있게 하는, 혹은 이를 방해할 수도 있는 "외적 세계의 한 요소"가 되는데요.

따라서 호네트가 차용한 핵심적인 헤겔적 사고, "Being with oneself in the other"는 다음과 같은 주장이 됩니다:

"한 주체는, 타자가 이 주체의 목적과 욕망 속에서 확인된 자신만의 삶의 기획을 발견할 수 있는 범주까지, 타자의 목적과 욕망 속에서 확인된 자신만의 삶의 기획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외적 세계의 한 요소'인 타자는 나의 모든 자유로운 행위를 승인해줄 수 있는 대상이 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나' 역시 타자의 자유로운 행위를 승인해 줄 수 있는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일단 양쪽의 주체들이 자신들 각각의 목적으로 보완할 필요를 인지하게 되면, 따라서 자신들의 목적을 타자 속에서 확인하게 되면, 단순히 반성적이었던 자유는 상호주관적인 자유"가 됩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타자의 존재는 우리의 욕망과 목적을 충족하기 위한 조건들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각각의 주체는 자유의 실현을 다른 주체들이 나의 목적을 확인하는 조건들에 연결시킴으로써만 달성할 수 있고, 이는 오직 우리를 매개하는 상호주관적 구조들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상호 인정의 모든 제도들은 이제 우리에게 개인의 소극적 자유와 반성적 자유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줍니다.



만일 제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제 삶의 기획을 추구할 수 있는 사적 공간 속에서 자유를 추구하고자 한다면, 법적으로 보장된 주관적 권리를 통해 이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 있는 이 공간은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지요 (소극적 자유).

저는 이 공간에서 저만의 자유로운 행위의 내용물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지금 글을 쓰는 이 행위는 자기 진실성을 기반으로 나의 자기실현의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저는 단순히 생존을 위해 (동물적인 욕구)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반성적 자유).

그러나 저의 자기실현이, 저의 자유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브런치'라는 제도 속에서 제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철학, 인문학, 혹은 우리의 삶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여러분이 계시지 않는다면 저는 글을 계속해서 연재하지 않을 것이고, 저의 자유는 온전히 실현되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저를 통해 각자의 자유를 실현하고 계십니다. 철학, 인문학, 혹은 우리의 삶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글을 읽고 싶은데, 저라는 존재가 (혹은 유사한 주제를 다루는 다른 분들의 존재가) 브런치라는 제도에서 (혹은 다른 배경 속에서) 글을 게시하고 있지 않다면, 여러분의 자유는 온전히 실현되지 않을 테니까요.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진정한 자유 실현을 위해 상호 호혜적으로 의존적이 되며 조건이 됩니다. 우리는 '브런치'를 매개로 상호주관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지요. '브런치' 안에서 저와 여러분은 "Being with oneself in the other"가 됩니다. (사회적 자유).



# 사실 이 통찰력은 ‘상호 인정(mutual recognition)’에 관한 헤겔적 사고의 핵심 내용입니다.

타자의 존재는 한 주체의 목적과 욕망의 실현을 위한 조건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 주체의 자유는 (그리고 자기실현은) 타자의 자유에 있어 (그리고 자기실현에 있어) 조건이 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헤겔의 인정(Recognition)에 관한 탁월함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이지요.


이제 우리는 사회적 자유에 관한 사고에 이르게 되면서, 한 주체의 자유가 타자의 자유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얽힘 속에서 보다 완전한 모습에 이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소극적 자유와 반성적 자유가 모두 사회적 자유 속에서 통합되는 그 완전한 그림 말입니다.


이 사회적 자유에 관한 사고를 통해, 호네트는 정치-사회 철학에서 쉽게 해결되지 못했던 문제, 즉 나의 주관성이 객관성과 조화되는 혹은 양립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언제나 나의 개성이 (특수성-particularity) 우리 사회의 수용 가능성 (보편성-universality)과 대립되는 그런 항구적인 투쟁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나의 자유로운 행위는 언제나 타인의 자유나 외적 조건들과 갈등을 일으켜 왔던 것이지요.

그러나 사회적 자유 속에서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말할 수 있게 해 준 객관 현실 영역 속의 타자의 존재는 이런 특수성이 보편성과 조화되는, 혹은 양립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줍니다.



객관 현실의 영역들은 우리의 목적과 감각을 뒷받침하고 지지해주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영역들을 각자의 개성 발달을 위한 공간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상호주관적 배경은 모든 개인의 자유에 관한 윤곽을 제공해주고, 이 윤곽을 참조하여 우리는 자유로운 행위가 어떻게 이 상호주관적 배경과 조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감각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헤겔적인 용어를 빌리자면, 사회적 자유 개념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와의 일면적인 작용”에 머무르는 것 대신, 타자를 참조하면서 타자 속에서 자신을 인지함으로써 기꺼이 스스로를 (타자를 위해) 제한하게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호네트는 스스로를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 사이에 위치시키게 됩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가 좋은 삶을 추구하는 행위를 도덕적 관점에 놓게 될 때, 그는 타자의 안녕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책임 및 의무가 얼마나 고려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불분명합니다.

칸트가 보편적 행위를 도덕적 관점에 놓게 될 때, 그는 우리가 왜 굳이 그러한 보편주의적 도덕 개념을 실천하고 따라야 하는지에 관한 동기적인 설명을 충분히 내놓지 못합니다.

그러나 호네트는 헤겔의 사회적 자유 개념을 차용하여 우리를 상호주관적 인정의 관계들과 이 인정의 제도들로 인도하면서, 이 둘 간의 대립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Being with oneself in the other"라는 테제는 우리가 객관 현실 영역 속에서 정체성 형성의 상호주관적 조건들을 서로 보장할 때 요구되는 도덕적 관점을 그 자체로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테제 속에서 우리는 타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책임 및 의무, 그리고 보편주의적인 도덕적 행위를 위한 동기 모두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Being with oneself in the other"라는 테제 주변을 선회하는 사회적 자유 속 상호주관적 차원은 어떤 특징들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이 특징들을 통해 어떤 정의의 원리를 도출해 낼 수 있을까요? 이렇게 도출된 정의의 원리들은 우리 사회를 진단하고 분석하는 도구를 제공해 줄 수 있을까요?


> 다음회에 (순차적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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