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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i generis Jul 22. 2022

Ch 17. 우리의 규범적 재구성(IV): 시장 경제

도덕적으로 새겨져 있는 시장

국내에서 아직 번역되지 않는 악셀 호네트(Axel Honneth)의 "자유의 권리(Freedom's Right)"를 해설하는 글입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을 위해 제가 가장 먼저 "자유의 권리"를 연재하는 이유는 이 작업 안에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분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도구가 담겨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꼭!! Chapter 1. 부터 읽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Prologue도 있긴 합니다). 감사합니다 :)


Chapter 16. 에서 살펴본 것처럼, 호네트는 우리의 의도나 목적이 타자의 의도나 목적 속에서 형식화되고 실제 실현되는 진정한 자유의 영역을 규범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먼저 사적 관계를 소개하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호네트에게 (i) 우정, (ii) (성적-sexual) 친밀성, 그리고 (iii) 가족으로 구성된 사적 관계의 영역은 우리가 서로를 참조하여 '나'를 실현할 수 있게 해주는 사회적 자유를 대표하는 공간입니다.

이 공간 속에서 우리의 특수성이 비로소 (사회) 보편성과 통합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도덕적 배려를 잊지 않으면서도, 단순한 의무의 당위성이 지배적이지 않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며 우리의 삶에서 실제적인 흔적들을 남기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이 영역에서 발생하는 "규범적 원천들의 잉여"는 사적 영역에서 독특한 도덕적 문법을 형성하는데요.

즉 사적 관계에서, 각 주체는 사회화 과정에서 '나'의 고유한 정체성이 어디까지 수용되며 형성될 수 있는가에 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고, 이 질문은 결과적으로 기존의 관습 개정이나, 유연성 확대를 위한 동기로써 작용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사회적 자유가 우리에게 보증한 자유의 내용물을 들여다볼 수 있고, 이 내용물을 확장해 내고자 시도해 볼 수 있으며, 반대로 이 내용물이 그 안에 새겨진 규범적 약속과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사회를 비판적으로 재고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자유가 실현되는 영역의 규범적 재구성에서 호네트가 소개하는 두 번째 영역은 바로 시장 경제 (Market Economy) 영역입니다.

# 사적 영역과 마찬가지로 꽤나 긴 내용을 압축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난처함을 우선 표하면서, 호네트의 시장 경제에 관한 정확한 진단과 분석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그의 저작들을 확인해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 자유의 권리에서 호네트가 사회적 자유의 영역으로서 분석한 시장 경제 영역은 낸시 프래이저(Nancy Fraser)와의 논쟁에서 (참조: Fraser and Honneth, Redistribution or Recognition?, 2003 / 국내에서는 '분배냐, 인정이냐?'라는 제목으로 2014년 번역되었습니다) 그의 입장의 연장 선상이고, 후속작 The Idea of Socialism (독일어판 2015, 영문판 2017)으로 이어집니다 (The Idea of Socialism은 '사회주의 재발명'이라는 제목으로 2016년 번역되었습니다).

호네트에게도, 당연히 현재의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는 서로가 기꺼이 스스로를 제한하며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사회적 자유의 영역으로 이해될 수 없습니다.

즉 오늘날의 시장 경제는 (특히 신자유주의의 물결과 함께)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그리고 주체들이 서로의 자유를 자신들의 자유의 조건으로 간주할 수 있게 하는 방식에서 서로 얽혀 있는 역할 의무들 속에 고정되어 있지 않은" 것이지요 (악셀 호네트, 자유의 권리, 176).

따라서 이 영역은 사회적 자유를 대표하는 '관계적 제도'로 구성되어 있지 않으며, "이 체제는 상응하는 역할 의무들이 어떤 타당성이나 설득력을 도출해 낼 수 있는 상호 인정의 선행하는 관계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Ibid.).



그럼에도 호네트는 여러 전임자들의 연구를 통해 시장 경제 체제에도 사회적 자유가 실현되는 '관계적 제도'가 새겨져 있음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즉 호네트는 시장 경제가 개인의 자기 이익적인 욕구를 충족하면서도, 서로 협력하는 방식에서 각자의 목적이 실현되는 규범적 관계들을 품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지요.

지금은 잊혀진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 속 이 규범적 관계들을 소생시킴으로써, 호네트는 우리의 '소비 영역'이나 '노동 시장'을 사회적 자유를 보증하는 역할을 하는 제도적 기재들의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호네트에게, 만일 우리가 시장을 사회적 자유가 실현되는 장소로 이해한다면, 즉 "시장을 선행하는 도덕적 규칙들의 선행하는 층"을 고려한다면, 시장은 단순히 자기 이익적인 개인 간의 거래만 발생하는 도구적인 장소가 아닌, 상호 호혜적 인정의 규범들에 토대를 둔, "서로를 협력적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이해하는 장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Ibid., 181-182).

# 이 길고 지난한 과정을 하나의 Chapter에 모두 옮겨 담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아래 내용들을 해당 Section에서 호네트가 제시했던 주요한 사고의 흐름을 좇아 시장 경제에 관한 호네트의 규범적 재구성을 간략하게 스케치 한 정도로만 이해해 주실 것을 재차 당부드리는 바입니다.


큰 맥락에서, 호네트가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 역시 사회적 자유가 실현되는 영역으로 간주할 때, 그가 한바탕 다툼을 벌여야 할 상대는 한 편으로, 자유주의자와 자유지상주의자들이고, 다른 한 편으로, 맑스주의자들입니다.

자유주의자나(Liberals) 자유지상주의자들은(Libertarians) 시장이 개인의 자유를 보증하는 바람직한 제도적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에게, 자본주의는 자기 이익이나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조정되면서," 우리를 봉건 영주의 지배나 억압적인 도덕적 혹은 종교적 관습들로부터 해방"시켰고, 각자의 배경에 관계없이 자유롭고 동등하게 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한, 인류가 고안해 낸 가장 효율적인 재화의 분배 방식입니다 (Dagmar Wilhelm, Axel Honneth: Reconceiving Social Philosophy, 142). 

반면 맑스주의자들에게 시장은 "개인의 자유를 향상하기 위한 그 서약에서 어떤 좋음도 만들 수 없다는 비판적 테제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악셀 호네트, 자유의 권리, 180).

이들이 보기에, 시장은 노동자들에게 어떤 선택도 남기지 않은 채 착취와 노동력 저하를 동반하는 "외관상 자유로운 노동 계약"에 동의하도록 강요할 뿐입니다 (Ibid., 181).



그러나, 호네트는 이 두 진영 모두 시장이 품고 있는 도덕적으로 새겨진 규범적 원리들을 올바로 평가하고 분석하는데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규범적 원리들을 간과한 채 이들은 시장 경제가 약속한 소극적 자유의 관점에서만 이 영역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지요.

이제 호네트에게 중요한 문제는 시장이 단순히 자기 이익적인 행위자들의 (단순히 법으로 매개된 혹은 조정된) 전략적 행위들로만 구성된 것이 아닌, 도덕적으로 새겨진 규범적 원리들을 품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일이 됩니다.

즉 호네트의 과업은 시장 경제 역시 한 개인의 자기실현이 (혹은 이익 실현이) 다른 참여자들의 자기실현 (혹은 이익 실현)에 의존하고, 반대로 다른 참여자들의 자기실현의 (혹은 이익 실현의) 조건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영역임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지요.

호네트와 두 진영 간의(자유주의자/자유지상주의자, 그리고 맑스주의자) 대립은 결국 시장이 도덕적 색채를 품고 있는가 여부를 따져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호네트의 입장은 우리가 "시장을 사회적 통합의 장소로 이해한다면, 정의를 제도화하기 위해 시장의 도덕적 내용과 내재적 잠재력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것이 가능하다" 입니다 (Browne, Critical Social Theory, Ch 6). 



호네트에게 이 시장 경제 속에 새겨진 도덕적 질서는, 혹은 일종의 '도덕적 경제주의(Moral Economism)'는 특히 아담 스미스 (Adam Smith), 헤겔 (Hegel)과 뒤르켐 (Durkheim), 그리고 칼 폴라니 (Karl Polanyi)와 탈콧 파슨스(Talcott Parsons)의 작업을 참조할 때 두드러집니다. 

그리고 그 시초부터 자본주의의 대략적인 300년의 역사 속에서, (i) 소비 영역에서, 그리고 (ii) 노동 시장에서 시장을 매개로 한 상호작용의 영역의 확장과 발전, 변화를 추적하면서, 호네트는 시장 경제가 "사회적 협력 체계로의 공헌"을 통해 "개인의 실제 성취와 관련된 자긍심의(self-esteem) 사회적 형태를 촉진"해 왔다는 점을 규범적으로 재구성합니다 (Zurn, Axel Honneth, 176).

# 이 개인의 자긍심에 관한 개념은 호네트가 '인정 투쟁' 이후 일관되게 주장해왔던, 오직 상호 간 인정 관계를 통해서만 성취할 수 있는 좋은 삶을 위한 세 가지 조건들 중 하나입니다 (사랑을 통한 자신감, 법적 권리를 통한 자기 존중, 그리고 연대성을 통한 자긍심).


먼저, 호네트는 우리에게 시장을 자기중심적 이익을 추구하는 개개인이 서로 경쟁하는 체제처럼 보이게 했던 아담 스미스의 저작 '국부론 (The Wealth of Nations)' 속 '보이지 않는 손 (the invisible hand)' 이전에, 스미스의 또 다른 저서 '도덕 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에 주목할 것을 요구합니다.

# 사실 이 지점은 특히나 대다수 우리들이 스미스에 대해 오독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호네트는 스미스가 '도덕 감정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개념에 관한 예비 단계나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호네트에 따르면, "국부론에서 스미스가 순수하게 자기 이익적인 개개인들 사이 교환의 수단을 통한 보편적 이익의 가능성에 관해 말하는 것은, (결국) 주체들이 사전에 서로를 향해 호의적이고 신뢰하는 태도를 취할 때 만이 실제적이고 실현 가능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만 그 정당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호네트, 자유의 권리, 182).

즉 호네트에게, 아담 스미스의 "시장 경제의 축복에 대한 경제 분석"은 "도덕적 공감의 요구 조건들"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올바르게 독해될 수 있고,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지요 (Ibid., 185).

이는 바꾸어 말하면, 현대 자본주의 시장 체계는 스미스의 "도덕적 공감의 요구 조건들"을 간과한 채, '보이지 않는 손'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호네트는 헤겔과 뒤르켐이, 둘 간의 약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시장 경제에 관한 기저의 동일한 관점을 공유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둘은 시장 경제의 새로운 체제가 개인들이 "계약 속에 놓인 조건들을 단순히 존중하는 것 이상을 수행하도록 의무화하는 연대성에 관한 선행하는 감각이 없다면 시장이 제공한 기회들은 부정한 행위를 하고, 부를 축적하며, 타자를 착취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습니다" (Ibid., 182).

즉, 헤겔과 뒤르켐에게, 시장에서 비계약적인, 그럼에도 구속력 있는 규칙들의 특정한 층이 고려되지 않는 한, 시장은 그 역할이나 수행에 있어 불완전한 채로 남게 되는 것이지요.

헤겔은 하층 계급, 노동의 기계화, 과시적인 풍요에 관한 서술에서, 그리고 뒤르켐은 사회의 아노미 상태에 관한 진단에서, 시장이 상호 존중의 규칙들을 위반할 때 나타나는 현상들을 관찰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헤겔은 시장을 "윤리적 틀" 속에 새겨 넣었고, 뒤르켐은 경제적 계약을 "계약 이전의 연대성의 조건"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Ibid., 185).



20세기에 들어 헤겔과 뒤르켐과 유사한 진영에 놓일 수 있는, 또 그 성취에 있어 두드러진 두 명의 학자들로 (물론 시장의 자본주의 체제에 관한 이들의 묘사는 매우 상이하긴 합니다) 호네트는 칼 폴라니와 탈콧 파슨스를 인용합니다.


'The Great Transformation' (국내 번역판은 '거대한 전환')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폴라니는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연결된 시장이 모든 정치적, 규범적 질서를 잃게 되면 발생하는 생활 세계의 격변과 구성원들의 집합적 불안감을 입증하고자 합니다.

폴라니에 따르면, "규제되지 않은 노동 시장은 개개인의 역량을 약화시키고 침해"합니다. 

또한 자본이 "수요와 공급의 제약 없는 경쟁에 맡겨진다면, 통제 불가능한 금융 투기"가 발생하게 되고, 규제가 완화되거나 철폐된 시장에서 토지가 하나의 상품이 된다면, "자연의 약탈과 환경오염은 즉각적인 결과"로 나타나게 됩니다 (Ibid., 186; Polanyi, The Great Transformation, Ch 6).

따라서 폴라니는 시장이 연대성으로 공유된 규범들의 형태 속에서 계약 이전의 도덕적 규칙들에서 이탈하게 되면, 따라서 '아노미' 상태로 고통받게 되면, 결과적으로 시장 참여자들의 비자발성이 국가의 도덕적 개입을 요구하는 사회 운동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다소 간 낯선 파슨스는, 자본주의 시장 체제를 다루는 데 있어 훨씬 유보적이긴 해도,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현대 경제 체제의 사회적 통합은 비경제적, 도덕적 의무가 제도화될 때 만이 (온전히) 충족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Ibid., 187).

특히 파슨스는 도덕적 경제주의에 관한 상당수 본인의 사고들을 시장 영역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최소화하는 제도들의 분석에 할애합니다.

대표적으로 그는 노동 계약 속에서 계약 이전의, 실제 존재하는 도덕적 구성 요소를 식별하고, 우리의 '직업적 역할(occupational roles)'이 가지는 사회화 과정 속에서 (노동자와 기업가 모두를 포함한) 각자의 의무를 강조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 질서가 비경제적인, 도덕적인 의무를 수행할 수 있다면, 암묵적이거나 명시적인 저항 없이 스스로를 재생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Ibid., 189).



헤겔, 뒤르켐, 폴라니, 파슨스의 작업들을 따라 이후에도 호네트는 최근 자본주의 시장 체제에 대한 대안을 제안했던 몇몇 학자들은 인용하며,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릅니다:

" 경제 시장이 (우리) 주변의 자유주의적-민주적 사회가 제공하는 윤리적 가치 지평에서 고립되어서는 안된다... 시장의 경쟁 조건과 생활 세계의 규범 사이의 본질적인 연관성은 시장 경쟁이 이러한 규범들을 고려하는 조건 속에서만 적법하고 정당화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Ibid., 190-191).

호네트에게, 우리가 시장을 단지 법적으로 허용되는 소극적 자유의 조건만을 충족하는 영역으로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 체제가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것을 허용할 시장 이전의 규범과 가치를, 즉 시장은 항상 연대성의 사회적 관계 속에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될 것입니다.

특히 헤겔과 뒤르켐을 따라, 호네트는 "시장에서의 경쟁 조건들과 생활세계에서의 규범들 사이의 내적 연결"을 강조합니다 (Ibid., 191).

시장과 생활세계 간 이 내적 연결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시장이 단순히 '규범에서 자유로운 체제'로 이해된다면, 다시 말해서, "시장이 단지 소극적 자유에 관해 법적으로 수용된 조건들만 충족"하는 영역으로 남게 된다면, "우리는 이 체제의 사회적 수용성이 시장 이전의 규범들과 가치들의 충족에 의존하는 정도를 완전히 시야에서 놓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Ibid.).

호네트가 보기에, "시장에서의 상호작용을 적법하고 이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이익을 자기중심적으로 추구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아닌, 이러한 개개인의 자기 이익의 익명의 통합이 누군가의 자유가 타인의 자유의 조건이 될 수 있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Ibid., 192).

이를 호네트의 인정적 관점에서 표현해 본다면, 시장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기 전에, 서로를 협력적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장 경제에 대한 이 결론과 함께, 호네트는 시장이 도덕적으로 새겨져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18세기부터 지속된 시장 영역의 도덕적 규범과 관습들의 제도화에 있어 변화를 추적합니다.

호네트에게, 자본주의 시장 영역의 규범적 진보는 앞서 언급한 '규범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호 간 의사소통의 제도들'이 성공적으로 확립될 때마다 분명히 모습을 드러냈고, 반대로 시장의 자기 생산적인 힘이나 공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이 규범적 가치와 관련된 모든 제도화가 시간이 지나면서 부재한 상태로 남아있거나 폐기되는 곳 어디서든 시장의 규범적 오개발은(misdevelopments)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Ibid., 197).

시장 참여자들이 이 영역에서 자기 이익의 추구에 선행하는 상호 간 인정, 연대성, 서로의 자유에 대한 상호 의존성을 인식하고 형성해 온 제도들을 추적해 갈 때, 호네트가 규범적 재구성을 시도하는 영역은 (i) 소비 영역과 (The Sphere of Consumption) (ii) 노동 시장 (The Labour Market)입니다.

그리고 시장 경제를 사회적 자유가 실현되는 장소에 위치시키기 위해, 호네트가 주로 초점을 맞춘 역사적 사실은 소비 영역과 노동 시장에서 발생해왔던 규범적 기대에 맞선 다양한 투쟁들입니다. 



첫째, 역사적으로 소비 영역은 본래 이 영역이 가진 이상 자체만을 현실화하지 않았습니다.

소비 영역은 필요한 재화를 위한 개개인의 욕망을 생산자가 이 재화를 생산하고 거래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우리는 (특히 서구의 역사 속에서) 소비 영역에서 발생했던 다양한 오개발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8세기 개개인이 탐욕적이고 순전히 전략적인 경향을 택하게 유도했던 시장; 19세기 거대한 빈곤화와 무정부적인, 극심한 경기 변동의 순환을 양산했던 시장; 그리고 20세기 완전히 사적인 그리고 경쟁적인 전 세계 자본주의적 개인주의와 구매 이데올로기의 성장 등 (Zurn, Axel Honneth, 178).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호네트는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국가 주도 아래 시장에 맞선 다양한 제도적 규제가 시행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호네트에게, 이러한 국가 정책은 대부분 "결연한 사회 운동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기본 상품들을 위한 시장 가격의 국가적 규제 달성을 위한, 그리고 농산물의 국가 지원을 위한 19세기 Bread Riots와 소비자 보이콧 운동이 그 사례입니다.

그리고 20세기 초반부터 급속히 보급된 소비자 협동조합의 증가와 보급은 이 투쟁들이 제도화된 사례입니다.

수요와 공급으로만 설명되지 않는 재화의 유동성과 가격에 맞서 소비자들은 대규모 구매 협동조합으로 동맹하여 이에 맞섰던 것이지요.

이러한 투쟁과 협동조합의 등장을 호네트는 나의 자유를 타자의 자유 속에서 실현하기 위한, 즉 상호 호혜적 인정을 기반으로 나의 목적을 실현하고자 했던 시도로 독해합니다.

소비자 집단이 함께 모여, 서로의 이익을 논의하고, 제품을 대량 구매하며, 이를 공정의 원리에 따라 분배하는 소비자 협동조합은 실천적으로 개별 소비자를 엄혹한 시장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해 왔습니다.

시장에 맞선 사회적 운동과 소비자 협동조합의 등장은 "시장이 그 참여자들에 의해 순전히 개인주의적 영역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닌, 상호 호혜적으로 가능한 개인의 자유의 영역, 보편적 선을 제공하는 사회적 협력의 영역으로 이해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Zurn, Axel Honneth, 179).

이런 의미에서 호네트에게 이 협동조합은 '도덕적 사회화'의 장소인 것입니다 (Dagmar Wilhelm, Axel Honneth: Reconceiving Social Philosophy, 145).



두 번째, 호네트에게 노동 시장은 개인의 욕구 충족 이상으로, 타인들로부터 인정을 통한 자긍심을 성취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노동 시장은 "우리가 노동을 통해 개개인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좋음으로써 가치 있는 공헌을 인정하는, 따라서 타인들과 자신들의 자기실현을 가능케 하는 상호 간 인정의 영역"인 것이지요 (Dagmar Wilhelm, Axel Honneth: Reconceiving Social Philosophy, 146).

그러나, 소비 영역과 마찬가지로, 노동 시장의 현실은 언제나 사회적 자유를 적극적으로 실현해 오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자긍심을 도모할 수 있는 직업에 접근조차 불가능했던 하층민들, 19세기와 20세기까지 임금 노동자들이라는 분명히 구분되는 계급의식의 증가, 그리고 20세기 완전히 기계화된 산업 노동의 공허함과 무의미함 등등 (Zurn, Axel Honneth, 179).

국가는 마찬가지로 노동의 인간화에 대한 요구들에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예를 들어, 최저 임금, 실업 급여, 노사 간 협력적 상호 결정의 권리, 각종 직업 교육과 이와 관련된 예산 등 국가는 노동법을 통해 도덕적 경제주의를 위한 노력을 등한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변화들은, 호네트에게, 노동 시장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투쟁과 요구의 산물입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노동 시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노력 속에 제도화될 수 있었습니다.

이 조합을 통해 우리는 집합적 이익을 위해, 그리고 공동의 의사 결정을 위해, 노동자-관리자-기업가 사이에서 "공유된 도덕적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협력적인 결정을 도모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소비 영역과 노동 시장에서 발생했던 투쟁의 역사와 관련된 제도화를 통해 호네트는 시장 경제 역시 여기게 관여한 모든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사회적 협력의 형태가 가능한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소비 영역은 "개인의 욕구가 보편적 선과 일치하는 방식에서 충족되는 한 도덕적으로 가치"가 있고, 노동 영역은 이것이 "자긍심에 기반한 상호 인정을 통해 자기실현을 허용하는 한 가치"가 있습니다 (Zurn, Axel Honneth, 181).

그리고 시장은 이러한 도덕적 조건들에 따라 구성원들의 요구에 맞게 변화해 왔고, 결코 규범에서 자유로운 수요와 공급의 원리만 작동하는 영역으로 스스로를 포장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호네트는 시장이 역사적으로 다양한 투쟁들을 통해 그 규범적 약속을 재구성해 왔음에도,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사회적 자유의 영역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규범적 내용의 진보적 실현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현재의 시장에 대한 진단으로 향할 때, 호네트는 재차 오개발(misdevelopments)이라는 이름을 붙여, 이것이 "궁극적으로 사회적 자유를 목표로 하는 사회 개혁의 단절된, 그렇지만 쉽게 인지 가능한 과정'의 파열을 나타낸다고 주장합니다 (호네트, 자유의 권리, 250).

그리고 호네트에게 이 사회 개혁은 오직 사회적 자유의 점진적 실현을 통해서만 적절히 이해되고 달성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시장 경제를 사회적 자유의 영역으로 이해하는 호네트의 분석에는 지금까지 수많은 반론이 있어왔고,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각 반론들 역시 각자의 타당한 이유들로, 시장 경제는 단순히 사회적 자유의 영역이 될 수 없음을 증명합니다.

# 호네트 전공자로서, 개인적 소회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또 이야기가 길어지게 되어서...).

그럼에도 저는 완전히 실현 불가능하고, 불완전한 형태라 할지라도, 호네트의 입장처럼, 시장 경제가 도덕적으로 새겨져 있다면, 그리고 이 '도덕적 새겨짐'을 구성원들이 시장 작동 원리의 전제 조건으로서 선험적으로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다면, 시장을 향한 우리의 사회적 자유의 이해에 있어 각자의 자기중심적이고 전략적인 욕구에 맞서 가치 있는 참조점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의 시장 경제는, 그리고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대다수 경제 행위자들인 우리는 시장이 많은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규범이나 도덕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영역이 아님을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호네트가 시장 경제의 규범적 재구성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역사적으로 구성원들의 요구에 맞게 스스로를 변화시켜 왔습니다.

여기서 결코 시장은 홀로 독자적으로 멀리 떨어져서 자유롭게 행동하지 않았음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 다음 회에서는 호네트의 '자유의 권리' 해설 마지막 편으로, 민주적 의지 형성에 관한 그의 규범적 재구성을 소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전 18화 Ch 16. 우리의 규범적 재구성(III): 사적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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