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쯤 포기한 상태로, 소파에 누워있었다. 이제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먹구름이 잔뜩 껴 우중충한 날씨에 기분도 한껏 다운되는 듯했다. 그러던 중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어제 뜻깊은 시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지도 경험이 처음이시기에 첫 수업부터 완벽히 해낼 수 없다는 걸 충분히 이해합니다. 수업을 하며 앞으로 겪게 될 많은 과정들을 통해 선생님과 회원 모두가 성장하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선생님, 회원들 모두가 함께 기다려주고 응원해 주는 것이 이 수업이 가진 진정한 의미가 될 거 같습니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안될 거라는 내 예상은 깨졌다. 불완전함을 이해하고 존중해 주시는 좋은 분을 만나서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6명의 선생님들과 함께, '요가'와 '명상'과 '글쓰기' 수업이 개시될 예정이었다. '슬로우앤이지'라는 공간은 오픈할 준비를 끝마쳤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 수업을 이끌어갈 지도자로서 내가 아직 충분치 않았으니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수많은 실패 경험으로 인해 무대 공포증이 있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얼마나 많은 도전이 있었던가. 사실 스스로 했다기 보단,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상황이 닥치는 바람에 한 것이었지만. 그리고 그 도전들의 결과물은 역시나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부딪히며 점점 무대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가고 있었다. 이제는 너무 긴장하거나 머리가 백지가 되어서 도중에 그만두는 경우는 없었다. 문제는 내가 뿜어내고 있는 이 불편한 긴장감, 경직된 몸짓과 목소리였다. 수업을 듣는 회원은 이것을 다 감지하고, 불편함을 느낄 게 분명했다.
꼴 보기 싫은 사람의 사진을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밀어 넣듯, 무대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이 느껴질 때마다 다시 안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그리고 그런 방식은 언제나 늘 실패했다.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떨고 있는 나를 더 괴롭혔다. 지금은 다른 방식을 취해야 할 때였다. 결정을 내렸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에 충실하리라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감정에 충실하다니. 만약 지금 두려움을 느낀다면, 두려움에 떨며 도망이나 치라는 말인가. 나는 이 감정에 충실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감정에 휩쓸려, 감정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감정이 해소될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다. 억압과 회피가 아니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감정이 자연스레 해소된다. 그러나 머리로는 알면서도, 부정적 감정이 올라오면 반사적으로 억압과 회피를 선택하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어쩌면 수업을 하는 경험이 이 습관적 패턴을 바꿔줄 기회가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문득 궁금해졌다. 남들 앞에 섰을 때 느껴지는 불안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삶은 또 하나의 선물을 던져주고 있었다. 오랫동안 달고 살아온 이 공포를 해방시킬 기회를. 지금 이 순간 나는 해방의 문턱 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