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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Apr 21. 2019

91년생이 <90년생이 온다>에 살짝 덧붙여보자면

임홍택의  <90년생이 온다>를 읽고

아슬아슬 턱걸이로 90년대생이라 불릴 수 있는 91년생이라 다행이다. 이해가 안 됐다거나 몰랐던 생소한 내용 같은 건 하나도 없이 이 책을 술술 읽어낼 수 있었다. 90년대생들이 '별난 요즘 애들'로 묘사되는 것 같아 조금 씁쓸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인 내용에 공감했다. 실제로 회사 조직에 속해 일하고 있고, 다양한 콘텐츠와 제품·서비스를 적극 소비하는 요즘 20대로서 느끼는 몇 가지를 덧붙여보고자 적어본다.




1.

90년대생은 재미없으면 바로 외면해버린다지만, 여기서 말하는 '재미'란 병맛이나 개드립, 줄임말, 유행어의 남발이 결코 아니다. 10대 20대가 그런 B급 감성을 좋아하고 자신들만의 언어를 즐겨 쓰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자기들끼리 공유하고 공감할 때가 재미있다는 거지, 어른들이 따라 했을 때도 재미있다는 게 아닐 거다.


'이렇게 하면 젊은 애들이 좋아하겠지?' 해서 성공한 케이스는 거의 본 적이 없다. 급식체가 대세라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급식체를 때려 넣은 광고가 실패한 이유도 분명하다. 아마도 광고를 기획한 사람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레 급식체를 체득한 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학습했을 확률이 높다. 어떤 맥락에서 써야 위트 있고 센스 있는지를 절대 알 수 없었을 테다. 


2.

90년대생이 간단하고 편리한 걸 좋아한다고 해서, 단편적인 정보나 재미만을 취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의 삶을 크게 바꿔놓은 신문물 스마트폰. 이전 세대들은 성인이 된 후 스마트폰을 접했고, 이후 세대들은 처음부터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90년대생들은 청소년기나 20대 초반, 아직 가치관이나 삶의 양식이 온전히 정립되지 않았을 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스마트폰으로 갈아탔다. 누구보다 빨리 적응했지만, 여전히 스마트폰이 없던 이전의 삶을 기억하고 있는 세대다. 2000년대생들처럼 인스턴트적인 소비 방식에 100% 최적화된 세대는 아니다.


그래서 90년대생은 혼란스럽다. 깊이 있는 정보를 탐색하고 싶을 때도 있는데 가진 건 스마트폰이고, 주로 쓰는 앱은 SNS와 유튜브인 거다. 내가 원하는 알맹이와 그것을 얻기 위한 도구의 부조화를 종종 느낀다. (아 물론, 내가 99년생이 아닌 91년생이라 그렇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다.) 간편하고 젊은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정서적으로나 지적으로 깊이 있는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는 비즈니스에 대한 니즈가 점점 커질 것 같다.


3.

90년대생은 비합리적인 조직 문화와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지금 가장 열심히 일할 준비가 되어있는 세대임에는 틀림없다. 회사나 상사에 충성할 생각은 없지만 그것과 업무 성과는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다. 개인으로서 일을 더 잘하고 싶고, 성장하고 싶어 하는 건 다 똑같다.


모든 조직에 통용될 수 있는 얘기는 아니겠지만, 1020 세대를 타겟으로 하는 비즈니스거나, 90년대생과 함께 일하는 것에 고민이 있는 조직이라면, 가능한 선에서 팀 내 90년대생을 한번 밑고 일을 맡겨보는 과감한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시켜서 억지로 하는 일, 매일 반복되는 일에 싫증을 느끼지만, 자신이 주도적으로 찾아서 하는 일에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한편, 나에게도 머지않은 미래가 슬슬 두려워지기도 했다. 언젠가 2000년대생 신입사원들이 들어오고, 그들이 소비 시장의 핵심이 될 날이 올 테다. 심지어 앞자리 숫자부터 다른 1990년대생과 2000년대생의 간극은 또 얼마나 클까. 그때쯤이면 또 <2000년생이 온다> 같은 지침서가 나오겠지. 노잼 꼰대가 되기는 싫은데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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