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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는 여행'에 대하여

<당신의 여행은 몇 리터인가요> 프롤로그

by 이리터
안녕 날 소개하지
이름 이리터, 직업은 츄레블러


내 이름은 이리터


건강을 위해 매일 물 2L씩 마시리라 다짐하며 지은 필명.

현실은 매일 아침과 점심 아메리카노 세 잔으로 겨우 깨어있고, 주말엔 맥주+a로 충전하며 버티는 흔한 3년 차 직장인. 여행만 떠나면 그녀만의 여섯 번째 감각 '목 넘김'이 꿈틀댄다는 걸 깨달은 후 가끔 "마시러" 세계 곳곳을 다닌다.



마시는 행위가 여행에 미치는 영향


하나. 추운 비바람이 몰아치던 최악의 날씨, 땅만 보고 걷다가 잠시 비를 피하려 들어간 카페에서 달달한 한 잔의 카페 모카에 몸이 녹아버린 경험. '아, 살았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보니 주변 풍경이 보이더라.


둘. 너무 익숙해서 더 이상 감흥이 없던 열 번째 제주 바다, 맥주 한잔으로 살짝 알딸딸해져 나오니 마침 해지는 타이밍. 수 십 번도 더 봤을 노을 지는 바다가 한 편의 아이맥스 영화를 보는 듯한 마법이 펼쳐졌다. 역시, 알코올의 힘을 빌려 바라보는 여행지는 또 다른 멋이 있거든.


셋. 꼭 그런 극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잠깐 자리 잡고 앉아 한 잔을 음미하는 시간, 괜히 지나가는 사람 구경도 하고, 멍 때리기도 하고.. 사실 온갖 생각을 다 하게 되지 않나.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는 여행 일정 한가운데 그런 여유가 참 소중하다. 그 잠깐의 커피 브레이크가 당신의 여행을 어떻게든 바꿔놓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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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마시는 여행'


누구는 맛있는 걸 먹으러 식도락 여행을 다니고, 누구는 자신의 취향을 찾아 취미 여행을 떠난다. 활동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액티비티 여행, 뭐니 뭐니 해도 소비가 최고인 사람들은 작정하고 쇼핑 여행을 간다.


왜 '마시는 여행'은 없을까? 물론 커피 여행, 브루어리/와이너리 투어 등이 있지만 어쩐지 나 같은 사람이 넘보면 안 되는 전문가의 영역 같지 않은가. 고백하자면 나는 음료에 대한 전문성은 없다. 어디 원두가 좋고, 로스팅은 어떻게 해야 하고.. 잘 모른다. 내 몸이 하루 일과 시작 전 따뜻한 아메리카노, 점심 먹고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필요로 한다는 건 안다. 맥주를 그렇게나 마셔놓고 아직도 뭐가 상면 발효고, 뭐가 하면 발효인지 헷갈린다. 속이 답답해서 들이키고 싶을 땐 라거, 맥주 맛을 음미하고 싶을 땐 필스너, 더 깊은 맛이 필요할 땐 스타우트를 주문하면 된다는 것만 기억한다.


나 그리고 나와 뜻이 맞는 우리의 여행만큼은 그런 지식과 정보보다는 개인의 잡념과 감정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마시는 여행'은 꽤 멋진 여행이 아닐까. 무언가를 마시면서 들었던 소소한 잡생각들, 시간이 지나면 증발되어버리기 쉬운 그 느낌들. 감각과 연결 지어 머릿속에 저장하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그때 내가 들이킨 그 맛을 떠올리다 보면 꽤 많은 것들이 함께 떠오른다. 그렇게 여행의 추억을 간직하면 된다.


고오급 원두커피든, 캔커피든, 자판기 커피든... 무엇이든 좋다. 비워낸 잔에 여행에서의 잡념과 감정을 채워 담으러, 마시러 떠나보자.



당신의 여행은 몇 리터인가요?


이 매거진에는 지난 여행에서 마셔온 수 리터의 음료들을 떠올리며 생맥주가 유독 시원했던, 아메리카노가 유난히 씁쓸했던.. 그런 순간들의 분위기와 생각, 감정을 담아본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여행도 때로는 포근하고, 때로는 톡 쏘는 맛있는 한 잔으로 기억되길, 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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