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 경주 - 잠실 - 서귀포 - 성수
가끔 마시러 떠납니다. 취향과 분위기 소비를 즐깁니다.
매달 다녀간 카페들을 개인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사진과 함께 짧은 평을 남겨놓습니다. 카페에 대한 감상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방문 목적과 시간대, 주문 메뉴, 날씨, 운 등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 있습니다.
1. 시청 커피앤시가렛
커피와 담배의 조합은 뭐랄까. 나는 모르겠지만 흡연가들에게는 일상 속에서 해방감을 느끼는 잠깐의 짬, 숨통이 트이는 느낌, 그런 걸까. 시청역 건물 17층에 있는 카페 '커피앤시가렛'이 그런 역할을 의도했을 수도 있겠다. 매일 보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유독 이 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바라볼 때, 새삼 생기 넘치고 멋있어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이 공간의 존재의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지.
간단히 한 끼를 때우려고 '하이프로틴 칠리 베이글'을 주문했는데 '단짠느매' 그 자체, 아주 중독성 강한 신기한 맛이었다. 라떼와는 지독히도 안 어울렸지만 맥주랑 같이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겠다. 노을 지는 저녁에 또 한 번 가봐야겠다.
2. 광화문 펠트커피
딱 깔끔하고 세련돼서 광화문 D타워와 잘 어울리는 느낌. 요즘 펠트커피 원두를 쓰는 카페가 많아서 새로울 건 없었지만 역시나 펠트커피는 맛있다. 나는 무조건 클래식 블렌드로.
3. 경주 고도커피바
경주 황리단길에 가보고 싶은 카페가 너무 많았는데 가족여행으로 가는 터라 딱 한 군데만 정해야 했다. 경주까지 왔으니 한옥 느낌이 나면서도, 촌스럽지 않은 멋진 공간이 어딜까 생각해봤을 때 떠오르는 곳은 단연 이곳. 한옥도 힙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기와지붕 서까래에 칸딘스키 포스터가 이렇게 잘 어울릴 일인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사람들이었다. 찐 힙스터 같아 보이는 사장님들이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려주시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들어오는 손님들도 다들 멋을 아는 사람들 같아 보였다. 역시 공간을 어떤 사람들이 채우느냐가 그곳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또 멋진 사람들이 선택한 공간에는 이유가 있다.
4. 잠실 머머
오픈 이래로 쭉 너무나도 핫한 '핫플'이었기에 쉽게 갈 엄두가 안 났던 곳. 외관부터 바닥, 테이블까지 여기저기 핑크 투성이. 뭐 예쁘긴 한데 약간 멈칫하게 되는 건 있다. 쇼케이스에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쁜 디저트들이 쭉 진열되어 있는데, 그중 내가 주문한 휘낭시에 5pc 세트는 꽤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예쁜 접시에 주니 눈이 즐겁고, 하나하나 맛도 꽤 깊어 입도 즐겁고.
5. 잠실 어나더선데이
사실 갈 생각은 없었는데, 걷다가 너무 더워서 잠깐 시원한 거 마시고 쉬어야겠다 싶어 들린 곳. 매표소 창구같이 생긴 작은 틈 사이로 주문을 하고, 디저트 메뉴로 떡이 있다는 점이 좀 특이한 것 같은데, 사실 그 외에는 특별한 매력을 찾진 못했다. 내가 주문한 카페오레는 너무 싱거웠다. (그럴 걸 알면서 왜 시켰을까.)
6. 잠실 뉴질랜드스토리
제대로 된, 맛있는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 찾아간 곳. '크림마효'라는 닭가슴살 샌드위치를 주문했는데 적당히 크리미하고 느끼해서 맥주와 잘 어울렸다. 다른 메뉴들은 어떤 조합인지 궁금해서 앞으로 몇 번은 더 가볼 곳. 뉴질랜드는 안 가봤지만 이름처럼 뉴질랜드가 연상되는 이국적인 분위기가 제법 풍긴다. 강렬한 포인트 컬러에, 초록색과 잘 어울리는 나무와 라탄 소재, 셀 수 없이 많은 식물, 그리고 군데군데 붙어있는 빈티지 사진들. 소품과 장식이 과한데도 촌스럽지 않다.
7. 서귀포 사계생활
20년 넘게 마을 농협으로 쓰인 건물을 개조해 만든 '로컬 여행자를 위한 콘텐츠 저장소'. 은행 창구, 금고, 서류함 같은 하드웨어는 그대로 두고, 번호표, 통장 모양의 브로셔, 로컬 상품 등의 소프트웨어를 그에 맞게 들이니 이렇게나 멋있는 공간이 되었다. 완전히 다른 용도와 목적으로 재탄생한 공간 개조의 가장 바람직한 예. 1층은 카페 겸 샵, 2층은 코워킹 스페이스, 옥상은 산방산 전망대, 어디 하나 버릴 공간 없이 알차다.
8. 서귀포 불란서식과자점 사계리
사계리까지 내려간 김에 더 가볼 만한 곳 없을까 해서 그냥 지도 보고 꽂혀 찾아간 곳.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르꼬르동 블루 출신의 파티셰가 만드는 디저트 가게인데, 정겨운 돌담과 잔디밭 마당이 있는 지극히 제주스러운 집이라 의외였다. 싱그럽고 따뜻한 제주도 남쪽에서 쏼라쏼라 불어 라디오를 들으며, 제주의 재료로 만든 프랑스 디저트를 맛보는 특이한 경험. 웬만하면 다 맛있었겠지만 특히 내가 고른 한라봉슈, 놀랍도록 맛있었다.
9. 성수 시너리
메뉴가 하나하나 다 너무 예뻐서 사진 찍기 좋은 카페로 유명한 곳. 예쁜 만큼 정성이 들어간 거긴 하겠지만. 쉬림프 아보카도 샌드위치 11000원에 에이드 7000원이라니. 솔직히 양에 비해 가격 너무 세다고 생각했는데, 먹어보니 맛있어서 자존심 상했다. 사실 공간 자체는 심플한데, 개인적으로는 바깥에 정겨운 옛날 아파트 풍경이 보이는 창가 자리에서 한적한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았다.
10. 성수 블루보틀
마침 뚝섬역 지나가다가 이젠 줄 안 서겠지 싶어서 한번 들어가 봤는데. 안에 들어갔다고 끝이 아니라, 지하로 내려가기까지 줄을 서고, 계단에서도 주문하기까지 또 줄을 서야 하는 거였구나. 음료를 받아 나오기까지 딱 30분이 걸렸다. 바리스타들과 직원들이 활기차 보였던 것 빼곤 크게 인상적인 건 없었다. 뉴올리언즈를 마셨는데 맛도 음.. 블루보틀의 커피를 마시고 감동한 건 2012년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따뜻한 라떼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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