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 수서 - 석촌 - 성수 - 송파
가끔 마시러 떠납니다. 취향과 분위기 소비를 즐깁니다.
매달 다녀간 카페들을 개인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사진과 함께 짧은 평을 남겨놓습니다. 카페에 대한 감상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방문 목적과 시간대, 주문 메뉴, 날씨, 운 등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 있습니다.
1. 명동 케이코쇼텐
2년 전에 방문했었는데 그 이후로 가끔 생각나고 그리웠던 곳이라 오랜만에 다시 찾았다. 여기는 진짜 '간지 작살'이라는 말로 밖에 표현이 안 된다. 전체적으로 에스닉한 빈티지 분위기가 물씬 풍기면서 이국적인 멋이 난다. 자세히 살펴보면 가게 안에 있는 가구나 액자, 소품 하나하나가 다 예사롭지 않은데, 이건 빈티지 컨셉을 표방한 게 아니라 진짜 취향이 '찐' 그 자체인 사람의 센스와 정성이라는 게 느껴진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파이어킹. 사장님들이 직접 수집해오신 오리지널 파이어킹 제품을 판매하기도 하고, 주문한 음식과 음료를 파이어킹 그릇과 잔에 담아주시기도 한다. 지난번에 왔을 때 내가 주문한 커피가 영롱한 우윳빛 옥색 잔에 나온 걸 보고 반해서, 태어나 처음으로 그릇 취향을 갖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번에는 식사 겸 카레라이스와 레모네이드 세트를 주문했다. 접시 한가운데 노란 스마일이 방긋 웃고 있는 플레이팅에 취향 저격. 노란색 머그컵도 활짝 웃고 있어서 두 배로 행복해진다. 솔직히 카레는 조금 짰지만 뭐든 귀여우면 다 맛있는 법!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2. 수서 식물관PH
날씨가 참 좋았던 어느 날, 초록초록한 자연을 보러 가고 싶은데 당장 떠날 수가 없어서 찾아간 초록초록한 카페. '식물관'이라는 이름답게 꼭 큼직하고 채광 좋은 식물원 온실 안에서 커피를 마시는 느낌이 든다. 식물원처럼 다양한 식물 보는 재미가 있는 건 아니고, 인물 사진 찍기에 좋은 배경이 되어줄 만한 정도다.
들어가자마자 입장료 1만 원을 무조건 내야 한다. 크게 건물 1층은 화분과 커피 바, 2층은 카페 테이블, 3층은 전시 공간, 4층은 아트샵인 구조인데, 내가 갔을 땐 전시가 없을 때여서 3층은 그냥 텅 비어있었다. 카페만 이용하는데도 1만 원을 내야 한다는 게 조금 허무하기는 했다. 고작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마셨을 뿐인데..
3. 석촌 테이크어샤워
사진으로 봤을 땐 감각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조금 뻔해서 아쉬웠던 카페. 시스템 선반, 루이스폴센 조명, 바우하우스 소품, 디자인 포스터.. 요즘 유행하는 걸 다 모아둬서 트렌디해 보이지만 이곳만의 특색이 무엇인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테이블도 좁고 자리도 불편하고. 사람은 많았지만 딱 인스타 카페, 그 이상의 감흥은 글쎄. 이 카페의 주력 메뉴로 보이는 마카롱은 무난했고, 의외로 기대 안 했던 커피 맛은 좋았다.
4. 성수 큐뮬러스
알만한 사람들에게는 이미 소문난 샌드위치 장인의 가게.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는데 한 번은 가는 길에 갑자기 급한 사정이 생겨 영업을 안 하신다 해서 실패, 또 한 번은 가는 길에 메뉴 공지를 확인해보니 제일 궁금했던 '트러플 핫소스&로스트 치킨'은 안된다고 해서 또 실패. 세 번째 시도만에 겨우 성공이다.
이번에도 치킨은 안된다고 해서 살짝 실망하며 '로스트비프 샌드위치'를 주문했는데, 예쁜 접시에 정갈하게 담아내어 주시는 음식을 보고 바로 감동 모드. 샌드위치 하나 먹는데 고급 레스토랑에 와서 대접받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한 입 맛보고는 깜짝 놀랐다. 뭔데 이렇게까지 맛있는 건지? '이건 샌드위치가 아니라 예술이다'라는 말로 밖에 표현이 안 된다. 특히 소고기가 엄청 야들야들해서 부드러운 식감과 풍부한 맛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었다. 마지막에 상큼하게 토마토 절임으로 입가심까지 하면 완벽.
충격적으로 맛있어서 음식이 가장 기억에 남았지만, 공간 자체도 꽤 매력적이다. 크고 긴 원목 테이블에 손님들이 둘러앉아 자연스럽게 섞이면서도 각자의 음식을 즐길 수 있고, 한쪽은 통유리로 되어있어 스튜디오 같은 옆 공간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다. 고가의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음악도 이곳의 무드를 적절하게 채워준다. 앞으로 성수동에서 약속 잡을 일 있으면 왠지 식사는 무조건 여기서 하게 될 것 같다.
5. 성수 우디집
제대로 뉴트로다. 옛날 가정집의 레트로함과 요즘 인스타에서 핫한 '갬성'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뤘다.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 살던 할머니 댁이랑 비슷해서 살짝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는데, 설령 그런 추억이 없는 사람들도 기억 조작당해서 향수에 젖을 듯한 80~90년대 바이브였다.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가구나 식기, 그리고 메뉴 구성에도 그런 레트로한 무드를 살리려고 많이 신경 쓴 것 같았다. 크림 브륄레 커스터드에 쑥을 넣은 '쑥 브륄레'라는 걸 주문했는데, 작은 항아리 같이 생긴 단지를 퍼먹는 경험이 재미있었다. 이렇게 한국적인 맛이 나는 디저트가 커피와도 잘 어울리는 것도 신기했고.
6. 자양 식스디그리스
믿고 마시는 호주식 스페셜티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곳. 잘못하면 금방 밍밍해지는 아이스 라떼를 주문했는데 잔을 비우는 순간까지 엄청 고소해서 만족스러웠다. 평소에는 거의 아메리카노를 시키는데, 개인적으로 호주식 커피는 우유가 들어간 white 메뉴를 골라야 그 진가가 발휘되는 것 같다.
커피 외 다른 메뉴는 없고, 잠깐 앉아서 한 잔 후딱 마시고 일어나야 할 것 같은 작은 공간이라 카페보다는 커피 바 또는 쇼룸 개념에 가깝다. 마침 내가 방문했을 땐 한 팀은 안에, 한 팀은 밖에 앉아있으니 자리가 없더라. 이제 날씨도 따뜻해졌으니,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 테이크 아웃해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뚝섬 한강공원을 산책하는 코스를 추천한다.
7. 송파 둘쎄데레체
낡은 건물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카페. 들어가자마자 공간이 너무 협소해서 당황했는데, 손님이 나뿐이라 다행이었다. 많은 손님들이 찾아오길 바라는 카페라기보다는 사장님께서 직접 수제 페스토, 스프레드, 반려동물 디저트 같은 걸 만들고 원데이 클래스도 진행하는 공방에 좀 더 충실한 공간인 것 같다.
샌드위치가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왔는데 주문받고 조리하실 때 풍겨오는 냄새부터 기절각. 직접 만드신 바질 페스토가 인상적이어서 베이컨, 계란, 치즈 같은 기본 재료만 들어갔는데도 샌드위치 맛이 평범하지 않았다. 이렇게 기본에 충실한 샌드위치로 맛있는 식사를 할 때의 기분이 참 좋다.
8. 송파 위커파크
석촌호수 바로 앞 큰 길가에 탁월한 위치를 자랑하는 카페. 도심 속 작은 정원처럼 푸릇푸릇한 외관이 눈을 사로잡는데, 예쁘고 싱그러운 건 당연하고 살짝 이국적인 느낌도 난다. 꼭 도쿄 나카메구로 어느 거리에서 본 카페 같이 생겼네. 아무튼 독특하고 좋다. 2년 반쯤 전에 한번 와봤어서 대충 어떤 곳인지 안다고 생각했는데, 새삼 분위기가 이렇게 좋았었나 싶었다. 따뜻하고 밝은 외관과는 정반대로 실내는 살짝 어둡고 차분한데, 거기에 에이미 와인하우스 노래가 울려 퍼지니 게임 끝. 혼자 조용히 책 읽기 좋았다.
커피 산미가 어마어마하게 강해서 깜짝 놀랄 수도 있으니 스모어 하나를 곁들이는 걸 추천한다. 물론 한 입 거리지만 부담 없이 사 먹을 수 있는 천 원짜리 디저트로 좋은 아이디어인 듯. 얼마 전에 위커 파크 성수점을 오픈했고, 그쪽이 메뉴도 좀 더 다양하다고 하니 참고.
직접 가본 카페들을 개인적으로 아카이빙 해두는 해시태그 #jc_카페투어가 600개를 돌파했습니다. 500번째 카페가 작년 2월 백금다방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로부터 1년 2개월 만에 또 100여 개의 카페를 방문한 셈이네요.
저는 카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직장인이고, 커피나 공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도 없습니다. 제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아는 확실한 취향과 꾸준히 기록하는 습관이 있을 뿐입니다. 소소한 취미로 시작한 일이 점점 시간이 지나고 양이 쌓여가니까 이제 조금 욕심이 납니다. 이렇게 많은 카페를 가보고, 맛보고, 기록해둔 걸로 뭘 해보면 좋을까요? 혹시 좋은 의견이 있으신 분은 댓글이나 제안하기를 통해 저와 함께 나눠주시면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쭉 종종 마시러 떠나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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