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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May 29. 2020

5월에 마신 9개의 카페

장안 - 압구정 - 공덕 - 성내 - 삼청 - 금호 - 약수

가끔 마시러 떠납니다. 취향과 분위기 소비를 즐깁니다.

매달 다녀간 카페들을 개인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사진과 함께 짧은 평을 남겨놓습니다. 카페에 대한 감상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방문 목적과 시간대, 주문 메뉴, 날씨, 운 등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 있습니다.




1. 장안 파운틴


한창 핫했던 문화복합공간 듀펠센터의 입구이자 로비 역할을 하는 카페. 커피바의 타일 장식이 예쁘고 서적과 음반 등을 파는 옆 공간과도 잘 어우러져 힙한 느낌이 물씬 풍겨서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임은 확실했다. 나무 상자 같은 곳에 걸터앉아야 하는 좌석은 조금 불편했지만. 


듀펠센터는 옛날 목욕탕 건물을 개조해 만든 '세상에서 가장 작은 쇼핑센터'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안에서 즐길 거리가 많지 않았다. 지하철역과 거리가 있어 위치가 불편하고 근처에 다른 볼거리가 거의 없는 편이라, 듀펠센터에서 식사나 쇼핑 등 다른 목적이 확실히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2. 압구정 카시나아카디움


포틀랜드의 코아바 커피를 쓴다고 해서 궁금했던 곳. 'Keep Seoul Weird', 'Portland meets Seoul' 등 곳곳에 포틀랜드와 관련된 슬로건이 눈에 띈다. 그런데 전혀 포틀랜드스럽지 않은 곳에서 힙하고 자유분방하다고 알려져 있는 포틀랜드의 이미지만 차용하려는 것 같아서,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서울 속 포틀랜드'를 표방하는 카페가 다른 동네도 아니고 압구정에 있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요?


그래도 카페 자체는 나름 만족스러웠다. 서울 시내에서 이 정도로 개방감 있는 공간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안 될 것 같다. 오늘 한번 살쪄보자! 작정하고 시킨 팬케이크도 맛없을 수 없는 조합. 거의 시럽에 푹 담가준 수준이라 너무 달아서 머리가 띵하긴 했지만. 뭐, 그러려고 먹는 음식이니까.


3. 공덕 영앤도터스


이곳의 시그니쳐 메뉴인 딥카라멜라떼 하나만으로 방문할 이유가 충분하다. 이거 완전 기분 안 좋을 때 마시면 한 모금 만에 참미소 짓게 되는 그런 맛. 토피넛라떼랑 비슷한데 좀 더 포근한 느낌이랄까. 컵에 붙어있는 달달한 견과류 가루 같은 게 먹는 재미가 되는 킥이다.


공덕역 부근 회색빛 건물 숲 사이에서 조금은 이질적인, 예쁘고 아기자기한 공간이다. 민트색 문을 열고 들어가 보면 꼭 키친 스튜디오처럼 예쁘게 꾸며놓은 커피바가 보이는데, 누구든 나도 이런 주방을 갖고 싶다고 생각할 만하다. 내부에는 작은 스탠딩 테이블 세 개가 전부고, 가게 앞 인도에 잠깐 앉아서 마시고 갈 수 있는 작은 의자 몇 개가 있다. 너무 길거리 한복판이라 뻘쭘해서, 커피 한 잔 사들고 근처 공원에서 마시면 좋을 것 같다.


4. 성내 카페 브리에


딱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찾고 싶은 유형의 카페.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가 있고, 공간이 널찍하여 눈치가 안 보이고, 혼자 조용히 책 읽기 좋은 곳. 하필 내가 간 날 날씨가 흐려서 그랬는지 생각했던 것만큼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탐나는 디저트들이 심지어 저렇게 예쁘게 진열되어 있어 선택 장애가 올 수 있으니 주의. 나는 빅토리아 케이크를 골랐는데 조각 케이크가 아니라 꼭 컵케이크 같이 만든 게 참신했다. 특이한 디저트를 꾸준히 개발하시는 듯한 확신의 디저트 맛집.


5. 성내 채스우드커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 궁금해서 와봤는데, 알고 보니 한 2~3년 전에 왔었던 세루리안 앤드 팩토리였다. 가게 이름도 바뀌고 이제 더 이상 여기서 로스팅을 직접 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여전히 세루리안 원두를 쓰고 인테리어도 거의 그대로라 친숙하게 느껴졌다.


큰 기대 없이 시킨 아이스 라떼가 너무 고소하고 맛있어서 깜짝 놀랐네. 괜히 성내동 주민들의 사랑방 느낌 나는 게 아니었다. 로컬들이 알아보는 여기는 찐 커피 맛집이 맞다.


6. 삼청 더베이커스테이블


유럽도 이태원도 갈 수 없는 날, 답은 삼청동이었다. 독일식 빵과 브런치를 파는 더베이커스테이블의 삼청동점. 오픈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특유의 러스틱한 느낌이 있던 이태원 본점보다 훨씬 크고 세련되고 깔끔하다. 외국인 손님도 있고 곳곳에서 외국어가 들려오는 곳에 혼자 브런치 먹으러 오다니, 살짝 여행 온 기분이 들었다.


간단한 점심 식사로 브렛첼과 감자 수프를 주문했다. 여기는 메뉴만 독일식인 게 아니라 진짜 맛이 찐 독일이다. 특히 수프 안에 들어있는 소시지를 베어 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이건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의 향이다! 정확히는 무스타파 케밥 먹으려고 한 시간 줄 섰을 때 메링담 역 일대에 풍기던 그 향이었다. 눈 감고 맛을 음미하면 여긴 완전 베를린 한복판인데, 눈 뜨면 밖에 멋진 한옥이 내다 보이는 광경이 참 재미있었다. 일탈의 짜릿함을 느끼면서도 지금 내가 있는 곳을 사랑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곳.


7. 팔판 마칸틴


처음엔 예뻐서 호기심에 들어가 봤다. 이렇게 스콘이 예쁜 오브제들과 어우러져서 진열되어있는 걸 보고 눈 안 뒤집힐 빵순이는 없을 거다. 눈과 코를 사로잡는 이곳을 나는 감히 '서울 속 3평 남짓의 파리'라고 말해본다.


예쁘기만한 게 아니라 사장님이 친절하셔도 너무 친절하시다. 스콘 종류를 하나하나 설명해주시면서 한 조각씩 순서대로 맛볼 수 있게 준비해주시고, 아직 준비 중이라는 깜빠뉴와 까눌레까지 꺼내오셔서 시식을 시켜주셨다. 스콘과 잘 어울리는 차도 조금 건네주시고. 결국 홀린 듯이 스콘 두 개랑 까눌레 하나를 샀다. 계산하려고 카드를 드리니 이건 서비스라며 머랭 쿠키를 또 주시다니요.. 요즘 같은 시대에 다른 데서 본 적 없는 친절함에 황송해서 빵 봉지 들고 나오면서 약간 눈물이 맺힐 뻔했다.


매장이 정말 작고 앉아서 먹을 만한 공간이 없어 테이크 아웃만 가능하다. 엄연히 말하면 카페가 아닌 베이커리지만, 이 가게는 정말 오래오래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쓴다.


8. 금호 아우프글렛


요즘 가장 핫한 디저트 '크로플'의 원조로 유명한 카페. 크로와상을 와플 모양으로 찍어냈을 뿐 내가 아는 그 맛이겠지 싶어서 안 갔었는데 하도 난리라 궁금해졌다. 한 입 먹어보고 오호.. 마냥 달기만 한 게 아니라 크로와상 특유의 겹겹이 쌓여있는 식감도 느껴지면서 고소한 맛도 난다. 단 거를 썩 좋아하지 않아서 다 못 먹을 줄 알았는데 혼자서 홀린 듯이 다 먹어치웠다. 이거 하나 먹으러 여기까지 오는 거 인정. 


전체적으로 블랙&화이트로 통일감을 준 시크한 공간 분위기도 마음에 든다. 큼지막한 외국 건물 사진들과 핀 조명 때문인지 미술관에서 사진전 보는 느낌도 나고. 근데 이렇게 넓고 자리가 많은데 평소에 몇 시간 씩 웨이팅을 한다고? 오픈 시간에 맞춰 갈 것을 추천한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걸어갈 수 없는 애매한 위치 빼고는 완벽했던 곳. 


9. 약수 리사르커피로스터스


여기보다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맛본 기억이 없다. 커피를 잘 모르지만 이건 분명히 천천히 깊게 음미하고 싶은 '으른의 맛'이었다. 리사르는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딱 에스프레소 한잔씩 하고 가는 스탠딩 커피 바 스타일인데, 에스프레소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마시기 좋게 기본 에스프레소에도 흑설탕이 들어있고, 크림이나 코코아 파우더 등을 곁들인 메뉴도 다양하다. 한 잔에 2000원 정도로 가격 부담도 없어서 1인당 한 잔씩만 시키는 사람은 없다. 최소 두 잔, 다른 데서 커피 안 마시고 왔으면 세 잔까지 가능할 듯. 


예전에 왕십리에 있을 때 가보고 약수로 이전한 후로는 처음 가봤는데, 전보다 공간이 더 협소해지고 사람은 더 많아져서 이 작은 가게에 줄 서서 입장하고 커피 마실 때도 다닥다닥 붙어있어야 했다. 그걸 다 감수하고도 맛 하나만으로 갈 이유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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