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여행, 그 이후의 삶
단연 완벽한 여행이었다. 좋은 거 보고, 맛있는 거 먹고, 예쁜 거 사고, 뭐 그 정도만 해도 휴가를 잘 보냈다고 할 만한데. 이번 뉴욕 여행은 그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의 만족감을 안겨줬다.
정체된 삶에 권태를 느껴 큰 세상을 보러 나가고 싶어 했던 마음은 풀 충전되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일들이 있구나.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확실한 자극을 받았다. 직장인이 되고부터 잊고 살아온 꿈을 다시 한번 꿔보는 계기도 되었고.
삶이 메말랐다고 느껴지는 순간들도 많았다. 나름 틈틈이 문화생활을 해봐도 해소되지 않는 이 갈증을 뉴욕에서 제대로 한번 푹 적시고 오고 싶었다. 일주일 남짓 되는 기간에 이렇게 많은 전시와 공연을 본 적이 살면서 또 있었나. 세계 최고 수준의 뮤지컬, 연극, 미술 작품은 물론이고, 작은 재즈바, 지하철 버스커, 거리의 광고판, 다리 위에서 발견한 낙서 등 예상치 못한 순간에 훌륭한 예술을 만나는 행운도 찾아왔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혼자 하는 여행이 진리라고 믿어왔는데, 이 여행을 함께하는 동행이 있음에 감사했다. 혼자였으면 절대 시도해보지도 않았을 것들을 경험하고, 순간순간의 생각과 감상을 나눌 수 있었기에 이번 여행이 더욱 풍족해졌다.
답답하고 메마르고 외롭다면, 젊을 때 한 번쯤은 뉴욕이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내 삶에 변화의 물결이 들이닥쳤다. 맨해튼의 환한 불빛에 잠 못 이루던 그날 새벽, 불쑥 찾아온 연락의 정체는 처음으로 받아보는 이직 제의였다. 답답해 미칠 것 같아서 뉴욕으로 떠난 사람에게 이제 다른 일을 해보라는 제안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 타이밍, 신의 한 수였다. 그간 쌓아온 커리어와는 살짝 결이 다른 업무였지만, 매번 다른 곳에 가서 새로운 걸 보고 느끼며 절대로 지루해질 틈이 없을 것 같다는 게 가장 큰 메리트로 다가왔다. 이건 내가 진짜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일, 나 아니면 누가 해? 싶을 정도로 나와 찰떡인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 면접을 보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준비를 차근차근해나갔다. 최종 면접, 연봉 협상, 퇴사 면담까지 일사천리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는 이직을 하지 않았다. 오랜 대화와 고민의 시간 끝에 힘들게 내린 결론은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더 잘해보고 싶다는 거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기획한 결과물을 세상에 내보내고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그건 한번 해보고 그만둬야 미련이 없을 것 같았다. 운 좋게도 그 다짐의 불씨가 꺼지기 전에 내가 주도적으로 신규 서비스를 기획해 볼 수 있는 첫 기회가 찾아왔고, 반년 가량 온 열정을 불태워서 결국 런칭까지 해냈다. 참 신기하게도 그러고 나니 답답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지금의 나는 뉴욕 여행을 가기 전의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고, 더 넓고 멀리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나 새로운 걸 갈망해왔던 나는 어쩌면 주위 환경의 변화보다는 나 자신의 성장을 바랐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큰 세상을 보고 와서 내 세계가 달라졌냐고? No,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훨씬 넓어졌다. 중심은 굳게 유지한 채 내 세상의 경계선을 더 크게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뉴욕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냐고? Yes, 내가 원했던 건 한 순간에 인생이 바뀌는 게 아니었다. 시간과 경험이 쌓일수록 조금 더 나은 내가 되어가는 모습이었음을 덕분에 알게 되었다.
"The purpose of life is to live it
to taste experience to the utmost,
to reach out eagerly and without fear
for newer and richer experi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