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 - 성수 - 을지로 - 용산 - 잠실 - 망원 - 성북 - 송파
햇살 좋은 날 혼자 카페에 가서 샌드위치 류로 가벼운 점심식사를 하는 시간을 즐깁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맛과 분위기에 만족했던 카페들은 좀 더 특별하게 기억하고 싶습니다. 각 카페에 대한 감상은 방문 당시에 쓴 지극히 주관적인 과거의 글을 다시 모아 엮은 것입니다.
1. 천호 파트원나이스
우연히 여기 샌드위치가 어떤 이의 '인생 샌드위치'라는 댓글을 보고 꽂혀서, 바로 다음 날 찾아갔다. 파스트라미 샌드위치는 쫄깃한 치아바타 사이에 풍성한 재료가 꽉꽉 채워져 있어 한 끼 식사로 손색없었고, 특히 블루베리 잼이 새콤달콤한 맛을 더해주는 킥이었다. 세련된 컵에 담겨 나오는 커피와도 잘 어울렸고.
전반적으로 멀끔하고 모던한 물씬 풍기는 블랙 앤 화이트 톤의 인테리어로, 좁은 공간에 군더더기 없어 좋았다. 가게 내부가 심플하니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빨간 벽돌의 빌라가 줄지어있는 친근한 동네 골목길이 새삼 예뻐 보이더라. 맛있는 샌드위치와 커피 덕분에, 누군가의 일상이 나에게는 일탈이 되는 걸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20년 2월)
2. 성수 큐뮬러스
알만한 사람들에게는 이미 소문난 샌드위치 장인의 가게.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는데 한 번은 가는 길에 갑자기 급한 사정이 생겨 영업을 안 하신다 해서 실패, 또 한 번은 가는 길에 메뉴 공지를 확인해보니 제일 궁금했던 '트러플 핫소스&로스트 치킨'은 안된다고 해서 또 실패. 세 번째 시도만에 겨우 성공이다.
이번에도 치킨은 안된다고 해서 살짝 실망하며 '로스트비프 샌드위치'를 주문했는데, 예쁜 접시에 정갈하게 담아내어 주시는 음식을 보고 바로 감동 모드. 샌드위치 하나 먹는데 고급 레스토랑에 와서 대접받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한 입 맛보고는 깜짝 놀랐다. 뭔데 이렇게까지 맛있는 건지? '이건 샌드위치가 아니라 예술이다'라는 말로 밖에 표현이 안 된다. 특히 소고기가 엄청 야들야들해서 부드러운 식감과 풍부한 맛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었다. 마지막에 상큼하게 토마토 절임으로 입가심까지 하면 완벽.
충격적으로 맛있어서 음식이 가장 기억에 남았지만, 공간 자체도 꽤 매력적이다. 크고 긴 원목 테이블에 손님들이 둘러앉아 자연스럽게 섞이면서도 각자의 음식을 즐길 수 있고, 한쪽은 통유리로 되어있어 스튜디오 같은 옆 공간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다. 고가의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음악도 이곳의 무드를 적절하게 채워준다. 앞으로 성수동에서 약속 잡을 일 있으면 왠지 식사는 무조건 여기서 하게 될 것 같다. (20년 4월)
3. 을지로 클래직
여기 샌드위치 100점 만점에 120점 드립니다. 가벼운 한 끼로 정말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었을 때의 만족감을 좋아하는데, 그 기분을 오랜만에 느끼게 해 준 샌드위치였다. 리코타 치즈 샌드위치를 먹었는데 산뜻하고 상큼해서 입맛이 돌고 기분이 좋아졌다. 동행인이 먹은 햄치즈 크루아상도 만족스러웠다고.
안쪽 자리 두 군데 빼고는 온통 새까만 벽면에, 예술 작업실 느낌의 인테리어다. 처음 들어갔을 때 약간 태연 '사계' 뮤직비디오 세트장 같다고 생각한. 블랙을 싫어하는 건 아닌데, 이렇게 맛있는 샌드위치와 영롱한 에이드를 어두운 방 안에서 먹는 건 뭔가 좀 낯설고 어려웠다. (19년 4월)
4. 용산 카데뜨
바게트 샌드위치, 수프 등 가벼운 브런치 메뉴와 간단한 디저트류 베이커리가 있는 곳. 그릴드 베지터블 샌드위치를 먹었는데 보기에도 예쁘고, 건강한 음식이라 먹으면서 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겉은 딱딱하고 속은 촉촉한 바게트가 압권이었다. 하나 따로 사 올걸 뒤늦게 후회했을 정도로 완벽한 바게트 덕에 프랑스에 와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쉬운 점은 매장이 작아 큰 원형 테이블에 합석을 해야 한다는 점. 혼자 조용히 브런치를 즐기다가, 옆에 앉은 사람들이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얘기들을 너무 크게 해대서 금방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19년 9월)
5. 잠실 뉴질랜드스토리
제대로 된, 맛있는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 찾아갔다. '크림마효'라는 닭가슴살 샌드위치를 주문했는데 적당히 크리미하고 느끼해서 맥주와 잘 어울렸다. 다른 메뉴들은 어떤 조합인지 궁금해서 앞으로 몇 번은 더 가볼 곳.
뉴질랜드는 안 가봤지만 이름처럼 뉴질랜드가 연상되는 이국적인 분위기가 제법 풍긴다. 강렬한 포인트 컬러에, 초록색과 잘 어울리는 나무와 라탄 소재, 셀 수 없이 많은 식물, 그리고 군데군데 붙어있는 빈티지 사진들. 소품과 장식이 과한데도 촌스럽지 않다. (19년 8월)
6. 망원 604
망원동으로 이전한 후로는 멀어서 한 번도 못가봤지만 중화동에 있을 때 종종 가볍게 점심 먹으러 갔었다. 그릴드 치즈 토스트, 아보카도 토스트, 쉬림프 번 이렇게 세 가지 메뉴가 있는데,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다 맛있어서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메뉴를 선택했다. 그릴드 치즈는 완벽한 '단짠느매' 조합의 풍부한 맛을 선사하고, 아보카도 토스트는 건강한 한 끼 식사 를 했을 때의 만족감을 주고, 쉬림프 번은 간편하게 먹기 딱 좋다.
요즘에는 디저트 쪽에 주력하시느라, 쉬림프 번만 고정 메뉴고 아보카도 토스트는 가끔 하시는 것 같던데. 언제 한 번 토스트 하시는 날 찾아가서 산뜻하게 점심 먹어야지. (17~18년 여러 번 방문)
7. 성수 앤드밀
방배동에 있던 시절부터 성수동으로 이전한 지금까지 샌드위치 맛집으로 소문난 가게. 몇 달 전에 갔다가 자리가 없어서 그냥 나왔던 기억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고도 협소하다. 여유 있게 먹고 싶어 이번엔 평일 점심에 오픈 첫 손님으로 방문했다.
다이어트 중이라 생채소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고르려다가, 1월 한정 메뉴라는 말에 혹해서 주문해버린 '바질 크림 고구마 그릴 샌드위치'. 바질 크림이 워낙 맛있었지만 반 쪽 먹고 나니 좀 물리더라. 빵+고구마는 너무 헤비하다. 음식이 예쁜 만큼 공간도 조금 더 깔끔하고 아기자기하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도 남은 곳. 그래도 나는 샌드위치 처돌이라 다음에 또 신메뉴 먹으러 가겠지.. (20년 1월)
8. 효창 우스블랑
엄청 귀여운 동네 빵집. 이 집의 마스코트 백곰 캐릭터에는 백곰들을 지키기 위해 환경을 보호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환경 보호 실천을 위해 매장에서도 물티슈를 제공하지 않고 테이크아웃용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하고, 에코백과 파우치 등의 친환경 굿즈를 직접 제작해 판매하신다.
유명한 빵집답게 본업도 참 잘한다. 내가 고른 크로와상 샌드위치는 우선 빵 자체가 정말 크고 맛있었고, 그 고소함이 소스와 양파의 알싸함과 어우러지는 맛이 좋았다. 브런치 메뉴처럼 주문하는 샌드위치 외에도 건강해보이는 호밀빵부터 달달한 디저트류까지, 엄청 다양한 종류의 빵을 갓 구워내 쭉 진열해놨으니 행복이 필요한 빵순이라면 꼭 가볼 것. (20년 9월)
9. 방이 필커피
사장님과 단 둘 뿐이었던 이 작고 하얀 공간에는 편안함과 적당한 서먹함이 공존했다. 바우하우스 느낌 낭낭한 인테리어 덕분에 이국적인 분위기도 깔렸고. 진열되어 있던 잡지를 좀 보다 보니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초록 초록한 필토스트는 보시다시피 아주 건강한 맛. 푸짐한 바질 페스토에 눈처럼 쌓인 치즈까지. 큰 기대 없이 그냥 예뻐서 시켜본 치즈 테린느가 의외로 만족스러웠다. 치즈 케이크가 아주 진하고 견고하게 응축되어 있는 느낌의 디저트. 더울 정도로 따사로운 햇살을 쬐며, 여유롭게 잡지 한 권을 읽으며, 혼자 조용하게 식사와 디저트에 커피까지 즐긴 한 시간 남짓. 이 주의 가장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1시간으로 기억에 남았다. (19년 2월)
10. 송파 둘쎄데레체
낡은 건물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카페. 들어가자마자 공간이 너무 협소해서 당황했는데, 손님이 나뿐이라 다행이었다. 많은 손님들이 찾아오길 바라는 카페라기보다는 사장님께서 직접 수제 페스토, 스프레드, 반려동물 디저트 같은 걸 만들고 원데이 클래스도 진행하는 공방에 좀 더 충실한 공간인 것 같다.
샌드위치가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왔는데 주문받고 조리하실 때 풍겨오는 냄새부터 기절각. 직접 만드신 바질 페스토가 인상적이어서 베이컨, 계란, 치즈 같은 기본 재료만 들어갔는데도 샌드위치 맛이 평범하지 않았다. 이렇게 기본에 충실한 샌드위치로 맛있는 식사를 할 때의 기분이 참 좋다. (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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