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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Mar 27. 2021

3월, 프로 콘텐츠 과몰입러

2021년 3월의 월말결산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까워 남겨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매달을 기록해둡니다.




3월에 읽은 책

• <혼자 살기 시작했습니다> - 정현정

- 부동산에 사기당할 뻔하기도 하고, 곰팡이와 바퀴벌레에 고통받기도 하는 등 생생한 경험담으로 독립은 로망이 아닌 현실이라는 걸 말해주는데, 나는 이걸 읽으면서도 왜 부러워하고 있는 건지. "독립생활을 '결혼 전에 임시로 거쳐가는 삶'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형태라고 생각한다면 부모님과 더 치열하게 싸우고, 과감하게 실망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조언 잘 새겨들을게요.. 


• <뭘 할지는 모르지만 아무거나 하긴 싫어> - 이동진 외

- 제목과 내용의 괴리가 너무 커서 읽는 데 몰입이 안 됐달까. 당시 트렌디했던 소위 잘 팔리는 제목을 붙인 것 같은데 글쎄, 고작 2년도 안 지난 지금은 전혀 와 닿지 않는다. 퇴사준비생 시리즈를 좋아하는 애독자로서는 조금 아쉬웠던 편. 출판물보다는 온라인 매체에 잘 어울렸을 콘텐츠.  


•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 고금숙

- 환경 문제가 심각한 건 다 아는 문제지만 그래서 나는 뭘 해야 하는지는 계속 고민하고 공부해야 하는 부분. 자칭 '쓰레기 덕후'라는 저자의 일상을 통해 생각보다 다양한 대안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조금 불편해도 그렇게 하는 게 맞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대문자' 운동 체질이 아니다. 국가나 희생 같은 거창한 담론보다는 일상에서 의미를 찾는 '소문자'의 삶을 사랑한다. (중략)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배웠다. 이후 소문자는 대문자의 삶으로 나아갔다."


•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 남형도

- 건강한 성인 남성인 기자가 일일 체험을 통해 사회적 약자의 고충을 몸소 느껴봤다는 식의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 헤아릴 수 없는, 타인이 쉽게 지레짐작해선 안 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체험들이 훨씬 더 와 닿았다. 50번 거절당하기나 착하게 살기를 거부하기 체험 같은 건 나에게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줬다.


3월에 즐겨들은 음악

• 구름 정규앨범 <많이 과장해서 하는 말>

- 구름 신곡 대체 몇 년 만인지. 한때 치즈st, 이젠 백예린 노래st로 알려진 구름의 곡과 가사를 좋아하는데, 역시 남자 보컬로 들을 때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개취로 목소리 좋은 국내 남성 보컬 탑 3 안에 드심) 이번 앨범 최애 트랙은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마음, 왠지 향수를 자극하는 싸이 브금 느낌이라 정감 간달까. 


• 아이유 정규 5집 <LILAC>

- 20대를 마무리하는 인사를 이렇게 예술적으로 할 일인가. 스물셋, 스물다섯, 스물여덟을 직접 만든 음악으로 기록해온 아티스트였어서 그런지, 마치 내가 그의 20대를 쭉 함께 해온 것만 같아 이 앨범이 더 특별하게 와 닿는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트랙 '에필로그'의 가사 "내 맘에 아무 의문이 없어 난 이 다음으로 가요"는 너무 말도 안 된다. 나는 이제 아이유를 풀네임 '아이유 선생님'이라 부르기로 했다. 


• 브레이브걸스 '운전만해 (We Ride)'

- 롤린이 역주행 신화로 K팝 역사에 오랜만에 등장한 대국민 히트곡이 됐지만, 사실 내 귀에 계속 맴돈 건 '운전만해'였다. 살짝 침울한 정서가 깔려있는데 시티팝 댄스곡이라 둠칫둠칫 하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렇게 명곡이 많은 그룹을 왜 이제야 알았지!  


3월에 본 영화와 드라마

• 미국 Freeform 드라마 <볼드 타입 (The Bold Type)> (2017~2019)

- 이미 올해 최고의 드라마! 뉴욕의 영 프로페셔널 우먼들의 일과 사랑, 우정, 꿈, 인생 이야기인데 드라마 자체도 너무 재미있고, 주인공들이 기본적으로 다 일을 엄청 잘해서 답답한 부분이 없고, 여성들이 서로 도와가며 성장하는 감동 서사도 미쳤다. 오늘날의 미국 MZ 세대의 입장에서 페미니즘과 소수자 이슈를 다룬 시각도 신선했고 묘사 방식은 섬세했다.

 시즌3까지 정주행 하는 동안 거의 내 랜선 베프나 다름없었던 주인공 제인, 서튼, 캣. 세 사람 모두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했는데 아마 사회 초년생 여성들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들을 캐릭터에 잘 녹여낸 것 같다. 특히 제인이 눈치 보며 이직 고민할 때, 서튼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자신의 재능을 의심할 때 완전 내 얘기인 줄.

 그리고 볼드타입 세계관 내 매력 최강자 재클린. 드라마 속 캐릭터 보면서 저 사람이랑 친구 하고 싶다, 저 사람이랑 살아보고 싶다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저 사람 밑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처음. 재클린 같은 상사를 만나 주인공들이 일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었고, 제인 서튼 캣도 훗날 누군가의 재클린이 되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You know, fear causes bad behavior."
"Don't say "I'm sorry" when you have nothing to apologize for."


• 영국 BBC·Hulu 드라마 <노멀 피플> (2020)

-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 왜 나는 사랑받지 못할까, 내가 이상한 걸까 끝없이 고민하고 상처 받다가도 서로와 함께 있을 땐 지극히 '노멀한', 솔직하고 온전한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관계.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그런 베스트 프렌드이자 소울메이트를 만나고 싶다.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은 절대 이렇게 사랑할 수 없을 거야"라는 대사에 폭풍 공감. 불면증에 시달리는 코넬을 위해 메리앤이 스카이프 켜 두자 하고 모니터 너머로 잠드는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에서 주책맞게 울었는데, 어쩌면 나 그 둘을 꽤 부러워했나 보다.


 •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2017)

- 오래전부터 나는 사랑과 동경의 감정이 어느 정도 맞닿아있다고 생각해왔다. 내가 갖지 못한 그 사람의 어떤 면이 너무 좋아서 그에게 반하고, 거기서 매력을 느껴 더 함께하고 싶고, 그렇게 그를 닮아가고, 결국 내가 좋아하던 그 모습을 나에게서도 발견할 수도 있게 되는 그런 일련의 과정.

 어린 시절 칠월과 안생은 서로에게 없는 부분을 채워주는 보완적인 관계의 친구로서 잘 맞았었을 수 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로는 서로를 통해 접하게 된 정반대 편 세상에 눈을 뜨고, 내 친구가 있는 쪽으로 가야겠다 마음먹은 게 타이밍과 방향이 엇갈렸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마음은 어떻게 보면 성향이 참 다른 친구에 대한 동경일 수도 있고, 또 어떻게 보면 지금의 나를 청산하고서라도 내 반쪽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 다른 말로 사랑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렇게 숱한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고 나서 결국엔 서로가 되어버린 거다.

 이 기나긴 서사의 핵심인 척하는, 가운데 낀 비겁한 남자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감독이 쓸데없이 비장하게 보여준 반전과 결말도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그냥 우정이라고 둘러대기에는 왠지 미안한, 동경 일지 사랑일지 모르는 그 애매한 감정 때문에 긴 여운이 남고, 이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됐다. 어딘가에서 칠월과 안생이 본인들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둘이서 행복했으면.

"이별이 어떻게 슬프지 않을 수 있을까? 단지 어른이 되었으니 작별 인사에 익숙해져야겠지."
"괴로운 삶을 산다고 불행한 건 아니야 좀 힘들 뿐이지."
"누가 널 좋아해 줘. 널 사랑해 줄 사람은 나밖에 없어."


• 영화 <더 테이블> (2017)

- 카페의 한 테이블에 앉았다 간 네 팀의 대화를 한 편의 영화로 엮어냈다는 컨셉이 신선했다. 영화에 여덟 명 밖에 안 나오는데 세상 모든 사람들을 다 만나고 온 것 같다는 리뷰에 극 공감. 한 번의 대화만으로도 그 사람의 성격, 환경, 배경이 어느 정도 보인다. 가장 덤덤한데 유일하게 눈물이 났던 한예리 에피소드가 좋았다. 


• 영화 <레이트 나이트 (Late Night)> (2019)

- 스토리는 뻔하지만 엠마 톰슨의 연기력과 존재감이 다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한 물 간 여성 진행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쇼,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여성 작가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스크립트가 분명 있었다. 나도 분명 나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테다. 그걸 꺼내보자.


3월에 인상 깊게 본 콘텐츠

• 미국 FOX <헬스 키친 18> (2018)

- 헬스 키친을 대충 고든 램지가 화 내고 소리 지르고 음식 버리는 서바이벌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일부 참가자들이 빌런 끝판왕이라 오히려 고든 램지가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소통 안 되는 유형, 피해망상 오지는 유형, 감정 과잉 유형 등 살면서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은 다양한 또라이 유형의 총집합. 근데 그 스트레스가 시청자들에게까지 전이되지 않고 딱 화면 속 예능 소재로 소비되는 정도로 선을 지키는 게 신기했고, 그렇게 잘 끊어주는 게 헤드 셰프이자 프로 방송인 고든 램지의 스킬이구나 싶었다. 결론적으로 아주 재미있게 봤다. 여성팀이 계속 이겨서 통쾌했고, 내가 응원하던 두 명이 딱 파이널에 올랐고, 둘 중에 좀 더 괜찮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최종 우승해서 기뻤다. 어서 다른 시즌도 넷플릭스에 수급해오길.


• 유튜브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2021)

- 학문(a.k.a. hangmoon)에 한 맺힌 홍진경의 공부 예능. 장장 4부에 걸친 공부 준비 시리즈가 너무 재미있다. 아니 사실 프롤로그가 제일 웃기긴 했음. 역시 '난 우울할 때 홍진경을 봐'의 그 홍진경답다. 근데 또 마냥 웃기기만 한 건 아니고 이 언니 진심인 게 너무 느껴져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보게 된다. 딸과 함께 2년째 과외받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고, 방송에서의 웃긴 모습과는 달리 실제로는 생각 깊고 글도 잘 쓰는 사람인 걸 알아서 더욱 호감이다.


• 유튜브 HYBE: NEW BRAND PRESENTATION 

- 살면서 남의 회사 프리젠테이션을 이렇게나 집중해서 본 적이 또 있었나 싶다. 심지어 나는 이 회사에 좋아하는 아티스트도 없는데 말이다. 확실히 기존의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와는 다른 길을 가겠다는 포부가 느껴졌고, 그걸 비대면 컨퍼런스 형식으로 전달하는 방식도 너무 세련됐다. 한때 내 롤모델이었던 민희진 CBO가 신사옥 설명하는 거 보고 이직하고 싶다고 속으로 열 번쯤 말했고.


3월에 잘한 소비

• 그랑핸드 내추럴 스프레이 

- 강박과 불안 해소를 도와준다는 프랑크인센스 향. 차분한 숲 속의 향기다. 진짜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침대 맡에 두고 매일 밤 칙칙 뿌려주는 게 나름의 루틴이자 일종의 의식이 되었다. 덕분에 나의 밤 시간이 좀 더 풍부해졌달까. 


• 다이소 운동기구 

- 복근/상체 운동을 할 수 있는 밴드 기구와 1kg 소프트 아령. 이게 운동이 될까 반신반의하면서 샀는데 나름 괜찮다. 거부할 수 없는 다이소 가성비의 마력. 마음 같아서는 3kg 아령 세트랑 8kg 케틀벨도 사고 싶은데 이제 진짜 방에 놓을 데가 없다. 독립해서 운동방 만들면 제대로 된 거 사야지. 


3월에 맛있게 먹은 음식

- 지난번에 혼자 가서 하나밖에 못 시켜 먹은 게 아쉬웠던 프렌치 비스트로 성수로운. 이번에는 넷이 가서 요리 열 접시에 와인까지 조지고 왔다. 홍합마르니에와 이베리코 요리가 특히 맛있었다.

- 몰림의 청양불고기 플레이트. 카카오맵 리뷰가 옳았다. 여기 청양불고기 안 먹어본 사람이랑 겸상 못함..


3월에 마신 카페


3월에 잘한 일

- 이번 달엔 유독 콘텐츠 과몰입을 심하게 했다. 부작용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더 컸다. 그렇게 깊게 빠질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덕분에 매일 똑같은 일상이 지루하지 않았고, 오늘 밤 그리고 다음 주를 기다려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특히 공이 컸던 <여고추리반>과 <볼드 타입> 제작진 및 관계자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와 함께 다음 시즌도 빠른 시일 내에 부탁드린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 <골 때리는 그녀들> 보고 삘 받아서 여자 축구 클래스를 찾아서 바로 등록해버렸다. 일주일에 한 번 기본기도 배우고 풋살 경기도 뛰고 온다. 너무 힘들어서 체력도 멘탈도 다 탈탈 털리는 것 같지만 그만큼 뭔가 싹 비워내는 느낌이 들어 상쾌하고 뿌듯하다. 오래오래 하고 싶은 운동이 생겼다. 


 - 늘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은데 딱히 할 데도 없고, 그냥 혼자 머릿속에 써 내려갔다가 사라져 버리는 게 너무 아까워서 어느 날 충동적으로 트위터 계정을 팠다. 이번에도 해킹당하면 진짜 안 참아.. 카톡처럼 특정 대상이 없어도 되고, 인스타처럼 괜히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브런치처럼 각 잡고 정리할 필요도 없이 그냥 내 생각을 자기 검열 없이 남겨놓고 싶어서다. 아무 말 다 하는 계정, 혹시 궁금하시다면 여기로. 


3월에 아쉬웠던 일

- 조직과 업무에 살짝 변화가 있는 시기였다. 이제 어디 기댈 데도 없고, 여기저기서 다 나한테 이거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어올 때마다 멘탈 나갈 것 같다. 나도 처음이라 모른단 말이다 ㅠㅠ 하지만 어찌어찌 해내고 있는 중. 힘들지 않아 거친 정글 속에 뛰어든 건 나니까 암 오케.. 과도기였다고 생각하고 4월부터는 좀 더 단단한 영 프로페셔널 우먼이 되어야지.


3월에 행복했던 순간

1. 풋살 경기에서 첫 골 넣었을 때의 희열 

2. 여고추리반 시즌2 제작 확정 소식을 들었을 때 (과몰입 오타쿠가 또..)

3. 다음 주에 행복할 예정. 드디어 휴가 간다! 반년 만에 떠나는 여행, 그리고 1년 반 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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