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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Feb 28. 2021

2월,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

2021년 2월의 월말결산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까워 남겨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매달을 기록해둡니다.




2월에 읽은 책

<말하기를 말하기> - 김하나

- 말하기를 자신 없어하는 내향인이 쓴 말하기 책이라니. 말을 잘한다는 건 유창하고 있어 보이게 하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을 정확하게 전하면서도 듣는 이를 배려하는 언어를 쓰고 나 역시도 상대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레벨 업이 아니라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이다."
"현시대의 지성에는 여러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도록 스스로 가이드라인을 계속 업데이트하는 능력과, 내가 알고 있던 게 다른 시각에서는 잘못된 것임을 받아들이는 능력 또한 포함된다."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 - 최재원

- 몇 년 전부터 회사 본업 외 나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도 어떻게 시작할지 방법을 못 찾았다. 실마리가 될까 해서 이 책을 샀는데 사실 다 아는 내용이긴 해서 조금 아쉬웠지만, 하나의 수확이 있다면 꼭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용기를 얻었다는 것.

"무언가 할 때 제대로 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자. 꼭 인생과 시간을 다 바쳐서 하지 말자."
"안 될 핑계를 찾으면 수없이 많지만, 또 될 핑계를 찾으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디렉토리 매거진 6호 <취향의 자립>

- '취향'이라는 단어가 남용/오용되는 이 시대에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은 '취향의 자립'이라는 주제. 남들이 좋다고 하는 거, 요즘 유행하는 거 말고 내가 왜 좋아하는지, 어떻게 좋아하게 됐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걸 취향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 것 같다. 밀레니얼 세대의 주거 문화를 다루는 디렉토리 매거진, 종종 온라인으로 인터뷰를 보고 실물 잡지로는 처음 사봤는데 구성이 상당히 괜찮다. 오랜만에 정기 구독하고 싶어 지는 매거진.

"나의 좋아하는 이 마음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곰곰 생각해보기, 취향의 출처 따져보기."
"진짜 무언가를 좋아하면 그게 왜 좋은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다고 봐요.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근성이 있는 사람을 볼 때 취향이 좋다고 느끼죠."
"사람이 성숙하면 자연스럽게 '나만의 것'을 외치는 게 유치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 정문정

- 쭉 읽어보니 무례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내가 세상 모든 걸 다 알고, 내가 아는 것만이 옳다고 믿는 고집불통들인 듯하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이자, 또 가장 경계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근데 진짜 무례한 사람들은 뭐가 잘못된지도 모르고 바뀌려는 노력도 안 하는 것 같은데, 왜 늘 상처 받은 이들만 이런 책을 쓰고 읽고 밑줄 긋고 가슴에 새기는 건지. 폭력적인 세상. 

"모든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된단다. 모든 것에 대답하려고 하면 잃어버린단다. 자기 자신을."
"'내가 해봐서 아는데'가 아니라 '나는 잘 모르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하는 고차원의 상상력"
"흔들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평가나 조언을 거대하게 받아들인다. 확신 있는 사람은 남에게 물을 시간에 그 일을 이미 하고 있다."


•<아무튼 떡볶이> - 요조

- 떡볶이 하나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술술 나오다니. 과연 한국 여성들의 소울 푸드답다. 작가 요조의 글은 처음 읽어보는데 문체가 엄청 특이해서 신선하면서도 술술 쉽게 잘 읽히는 게 참 재밌다. 앞으로 더 많은 요조의 글을 읽어보고 싶어 졌다. 

"뭐가 되었든 훌륭하지 않더라도 어쩌다 존재하기 되었으면 가능한 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 - 김원희 

- 할머니가 되어서도 여행 다닐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남들 다 하는 것들을 하고, 그런 만큼만 살자 하며 열심히 산 시간이 갑자기 부질없어진다. 그리하여 남은 것은 짧아진 내 생의 시간뿐인걸."


2월에 즐겨들은 음악

•청하 <Querencia>

- 청하의 첫 정규앨범, 모두가 찬양하길래 들어봤더니 과연 그럴만하더라. 퍼포먼서, 음원 강자를 넘어서 20개의 트랙에 자기 음악도 꽉꽉 채울 줄 아는 진짜 가수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에 꽂힌 트랙은 Dream of You (with R3HAB). 작년 11월에 나온 곡이라는데 나 왜 몰랐지? 완전 빌보드 1위 곡 재질이라 놀랐다. 청하 조만간 진짜 큰 사람 될 것 같아..


•샤이니 <Don't Call Me>

- 샤이니스 백! 컨셉도 음악도 무대도 역시 샤이니는 때깔이 다르다. 어떻게 2000년대에도 2010년대에도 2020년대에도 (내 기준) 가장 세련된 K팝 그룹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는지? 새 앨범 공개되자 마자 쭉 들어보는데 고등학생~대학생 때 샤이니를 열렬히 사랑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라 살짝 설렜다. 수록곡은 무조건 다 들어봐야 할 정도로 다 좋은데 굳이 꼽자면 CØDE, I Really Want You, 빈칸 (Kind) 추천. 


•온앤오프 'Beautiful Beautiful' 

- 예전부터 이 그룹이 샤이니처럼 믿고 듣는 남돌, K팝 광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그룹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신곡을 듣고 어느 정도 확신하게 됐다. 희망찬 멜로디에 벅차오르는 사운드, 거기에 "내 삶의 모든 외침이 곧 예술"이라는 시적인 가사. 심장이 뛰는 사람이라면 이걸 듣고 좋아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카펠라 킬링파트 잘 들리는 밴드 라이브 듣고 다들 행복해지셔라 브라람빠밤빠밤빰빰~


2월에 본 영화와 드라마

• 드라마 <런 온> (2021)

- 한국 드라마 역사상 이렇게 '안 불편한 드라마'는 처음인 것 같다. 시대/젠더 감수성을 잘 녹여내서 주체적인 삶을 사는 여성 캐릭터들과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남주를 보는 것도 좋았고. 주인공들이 누군가 잘못한 게 있으면 바로 잡아주고, 본인이 잘못했으면 바로 사과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회에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딱 내가 평소 자주 하는 생각이라 소름 돋았다. '런 온'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질 것 같아 다행이고 고맙다. 


• 영화 <시간 여행자의 아내> (2009)

- 자신의 능력을 컨트롤하지도 못하는 시간 여행자와 평생을 약속하는 결혼은 홀로 남은 배우자에게 너무 가혹한 일 아닐까. 보는 내내 레이첼 맥아담스 너무 예쁘고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 밖에..  


• 영화 <위 아 40 (The 40-Year-Old Version)> (2020)

- 이게 진짜 힙합이지! 마흔의 흑인 여성 래퍼 라다머스 프라임 랩 할 때 진짜 멋있고 가사도 철학적이고 날카로워서 너무 좋은데 단 한 가지 문제점. 흑백 필름을 보면 자꾸만 눈이 감겨서 끝까지 보기 힘들었다 후..


2월에 인상 깊게 본 콘텐츠

• MBC 예능 <가시나들>(2019)

- 방영 당시에 진작 안 봤던 게 후회되고 미안할 정도로 따숩고 재미있고 뭉클하고 다한 최고의 예능이었다. 어르신들이 늦은 나이에 한글을 배우는 모습도 물론 감동적이었고, 개인적으로는 시골에 혼자 사는 할머니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관련 글) 프로그램 자체를 사랑하게 되니 문소리 선생님과 애기 짝꿍 출연자들도 다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특히 '이불이' 이브 이 친구 참 괜찮은 사람이네.. 싶어 직캠 찾아봤다가 입덕 해버림.


• 티빙 오리지널 예능 <여고추리반> (2021)

- 티빙 이 갈았네. 진짜 잘 만들었다. 섭외도 갓벽하고 프로그램 설정과 전개 자체도 재미있는데, 추리물답게 시청자들한테 계속 떡밥 주고 유튜브, 인스타 콘텐츠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추리를 이어가도록 하는 힘이 대박이다. 2차 창작물과 바이럴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게 잘 설계되어있는 것 같다. OTT 오리지널 예능의 아주 좋은 예. 그런데 TV용 아니라고 작정하고 만들었다더니, 생각보다 너무 무서워서 이불 뒤집어쓰고 벌벌 떨면서 보게 된다. 꿈에 나올 것 같아.. 


• SBS 파일럿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 (2021)

- 김혼비 작가의 책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영상으로 보는 느낌.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피지컬의 여성들이 땀 흘리며 건강하게 경쟁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고, 보면서 나도 같이 뛰고 싶어서 주위에 여자축구 모임 있나 검색도 해봤다. 꼭 정규 편성되었으면. 그런데 중계한다고 앉아서 선수 외모 평가하고, 골키퍼가 골 잘 막았더니 "사랑하는 남자를 안 듯이 안네요" 같은 비유나 하는 남자 MC는 교체해야 하지 않을까요?


• 유튜브 it's Kathy 

-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떡상한 미국 카페 사장님 브이로그. 친절하고 긍정적이고 따뜻하고 배려심 깊은 캐시의 응대를 보고 있으면 손님도 아닌 내가 괜히 기분 좋아진다. 아, 나도 미국 가서 오트 밀크로 만든 라벤더 라떼 마시고 싶다! 


그리고 꼭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 뽑아본 2월의 BEST 콘텐츠 TOP 2 

 • 유튜브 '아이유의 팔레트' 샤이니 편 

- 샤이니가 부르는 '이름에게', 아이유가 부르는 '셜록'. 듣자마자 눈물 좔좔. 온유 파트에서는 진짜 입 틀어막고 울 뻔했다. 그나저나 아이유는 이제 대가수, 대배우에 이어 대MC 타이틀도 달려는 작정인지, 진행도 너무 잘해버린다. 대선배와도 눈높이를 맞춰 대화를 이끌어나가고, 어린 후배들은 긴장하지 않고 준비한 걸 다 보여줄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동기들 만나니 바로 편안하고 담백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네. 요즘 공중파도 못해내는 고품격 음악쇼 '아이유의 팔레트' 정규 편성해줘요! 

 

• 유튜브 '문명특급' 윤여정 편

- 이 시대의 진짜 어른 윤여정과 준비성 갑, 사회성 갑 재재가 만들어낸 역대급 인터뷰. 앞서 나가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오래 살면 된다, 편한 환경에만 계속 머물러 있으면 괴물이 될 수 있다 등 마음에 콕 와 닿는 말들이 많았다. 웃기면서도 감동적이고 배울 점도 많아서 예능으로 보나 교양으로 보나 여러모로 최고의 콘텐츠.


2월에 맛있게 먹은 음식 

- 나름 꾸준히 식단 관리 잘하고 있고 주말에 한두 번 정도는 개의치 않고 맛있는 거 먹는 편이다.

- 최근 엄마의 시그니처 메뉴가 된 표고버섯 튀김. 나 원래 표고버섯 안 먹고 튀김도 싫어하는데, 엄마표 표고 튀김은 왜 맛있는 건지? 나이 들어 입맛이 바뀐 건가 싶다.

- 꼬북칩 초코츄러스 맛을 이제야 구해서 먹어보는데 오 눈이 번쩍 뜨이는 맛. 하지만 한 번에 많이 먹기엔 좀 질리는 편. 


2월에 잘한 일

- 그래도 나 인정받고 있구나 새삼 느낀 계기가 있었고, 덕분에 나 스스로를 좀 더 인정해줄 수 있게 되었다.

 

- 클럽하우스라는 신문물을 접하고 현생을 망칠 정도로 빠져들었던 적이 있었더랬다. 일주일 정도 하다 보니 금방 피로감을 느껴 이젠 잘 안 들어가게 됐지만. '인프제 여러분, 안녕하신가요' 방만큼은 매번 출석하고 있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내 마음들을 대신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 모여있음에 안도하고 위로받는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인프제 방 만들어주신 모더레이터님들께 무한 감사드리고,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 인프제들 덜 아프고 더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 가족들과 1박 2일 강원도 여행을 다녀왔다. 강원도 속초-강릉 일대는 거의 매년 가는 코스인데, 이번에는 강릉 쪽에 새로운 스팟들을 발견해내는 재미가 있었다.  


2월에 아쉬웠던 일

- 마음이 많이 안정됐다고 쓴 게 불과 지난 달이었는데 이번 달 들어서는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예민하니까 내 눈에, 내 귀에 거슬리는 게 오조오억 개인데 티는 못 내고 혼자 속으로만 괴로워하고 있다. 밖에서 하는 사회생활이면 가면 쓰고 잘 대처할 수 있는데, 내 마음이 온전히 편안해야 할 집에서 그러니까 돌아버리겠는 거다. 막상 혼자 산다고 생각하면 편하고 좋겠지만 또 너무 고립될까 봐 그것도 두렵고. 나도 내가 예민한 게 싫다. 그냥 섬세한 사람이고 싶은데. 그럼 내가 덜 힘들 텐데.


2월에 행복했던 순간

1. 매섭고 차가운 강풍을 뚫고 정동 심곡 바다부채길을 걸으며. 그 어떤 역경과 시련도 다 뚫고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내 안에 무언가가 강해지는 느낌이 왔다. 

2. 가보고 싶었던 레스토랑 찾아가서 엄청 맛있는 프렌치 디쉬와 와인을 맛봤을 때. 평일 낮에 혼자 이런 거 먹으니 유럽 여행하던 때 생각이 났다.

3. 클럽하우스 노래 맞히기 방에서 재미있게 놀고, INFJ 모임 방에서 위로받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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