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의 월말결산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까워 남겨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매달을 기록해둡니다.
6월에 읽은 책
• <오늘부터 돈독하게> - 김얀
- 부자 되는 습관, 성공적인 투자법 류의 책들은 거부감부터 드는데, 이 책은 그냥 아는 언니가 이렇게 노력해서 돈 모았다고 썰 푸는 것 같아서 쉽고 재미있게 잘 읽혔다. 이 언니도 했는데 나도 한 번 해봐? 이런 자극이 확실히 됐다.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다. 그러니 귀중한 내 시간과 감정을 쓸데없는 것들에 낭비하지 말자. 진정한 싸움의 고수란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사람이다."
"나는 언제나 확신에 찬 사람보다 조금 주저하는 사람들을 신뢰했다."
•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 - 봉태규
- 모든 사람들이 봉태규 같을 순 없겠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가질 생각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이런 책임감과 감수성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청전'과 '신데렐라'가 아이에게 얼마나 유해한 이야기인지 지적하고, 딸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면서도 이건 잘못된 거라고 짚어준다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 <여자는 체력> - 박은지
- 내 몸과 마음 상태를 잘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 스스로가 건강하지 않다고 느낄 땐 익숙해진 일상에서 재빠르게 벗어나기, 내가 건강하다고 느끼는 순간에 더 자주 머물기.
"현재 자신을 휘감고 있는 감정을 알아차리면 감정과 나 사이에 공간이 생긴다."
"내가 어떤 모습일 때 건강한 기분이 들고 활기가 넘치며 생기발랄한 지를 알고, 그런 순간에 더 오래 더 자주 머물자. 그때가 바로 내가 나로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일 것이다."
6월에 즐겨들은 음악
• 투모로우바이투게더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 ...아노알러뷰!!! 요즘 남돌 노래들 다 쎈캐 마라맛이라 거기서 거기 같은데, 확실히 투바투는 차별화된 노선을 걷는다. 이렇게 서정적이고 애절하면서 감정 폭발하는 록을 타이틀로 할 생각을 하다니, 귀신같은 빅히트. 개인적으로는 퍼포먼스보다 밴드 라이브가 훨씬 매력적이라고 생각. 곧 숨 넘어갈 것 같은 태현의 미친 고음 파트 왜 이렇게 좋지 ㅋㅋㅋ
- '컴눈명'의 여운으로 한동안 2~3세대 K팝만 주구장창 들었다. 요즘 최애 유튜버 한라봉님 플리 틀어놓으면 업무 능률 대폭발. 그중에서도 한동안 잊고 살았던, 아픈 손가락 같은 2.5세대 남돌들 노래에 꽂혔다. 보이프렌드 야누스, B.A.P 하지마, 빅스 에러, 인피니트 Back.. 지독히 아꼈었다 크흡
6월에 본 영화와 드라마
• 프랑스 France TV 드라마 <스캄 프랑스 시즌1~6> (2018~2020)
- 오랜만에 과몰입 세게 한 드라마. 프랑스 고딩들이 파티하고, 친구 사귀고, 연애하는 이야기인데 이게 뭐라고 마음 아팠다가 위로받았다가.. 아주 그냥 한 달 동안 사람을 들었다 놨다 했다.
우선 시즌마다 주인공이 달라지면서 조금씩 다른 주제를 조명하는 방식이 참 재미있다. 이전 시즌에서는 지나가는 친구2 정도 역할인 줄 알았던 인물이 그다음 시즌에서는 또 나름 혼자만의 엄청 복잡한 사연을 갖고 있는 입체적인 인물로 보이는 거다. 역시 누구나 자기 인생에서는 주인공인 법. 혼자였던 엠마가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시즌1, 마농이 닫혀있는 마음을 열고 다시 사랑을 하는 시즌2, 뤼카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는 시즌3, 이만이 인종이나 종교로 설명되지 않는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즌4, 후천적 청각장애를 갖게 된 아르튀르가 삶에 적응해가는 시즌5, 그리고 롤라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중독과 불안증세를 이겨내고 다시 웃게 된 시즌6까지. 주제는 다 다른데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보다 성숙해진다'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하는 게 참 좋다.
그리고 워낙 다양한 인물들이 나와서 '이 중에 너 같은 사람 한 명쯤은 있을 걸?' 수준이다. 개인적으로는 시즌4 이만의 에피소드에 몇 차례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 아마도 과거 내 모습과 겹쳐 보여서 그랬던 것 같다. 다른 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매사에 심하게 자기 검열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건 안 하고 참다 결국 속이 곪아 터져 버리는, 그래서 의도치 않게 자꾸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 주게 되는 거.. 그거 뭔지 너무 잘 알아서 너무 슬펐다. 스캄 보다가 누구든 한 번쯤 이렇게 걷잡을 수 없이 슬퍼지는 순간 있을 걸.
"평화롭게 살고 싶으면 주변 사람들을 이해해 봐.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어."
"조심해. 사람들을 밀어내면 정말 필요할 땐 아무도 없어. 그땐 정말 혼자가 되는 거야."
"누가 됐든 여러분도 꼭 찾으세요. 친구, 연인, 여러분을 이해하고 외롭게 하지 않는 사람을요."
• 영화 <세이빙 페이스> (2004)
- <반쪽의 이야기>를 만든 앨리스 우 감독의 전작. 딸이 동성 연인을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이자, 엄마가 늦은 나이에 진짜 사랑을 찾는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 딸과 엄마가 서로를 이해하며 조금씩 용기 내는 이야기. 퀴어 영화지만 너무 무겁지 않고 가볍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라 좋았다.
초반에 힘든 딸 걱정하기는커녕 '너 때문에 내 체면이 뭐가 되냐'며 내쫓는 할아버지 때문에 너무 빡쳤는데, 결국 그가 마지막에 "세상은 점점 예측하기가 힘들어져"라며 변화를 받아들일 때. 윌-비비안이 자리 떠나는 사람들 신경 안 쓰고 온전히 서로에만 집중할 때.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제대로 와닿았다. 때로는 체면을 버려야 사랑을 지킬 수 있다는 걸. 진짜 중요한 것 앞에선 그놈의 face(체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 카카오TV 드라마 <이 구역의 미친 X> (2021)
- "가만 보면 우리가 정상이고 다른 사람들이 전부 다 미친 거 같아" 이 미친 세상에서 정신줄 붙들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를 믿어주는 내 편이 필요한 법.
“행복한 사람은 남을 괴롭히거나 상처 주지 않거든. 내가 행복하면 굳이 상대를 비꼬고 상처 주면서까지 스스로 안심시킬 필요가 없으니까.”
6월에 인상 깊게 본 콘텐츠
•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 (2021)
- 드디어 정규 런칭! 파일럿 때 보고 꽂혀서 이제 나도 4개월째 쭉 여자 축구를 하고 있으니 이제 화면 속 그들과 어떤 동질감 같은 것도 든다. 기존 선수들은 칼 갈며 훈련한 게 보이고, 새로운 팀과 선수들이 보강되어 더욱 흥미진진 해졌다. 무엇보다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피지컬의 여성들이 정말 건강하게 땀 흘리며 경쟁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이런 긍정적인 장면들이 미디어에 더 많이 노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SBS <문명특급 - 컴눈명 스페셜> (2021)
- 문명특급의 강점은 바로 '실행력'이 아닐까. 숨듣명이나 컴눈명처럼 온라인 밈으로 알음알음 소비되던 트렌드를 가장 발 빠르게 캐치해 하나의 제대로 된 기획으로 만들어 낸 것. 제대로 된 판을 깔고, MZ세대의 추억 속 가수들을 직접 무대로 다시 소환해낸 것. 이게 될까? 싶었던 것들을 문특 팀은 거듭 해내고 있다.
금요일 밤 생방으로 달렸는데 애프터스쿨 언니들 무대 보며 내가 다 찡했고, 가희 언니한테 제대로 치였고. 트위터랑 컴눈명 뒤풀이까지 달리느라고 거의 밤새다시피 했다. 추억 소환이라는 게 어쩌다 한 번 할 때 빛나는 거라지만, 그냥.. 이렇게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모두가 다 좋아하는 거라면 이런 무대 기회가 좀 더 자주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뉴욕타임스 다큐멘터리 <프레이밍 브리트니> (2021)
- 한때 세계 최고 슈퍼스타였던 젊고 재능 있고 빛나는 여성이 지금은 이렇게 비참하게 살고 있었을 줄이야. 제이미 스피어스 천하의 나쁜 놈이고, 후견인 제도라는 것도 너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를 몇십 년째 쭉 괴롭혀 온 연예 미디어 생태계 자체가 혐오스럽다고 느꼈다. 인간으로서의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따라붙는 파파라치, 대놓고 그녀의 스캔들을 조롱하는 TV쇼 같은 건 정말 충격 그 자체.
오늘날의 우리나라라고 다를까. 특히 여성 연예인들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되는 건수 잡아서 죽일 듯이 잡아 패고 보는 건 여기도 마찬가지인데. 누군가의 슬픔, 고통, 불행을 팔아 장사할 생각을 하는 기자들. 그래도 싸다는 듯 낄낄 대며 조롱하고 비꼬는 대중들. 이런 미친 세상에 동조하고 싶지 않아. 나는 이제 더 이상 연예인의 사생활을 다루는 저급한 연예 기사를 소비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 넷플릭스 예능 <퀴어아이> (2021)
- 흔한 뷰티&패션 메이크오버 쇼가 아니라 그 사람의 주거 환경, 식습관, 마인드까지 점검하고 개선 도와주는 거 참 좋다. 우리가 모두 퀴어아이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겠지만, 다양한 에피소드들 보며 지금 내 삶은 어떤지 한 번씩 되돌아보게 된다.
• 카카오TV 예능 <체인지데이즈> (2021)
- 나의 길티 플레져.. 이별의 문턱 앞에 선 커플들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면서 현재의 연인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데, 이들의 복잡 미묘한 심리를 따라가는 게 너무 재미있다. 설정 때문에 선정성 논란이 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막상 보면 그냥 사람 간의 관계를 찐하게 고찰하는 극강의 휴먼 리얼리티쇼 같다.
6월에 맛있게 먹은 음식
- 이번에도 역시 제주도 가서 먹은 모든 것들 대성공. 시원한 바다 내다보며 먹은 한치회랑 직접 구워 먹은 바비큐가 가장 맛있었다. 아니, 사실 그날 밤에 남은 한치랑 파 넣고 끓여먹은 라면이 최고 맛있었다.
6월에 마신 카페
6월에 잘한 일
- 2년 전 이 맘 때 제주도에서 아주 재미있게 같이 놀았던 추억이 있는 멤버들과 함께 1박 2일 제주 여행을 했다. 훗날 '2021년 여름'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장면들이 그날 하루 만에 다 나온 것 같다. 날씨도 코스도 음식도 다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모처럼 말 많이 하고 참 많이 웃은 기억들 때문에 그 여운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늘 혼자 있는 게 편하고 특히 여행은 혼자 하는 게 진리라고 믿었는데, 그거 어쩌면 나 너무 외로워서 그냥 스스로 합리화했던 것 같아.. 역시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니 재미도 추억도 두 배 세 배가 되는구나. 사회생활하면서 친구 사귀기 쉽지 않은데 이렇게 좋은 언니들을 만나 몇 년째 쭉 함께함에 감사하며, 앞으로는 내가 더 잘해야지, 이 관계가 오래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싶다.
- 그 밖에도 참 오랜만에 사람들을 좀 만난 달이었다. 한때는 나와 다른 결의 사람들은 더 이상 만나기 싫고 그게 다 감정 소모에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어쩌다 한 번씩 만나서 다들 무슨 생각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공유하는 건 곧 다른 세계를 좀 더 이해하고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방식이라는 걸 깨달았다. 비록 깊은 속 얘기는 못하고 회사 얘기, 재테크 얘기, 연예인 얘기 정도지만. 그런 대화라도 한 번씩은 필요한 때가 있다. 이 세상에는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니까.
6월에 아쉬웠던 일
- 이제는 사람과 일을 확실히 구분할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어때?'라는 질문에는 때와 장소, 그리고 청자에 따라 다른 자아로서 대답해야 한다는 것을, 늘 실수했음을 직감하고 나서야 깨닫는다. 언제까지 나 힘든 거 알아달라는 어린 애일 수 없으니까. (심지어 이제 어리지도 않아..) 좀 더 프로페셔널한 태도와 공적인 이야깃거리들을 항상 준비해두자.
- 쪽팔려서 여기 적을 순 없지만 진짜 내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 스트레스의 원인이 금방 해결될 것 같냐고 물어보시길래 '아뇨 영원히 안 끝날 것 같은데요'라고 했더니 그럼 지금부터 관리받아야 한다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우선 확 질러버렸다. 이젠 정말 내가 나를 잘 돌봐줘야 해.
6월에 행복했던 순간
1. 실시간으로 컴눈명에 뒤풀이까지 달리고 추억에 젖었던 그날 밤
2. 나의 제주도 최애 스팟 월령리에서 친구들과 함께 가만히 멍 때리며 앉아있었을 때
3. 숙소 앞바다가 온전히 우리들만의 것 같았던,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바비큐 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