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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May 29. 2021

5월, 모든 사람은 당신이 모르는
싸움을 하고 있다

2021년 5월의 월말결산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까워 남겨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매달을 기록해둡니다.




5월에 읽은 책

• <회사가 붙잡는 여자들의 11가지 비밀> - 아키야마 유카리

- 수십 번 무릎을 탁 치고 수백 번 밑줄 긋고 수만 번 뼈에 새기고 싶은 현실적인 조언과 실용적이 솔루션이 가득했던, 지금의 나에게 딱 필요했던 책. 나와 같은 얼레벌레 초보 중간관리자들, 그리고 회사 안에서 더 일을 잘하고 싶어 고민하는 모든 7~10년 차 여성들이 이 책을 꼭 읽으면 좋겠다. 

 한국어 제목이 좀 노골적이고 부끄러운데 'The Rules of Work'라는 영어 제목이 훨씬 더 와닿는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반드시 요구되는 '포터블 스킬' 3가지 (사람 관리, 자기 관리, 업무 관리)로 크게 챕터를 나눠, 작게는 회의를 진행하는 법부터 크게는 조직의 위기를 관리하는 법까지 다룬다. 특히 '사전 교섭'을 사내 정치가 아닌 유관 부서를 배려하는 의사소통 스킬이라고 설명한 부분과 동료들과 멀어지겠지만 대신 올라간 자리에서 새로운 동료가 생긴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거의 시험공부하듯 열심히 읽었고 핵심 내용은 개인 노션에 따로 정리해뒀다. 일하다 막힐 때 언제든 성경처럼 꺼내보고 싶은 책이다. 

"소통이 서툴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자."
"고위 관리자를 목표로 한다면, 고독감을 이겨내고 미움받기 싫은 병을 극복해야 합니다."
"제어할 수 있는 일은 대책을 강구하고, 제어할 수 없는 일은 포기하여 마음속에서 정리할 수 있다."


• <어쩌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됐을까> - 일자 샌드

- 요즘 들어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다'라는 말이 부쩍 와닿는다. 인간관계도 그렇게 생각해야지. 이젠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관계도 돌이켜보면 다 경험인 거다. 그때 먼저 연락할 걸, 손 내밀 걸, 대화를 좀 더 해볼 걸. 지난 사람들에게 못했으니 다음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지.

"그 어떤 관계도 당신 자신의 평화, 행복, 자유보다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당신이 모르는 싸움을 하고 있다. 그러니 친절히 대하라, 언제나."


•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 - 안주연

- '번아웃은 개인의 취약함이 아닌 직무나 사회 환경의 문제다'라고 책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말해줘서 위안이 됐다. 겨우 그 정도로 힘드냐고 한다면 "니들이 뭔데 내 힘듦을 판단해?"라는 자세로 맞서야지. 그리고 온갖 사람 눈치 다 보느라 지쳤으니 내 눈치라도 그만 봐야지. 적어도 나는 나 자신한테 가혹해지지 말자.

"병든 사회에 잘 적응하는 것이 건강의 척도는 아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내가 내 눈치를 보는 행동을 중단하도록 만드는 것. 마음을 바꾸어먹으라는 게 아니라, 간단한 행동 변화를 통해서 마음을 보호하자는 것."


•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최지은 

- 역시 결혼이 끝이 아니었다. 결혼을 했어도 아이를 갖지 않는다고 하면 그때부터 또 온갖 잔소리, 오지랖, 무례함, 편견에 시달려야 한다. 이 사회는 대체 왜 그렇게 남 일에 관심이 많으며, 왜 다수가 선택한 길을 가지 않는 사람들을 정당한 이유 없이 혐오하는지 모르겠다. 부부가 함께 결정한 건데 왜 늘 여자 쪽에 이기적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죄책감을 안겨주는 건지도 모르겠고.

"살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만큼이나 내가 무엇이 될 수 없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한 법이다."
"각자의 삶에는 각기 다른 무게와 괴로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서로 이해하려는 마음이 관계를 이어가게 한다. 그리고 그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을 우리는 성숙이라 부른다."


• <어차피 일할 거라면, Porto> - 하경화, 이혜민

- 이미 디에디트 유튜브로 봐서 아는 내용이었지만, 역시 글에는 영상 이면의 기쁨과 슬픔까지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지금 1년 넘게 원격근무를 하고 있는 나도 어디론가 떠나서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하면서 읽었다. 어차피 일할 거니까. 어디서든 또 열심히 할 테니까.


• <사물에게 배웁니다> - 임진아 

- 이로써 임진아 작가의 단행본을 전권 섭렵한 뜻밖의 애독자가 되어버렸다. 그가 일상을 대하는 태도나 전반적인 삶의 결이 나와 잘 맞는 것 같아 동질감을 느낀다. 평범한 사물도 세심하게 관찰할 줄 아는 사람 좋다. 

"오늘의 일이 역사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오늘 했기에 오늘을 닮은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하며"
"내가 모르는 나의 취향들은 어디까지 퍼져 있는 걸까. 전부 알 수 없겠지만 낯선 취향을 발견하는 것은 나이에 상관없이 기쁠 테다. 방금 만난 취향과 금방 친해지는 삶을 살고 싶다."


5월에 즐겨들은 음악

• 에스파 'Next Level

- 내 인생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곡 발매 이후로 단 1시간이라도 넥스트 레벨을 안 들으면 귀가 심심해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다. 마약은 안 해봤지만 이건 정말 마약 같은 노래라고 설명할 수밖에. K팝 광인들은 다들 한 번쯤은 SM을 파봤던 전적이 있기 때문에, 실로 오랜만에 보는 이런 찐 SM스러움에 열광하는 것 같다. 

 데뷔 땐 그룹 컨셉밖에 안 보였는데 이제 슬슬 멤버들의 매력도 보이기 시작해서 제대로 에며들고 있다. 특히 김윈터.. 이 아이 미쳤어요. SM이 수십 년간 K팝 우수 인재들의 입덕 포인트를 연구한 끝에 가장 이상적인 요소들만 골라 조합해 만들어낸 슈퍼휴먼 같은 존재랄까. 그만큼 대단하다는 거지. 앞으로 더 슈스가 되어라- 


• 오마이걸 'Dun Dun Dance'

- 오월엔 역시 오마이걸! 힘없고 기분 축 가라앉을 때마다 배터리 충전잭 꼽듯 귀에 에어팟을 꽂아 이 노래를 틀었다. 밝고 긍정적인 기운 풀충전되고 에너지 넘쳐서 내적댄스까지 추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번 곡은 미미가 살렸다고 보는데, 이렇게 개성 강한 래퍼가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도 팀과 조화를 이루는 게 오마이걸과 다른 걸그룹 음악을 차별화시켜주는 포인트 같다.


• 태민 'Advice

- 최근 태민 솔로곡들 중 이게 제일 내 취향. 피아노 전주에서 심금을 울리다가 후렴에서 '더 참신하게 상상력 좀 발휘해 봐'라고 날카롭게 쏘아대는 거 너무 덕심 자극하기 좋고요.. 건강히 군대 잘 다녀와 태민.. 


5월에 본 영화와 드라마

• 영국 Channel4 드라마 <잇츠 어 신> (2021)

- "이성애자 남자애들이 이 정도로 죽었으면 세상이 멈췄을 거야" 이 대사가 모든 걸 말해준다. 80년대 영국 게이 커뮤니티뿐이었으랴. 그 전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어떤 사람들은 성별, 성적 지향성, 인종, 국적, 장애 등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이유들로 인해 이 사회에서 '죄악 (sin)' 취급을 받는다. 마치 그런 차별과 혐오를 받아 마땅하다는 듯이 압력 하는 그놈의 '정상성'이 역겹다.


• 영화 <아이> (2021)

- 제발 이 땅에 태어난 아이들이 보호받으며 자랄 수 있기를, 생계를 걱정하며 최저 시급 노동을 뛰고 육아까지 책임져야 하는 싱글맘들이 지원받을 수 있기를. 저출산이 그렇게나 국가적으로 심각한 문제라면서, 왜 어떤 엄마들이 현실적으로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문제는 외면하는 걸까.


• 영화 <행복한 사전> (2013)

- 예상 평점 5.0이길래 봤는데 너무 잔잔해서 솔직히 졸렸고 두 번에 나눠서 겨우 봤다. 무언가를 장장 12년에 걸쳐 만들어내는 일, 스스로 성취를 느껴야 굴러가는 나 같은 사람은 절대 못한다 이 생각만 내내 들었고. 


5월에 인상 깊게 본 콘텐츠

•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데이팅 라운드> 시즌1~2 (2019)

- 짝을 찾고자 하는 출연자가 같은 장소, 같은 환경에서 5명의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남의 소개팅 엿보는 게 이렇게 재밌을 일? 같은 상황에서 누구를 만나냐에 따라 대화나 표정, 몸짓이 달라지는 걸 캐치하게 되는 게 흥미롭고, 결국 누구를 선택할지 짐작하면서 보게 되는 것도 시청 포인트다.

 사실 이런 짝찾기류 연예 예능은 차고 넘쳤지만 유독 이 프로그램이 특별했던 건 바로 다양성 때문. 기획 단계부터 치밀하게 설계한 결과겠지만 시즌 내 출연자들의 성별, 성적 지향성, 인종, 나이, 결혼 경험 유무 등 겹치는 라인업이 거의 없다. 지금도 세상 어디에선가는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이혼한 여성, 사별한 노년 남성도 인생을 함께할 파트너를 찾고 있다는 걸, 소외받지 않고 사랑하고 싶어 한다는 걸 조명한 데에 의의가 있다. '데이팅 라운드'를 본 이상, 선남선녀의 만남만 (근데 이제 전 국민의 호들갑을 곁들인) 주구장창 강조하는 한국 연애 리얼리티는 이제 재미도 없고 불편해서 못 볼 것 같아..


• 티빙 오리지널 예능 <아이돌 받아쓰기 대회> (2021)

- 뇌를 한번 싹 비우고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을 때 보는 게 '놀라운 토요일'인데, 그 스핀오프인 '아받대'는 더 생각 없이 볼 수 있어서 재밌다. 특히 2세대 아이돌 받쓰랑 간식 퀴즈 할 때 너무 재미있어 보여서 화면 속으로 들어가 나도 같이 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 저 노래 퀴즈 같은 거에 목숨 거는 타입인데 누가 판 한 번 깔아주면 안 될까요? 


• 팟캐스트 <빅 리틀 라이프> (2021)

- 요즘 내 최애 팟캐스트. 나의 우울, 길티 플레저, 이젠 연락이 닿지 않는 지난 인연들 같은 정말 친한 사이에도 쉽게 나누지 못하는 주제들을 깊이 있게 다룬다. 각자 마음속에만 묻어뒀을 프라이빗한 이야기들이 팟캐스트라는 매체를 통해 퍼져 나가고 청취자들에게 닿음으로써,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세상 어딘가에 나와 같은 고민을 견뎌내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공감과 위안이 생긴다. 듣고 있으면 왠지 대화가 잘 통하는, 주파수가 맞는 이들과 새벽 3차 술자리쯤에서 속 얘기하는 기분도 들고. 

 주제랑 스토리뿐 아니라 구성과 편집도 정말 이걸 무료로 들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고퀄. 각종 효과음, 음성 발췌, 인터뷰 삽입이 적재적소에 딱딱 들어가서 긴장감도 있고, 지금 이 대화의 분위기나 사람들 표정 같은 게 머릿속에 그려져서 과몰입하게 된다. 소리에 예민한 저 같은 사람은 이런 디테일 사랑할 수밖에 없다구요.. 


5월에 잘한 소비

- 고민 끝에 스텝퍼를 샀다. 밤에 뭐 보면서 영혼 없이 계속 밟다 보면 그래도 운동하는 기분이 나고 땀도 좀 난다. 재미있는 걸 볼 수록 운동을 많이 하게 되는 효과. '아받대' 보던 날 1500개 기록 달성. 


5월에 맛있게 먹은 음식

- 샤브샤브를 배달해서 먹어본 건 처음이었는데 이게 뭐라고 그렇게 맛있던지. 특히 이 날 먹은 칼국수가 계속 생각나서 저탄수 치팅데이 때마다 그렇게 칼국수를 찾아다녔다. 

- 동네에 퀄리티 괜찮은 횟집을 찾았다. 스스로에게 수고했다고 보상을 주고 싶을 때 떠오르는 최고의 메뉴. 

- 내가 개발한 레시피, 일명 죄책감 덜 드는 까르보나라. 통밀 파스타면을 사용했고, 베이컨 대신 오리고기 슬라이스를 볶아냈다. 이렇게만 해도 찐 까르보나라 맛이 얼추 나서 신기했고 자주 해 먹고 있다. 


5월에 마신 카페


5월에 잘한 일 

- 새삼스럽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게 된 날들이었다. 가족들이 밖에서는 누구를 만나고 뭘 하는지, 동료들이 우리 회사에 오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일주일에 한 번 취미생활로 만나는 멤버들은 평일엔 무슨 일을 하는지, 만난 적도 없는 랜선 친구들은 SNS 밖에서는 어떻게 지내는지. 그냥 그런 게 문득 궁금해져서 만날 수 있으면 물어보고, 만날 수 없으면 상상해보곤 했다. 역시 다들 저마다의 사정, 혼자만의 고민이 있겠지 싶다.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당신이 모르는 싸움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에 읽은 어느 책에서도, 우연히 본 외국 드라마에서도 이 구절을 만났다. 그러니 나도 내가 모르는 싸움에 지친 다른 이들을 좀 더 친절히 대하려고 한다. 물론 대체로 내 사람들에게는 친절한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5월에 아쉬웠던 일

- 하지만 결코 친절하게 봐줄 수 없는 일들이 있어. 요즘 떠들썩한 몇몇 사회적 이슈와 댓글들을 보면 분노가 차오르다 못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허망할 지경이다. 말이 안 되는 억지 주장을 펼치는 '일부' 누리꾼, 신나서 억지 이슈 만드는 '일부' 언론에 치가 떨린다. 이런 일들에 감정 소모 안 할 수 있는 안전하고 상식적인 세상에서 살고 싶어 증말..


- 원래 뭘 많이 사는 타입이 아닌데 이번 달에는 온라인 쇼핑을 너무 많이 했다. 매주 한 번 마켓 컬리를 시켰고, 쿠팡에서도 몇 개 오고, 예스24에서도 오고, 심지어 아이허브 직구도 처음으로 해봤다. 대부분 할인 쿠폰에 혹해서 산 거고, 그것들을 딱히 잘 쓰지도 않고 그냥 쟁여두고만 있다. 스트레스를 지름으로 풀면 안 되는데. 앞으로는 쿠폰의 유혹에 휘둘리지 말고, 정말 필요한 건지 두 번씩 생각해보기. 


5월에 행복했던 순간

1. 웅장한 축구 구장에 처음 입성했던 날

2. 비현실적으로 날씨가 좋았던 공휴일에 바람 살랑 부는 야외에서 마신 맥주  

3. 오랜만에 찾은 내 마음의 고향 성수동, 과장 조금 보태서 새삼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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