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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Dec 24. 2021

12월, 난 몰랐어 내 맘이
이리 다채로운지

2021년 12월의 월말결산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까워 남겨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매달을 기록해둡니다.




12월에 읽은 책

• <당신의 B면은 무엇인가요?> - 덴츠 B팀

- 학생 때 덴츠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는데, 사실 덴츠 B팀 같은 조직에서 일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실적 상관없이 뭐든 시도해볼 수 있는, 틀에 박혀있지 않고 열정적인 사람들이 모인, 나를 한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해주는 그런 조직. 회사가 B팀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나라도 B팀처럼 일해야지. 내가 좋아하는 대략 100가지의 B면을 본업인 A면과 연결 지어 솔루션을 찾아내기.

"우리는 '새로운 가치관으로 옮겨가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일을 가장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치관과 삶의 방식으로 옮겨갈 수 있는 그런 일이라면 전력을 다해 진행한다."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설렘을 느끼는지와 같은 개인의 지적 호기심이 그 사람의 매력을 만든다."
"요즘 시대는 일의 영역이 전부 모호해지고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아하는 것이 있는 사람은 묘한 설득력과 부러울 정도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 <어제 그거 봤어?> - 이자연

- 왜 어떤 콘텐츠는 마냥 웃으며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없었는지, 또 왜 어떤 콘텐츠를 보면서는 안전함과 유대감을 느꼈는지. 모두가 보는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아무나 보지 못하는 걸 발견해내는 사람들의 이런 예리한 목소리가 더 많은 조명을 받으면 좋겠다. 아직도 '뭐가 문제냐', '네가 프로불편러다' 말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여성에게 주어진 유일한 임무가 있다면 그것은 조금 더 허술해지는 것이다. 사회의 수많은 제약에도 거뜬하다는 능력을 일일이 검증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딱 이만큼의 용기를 내보는 것뿐이지만, 그것이 결국엔 우리를 많이 바꿀 거라고."


•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 - 곽민지 

- 30대가 된 내 삶과 가치관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 팟캐스트 '비혼세' 곽민지 작가님의 에세이. 김이나 작사가님의 추천사가 말해주듯 이 책은 "비혼이라는 탈을 쓴, 내가 나를 책임지고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비혼과 기혼 둘 중 하나만 옳고 다른 하나는 틀렸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아이를 낳든 안 낳든, 혼자 살든 누구와 함께 살든,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음을 모두가 존중했으면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에게 무례하지 않는 길은 우리가 얼마나 다채로운지를 계속해서 확인하고 조심하는 길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무례한 사람에게 대응하는 가장 간결한 방법은, 그 무례를 정확히 짚어 알려주는 것이다."
"beyond anxiety" 불안을 너머, "attraversiamo" 함께 건너자


• <머물고 싶은 순간을 팝니다> - 정은아

- 코로나 이후 시대의 공간 기획/운영 지침서 느낌. 대부분 나도 가봤거나 SNS를 통해 알고 있는 최신 유행 스팟들이 사례로 담겨있는 게 재밌었다.

"가장 예민한 사람을 기준으로 하라"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한다"


• <아무튼 술집> - 김혜경

- 읽는 내내 나도 같이 정신 놓고 술 마시는 느낌. 그야말로 술술 읽혔다. "술을 마셔야 살 것 같은데 술을 마시면 죽을 것 같다"라는 문장이 너무 공감 좋아요 100개.

"막다른 길인 줄로만 알았던 지점은 그저 모퉁이에 불과할 것이라고 믿어보자. 그렇게 나를 가로막는 사소한 걱정을 그저 모퉁이 삼아버리자."
"내가 흘러가듯 사는 곳에서 누군가는 자신이 선 곳을 단단하게 만드느라 애쓴다. (중략) 나는 나 대신 싸워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사람답게 살 수 있었다."


• <몽골, 안단테> - 윤정욱

- 지금껏 해온 여행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렇게 천천히 흘러 다니는 여행을 나도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쯤 갈 수 있을까.


12월에 즐겨들은 음악

•아이브 'ELEVEN'

- 진짜 오랜만에 한번 듣고 바로 꽂힌 신곡. 도입부 비트부터 긴장감을 갖고 가다 후렴에 확 몰아치는 느낌이 좋다. 역시 믿고 듣는 서지음 작사가답게 마냥 네가 좋아~가 아니라 너를 사랑하며 알게 된 내 모습이 좋아~를 얘기하는 곡이라 좋다. '난 몰랐어 내 맘이 이리 다채로운지' 올해 최고의 킬링 파트, '내 앞에 있는 너를 그 눈에 비친 나를 사랑하게 됐거든' 올해 최고의 엔딩 파트로 선정한다. 그리고 안유진 너무 잘한다..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Happy Death Day'

- JYP 스튜디오J에서 나온 신인 밴드, 데이식스의 직속 후배인데 음악은 완전 다른 노선으로 잡은 듯. 데뷔곡 특유의 악동st 컨셉과 가사가 처음엔 좀 킹 받았는데, 듣다 보니 이 광기에 중독돼서 이제 같이 따라 부르고 앉아있다. 관심 생겨서 영상도 많이 찾아봤는데 우선 라이브를 잘해서 호감. 나는 드럼 치는 건일이가 좋다.


•자우림 11집 <영원한 사랑>

- 처음부터 끝까지 이 계절에 참 잘 어울리는 앨범. 최애 트랙은 '잎새에 적은 노래'.


•K팝 고인물이 매년 12월마다 찾는 K-캐롤 플레이리스트

- 핑클 - 화이트, UN - 평생, T.O - 발자국, 디베이스 - 연인, 보아 - 메리크리, SS501 - Snow Prince, 소녀시대 - 첫눈에, 젤리피쉬 - 크리스마스니까, 인피니트 - 하얀 고백, 갓세븐 - 고백송, 소녀시대 태티서 - I Like the Way, 비스트 - Beautiful, 엑소 - 첫 눈, 보이프렌드 - 내가 갈게, 백예린 - November Song, 그리고 무려 18년째 듣고 있는 5방신기 캐롤 앨범..

 

12월에 본 영화와 드라마

• 웨이브 오리지널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2021)

- 정치물은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나라 현실을 다루니 이렇게나 재밌는 거였네. 가볍고 재미있게 볼 수 있으면서도, 실제 이슈나 인물들을 패러디하고 풍자하는 깨알 재미도 있다. 중요하고 멋진 일은 김성령과 배해선을 비롯한 여성 캐릭터들이 다 해 먹는 것도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사달이 나게 만든 김성남의 발작 버튼이 '콘텐츠가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었다는 게 너무 웃겼고, 2화 끝나고였나 ITZY의 '워너비'가 브금으로 깔릴 때 아, 이 드라마 너무 좋다..라고 생각했다. 국내 OTT 중 지상파나 케이블, 그리고 넷플릭스가 할 수 없는 오리지널 드라마 방향성을 가장 먼저 잡은 게 웨이브라는 게 조금 놀라우면서도 부러울 따름.


• 영국 Peacock 드라마 <위 아 레이디 파트> (2021)

- 무슬림 여성 펑크 밴드라니, 그 자체로 이미 너무도 대단하지 않은가. 그러나 특정 인종, 종교, 성별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음악이 꼭 무언가에 맞서 싸우는 투쟁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아미나가 태어나 처음으로 일탈을 경험하며 짜릿한 해방감을 느꼈던 것처럼,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세상'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함께할 수 있도록 믿어주고 용기 주는 동료들이 있으니까 기꺼이 뛰어들 마음이 생기지 않았을까. 아무튼 큰일 났어. 나도 밴드 하고 싶어 졌어.. 함께 뭉치면 두려울 게 없는 세상 멋진 여성 밴드.

"기절할 것 같아." "좋아.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느끼면서 해내면 돼. 밀고 나가는 거야."
"Speak, your lips are free. Speak, it is your own tongue. Speak, it is your own body. Speak, your life is still yours." - <Speak> by Faiz Ahmed Fiaz


• 넷플릭스 오리지널 <에밀리, 파리에 가다 시즌2> (2021)

- 정말 그냥 심심풀이로 보기 좋은 가벼운 드라마. 시즌1에 비해 스토리나 재미는 아쉬웠지만, 애슐리 박이라는 한국계 배우가 연기하는 민디 캐릭터의 매력이 한층 돋보이는 건 좋았다.


• 중국 영화 <소년 시절의 너> (2019)

- 입시 압박 속의 학교 폭력 소재를 보면서 정신적으로 괴로운 부분들이 있었지만, 주동우의 연기와 이양천새의 패기만은 기억에 뚜렷이 남았다. "넌 세상을 지켜, 난 너를 지킬게." 그냥 둘이 서로 지켜주면서 안전하고 따뜻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


• 미국 영화 <틱, 틱... 붐!> (2021)

- 보통 힘든 현실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스토리를 보면 '그래도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 같은 생각에 마음이 훈훈해지는데. 실제로는 모르겠으나 딱 이 영화에 담긴 만큼만 보면 조너선에게는 그 30살 생일 전의 현실이 너무 가혹했던 것 같고, 그렇게나 바라던 큰 성공을 본인이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는 게 너무 슬퍼 마음이 힘들었다. 그래도 뮤지컬을 차용한 연출 덕분에 재미있게 본 영화.


• 영국 영화 <러브 액츄얼리> (2003)

- 역시 크리스마스에는 조금 뻔해도 이런 클래식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거의 10년 만에 다시 보니 불륜 미화 등 불편한 부분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모처럼 사랑이란 참 아름다운 거구나.. 하는 감상에 젖기에는 충분했다. 제이미-오렐리아, 사무엘-조애나 에피소드가 좋았다.  


12월에 인상 깊게 본 콘텐츠

• 엠넷 예능 <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 (2021)

- 스우파 과몰입하던 내 동년배들 이제 다 스걸파에 미쳐 산다. 우리나라에 춤 잘 추는 여고생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매주 무대를 보며 경이로울 지경이다. 다들 본인 실력에 자부심 넘치고 이기고 싶은 욕망도 감추지 않는데, 그 와중에 다들 알고 보면 같은 학교 출신, 같은 지역 학원 출신이라서 서로 응원해주는 게 너무 귀엽고 마음 찡해지는 포인트. 다 좋으니까 내 원픽 크루 아마존 부활시켜주면 안 될까요..?


• MBN 예능 <돌싱글즈> (2021)

- 이혼 사유, 자녀 유무, 양육 여부는 한국 미팅 예능 프로그램 역사상 전무후무한 차별화 포인트가 될 듯. 다들 경험이 있어도, 한번 해봤어도, 역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근데 합숙 끝나고 동거까지 하다 보니 일반인 출연자들의 성격적 단점이 너무 크게 드러나는데, 내가 이걸 재미로 보고 있어도 되는 건가 싶은 죄책감이 든다. 근데 또 재미있고 다음 화 궁금해서 미칠 지경.


• 채널A 예능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2021)

- 타인이 상담받는 걸 지켜보면서 내 안에 있던 상처도 치유되는 경험이 신기했다. 특히 대인관계를 어려워하는 극내향인 김혜성, 가족에게 힘든 일을 털어놓지 못하는 양치승, 자기 마음에 확신이 없던 김경란 편에 크게 공감하고 함께 눈물 흘렸다.


• 유튜브 오리지널 리마스터피스 (Re:MASTERPIECE) (2021)

- 보아가 프로듀싱한 에스파의 'Dreams Come True' 제작 과정 비하인드. K팝 산업에서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컨셉 구상, 녹음 디렉, 안무 시안 컨펌, 뮤직비디오 촬영 등 통틀어 제작 과정을 41분 동안 꽉꽉 채워서 보여준 건 처음이었던 것 같아 너무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이런 게 바로 프로듀싱'이구나를 제대로 알게 된 기회이자, 디테일 하나까지 살려내는 프로듀서 보아의 능력, 그리고 그걸 찰떡같이 해내는 에스파의 실력을 인정하게 된 계기도 됐다. 앞으로 SM에서 이런 제작과정도 시리즈로 많이 내주면 참 좋겠다. 


12월에 잘한 소비

- 엄마 아빠 30번째 결혼기념일에 여행 못 보내드린 게 마음에 걸려 31번째에 호캉스 보내드렸다. 내가 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뿌듯한 K-장녀.

- 카페 빼고는 정말 볼거리도 놀거리도 없었던 대전에 혼자 놀러 갔다 왔다. 일상에서 지켜오던 루틴을 철저히 깨고 숙소에서 혼자 배달음식 시켜 먹고, 넷플릭스 8시간씩 보는 등 원 없이 나태해지는 경험은 가치 있었다.


12월에 맛있게 먹은 음식

- 푸라닭 콘소메이징, 이거 아주 이성의 끈 놓게 만드는 위험한 음식이었다.


12월에 마신 카페


12월에 잘한 일, 아쉬웠던 일

- ...은 특별히 없어서 2021년 연말 결산으로 대신하겠음


12월에 행복했던 순간

1. 대전 여행 첫 카페 풍뉴가를 발견했을 때

2. 혼자 숙소에서 먹고 싶었던 것 다 먹고 6~7시간 동안 넷플릭스 봤을 때

3. 연말에 가족들과 함께 보낸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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